선행상 주는데 완벽한 공정성 기대하긴 힘들어.
그려려니 하고 ESG실행 하면 결국 좋은 점수 나와

사진=픽사베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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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경제=김광기 기자] ESG경영이 확산하면서 기업들이 ESG평가에 민감하다. ESG를 ‘착한기업 되기’라고 하면 ESG평가는 ‘착한기업 인증받기’에 해당한다. ESG평가기관을 자임하는 곳들이 점수와 등급을 내 발표하고,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ESG투자 목적으로 이를 활용한다.

점수를 잘 받으면 ESG펀드 포트폴리오에 들어가 주가가 오르고, ESG채권을 싼 금리로 발행할 수 있다. 기업들 입장에선 가급적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좋다.

ESG평가기관은 글로벌하게 130개 정도가 활동 중이다. 로컬 기관들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에 600개를 상회한다. ESG 바람이 불면서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긴다. 설립에 정부 인가나 등록은 필요하지 않다. 컨설팅업의 일종으로 그냥 만들어 영업하면 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다우존스(DJSI), 레피니티브 등이 글로벌시장 강자이며, 한국에선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대신경제연구소, 서스틴베스트 등이 활동 중이다. 최근 장사가 좀 되는 분위기를 타고 로펌과 컨설팅회사, 일부 언론사까지 앞다퉈 ESG평가에 나서고 있다.

중구난방 평가지수에 기업들 불만

그런데 기업들이 받아보는 평가 등급이나 점수가 평가기관에 따라 크게 달라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불만의 소리가 크다. 기업은 물론 기관투자가들도 ‘고무줄 ESG’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며 정부나 거래소 등이 나서 객관적이고 표준화된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주문한다. 평가 자체가 주식이나 채권의 발행 등 돈이 걸린 문제이니 그럴만도 하다.

사례를 보자. 현대자동차의 경우 MSCI는 B등급을 줬는데,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A등급이다. LG전자는 MSCI에서 A등급을 받았지만, 기업지배구조원은 B+등급이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MSCI는 BBB등급을 줬지만 기업지배구조원은 A+로 평가했다. 롯데쇼핑은 기업지배구조원으로부터 A등급을 받았지만, 레피니티브는 100점 만점에 49점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평가기관들은 E,S,G 3요소를 놓고 대략 50~200개 항목의 데이터를 구해 점수화한 뒤, 항목별 중요도에 따를 가중치를 매겨 종합 점수와 등급을 낸다. 이를 통해 기업들의 줄을 세워 순위를 발표하기도 한다.

그런데 평가 데이터를 무엇으로 쓰고, 점수화를 어떻게 하고, 가중치를 얼마 주는가는 평가기관 마음(노하우)이다. 평가 점수에 편차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찌보면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학교에서 주는 학생의 성적에 비유해 보자. 국영수 같은 과목 점수는 엄격하게 통일된 기준에 따라 시험이 출제된다. 당연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점수가 산출된다. 이는 기업으로 치면 재무적 회계지표에 해당한다. 이를 임의적으로 조작하거나 마사지하면 크게 처벌받는다.

이에 비해 ESG평가는 착한 학생에게 주는 선행상에 해당한다. 누가 착한 학생인지를 객관적으로 가늠하기란 참 힘들다. 솔선수범해 청소를 도맡아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몸이 불편한 친구들을 앞장서 돕는 학생도 있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커서 SNS 등을 통해 청소년 권익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학생도 있다.

누구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상까지 줄지는 선생님 마음이다. 학생들은 다소 불만이 있어도 그려려니 받아들이며 박수를 쳐준다. 기준을 명확히 대라는 요구도 별로 없다. (물론 요즘 학생생활기록부가 대학입시에 반영되다 보니 극성스런 학부모들은 시비를 걸기도 한다.)

선행상을 놓고 시시비비를 벌이다 보면 끝이 없다. 더구나 착한 일한 게 누구에게 칭찬받기 위해, 상을 받기 위해 한 게 아니지 않는가. ‘언젠가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게 순리다.

답답해도 모른 척, ESG 실행을

진정성을 갖고 ESG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급할 것도, 섭섭할 것도 없다. 지구환경을 살리고,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기업의 의사결정을 투명하게 하는데 계속 매진하면 그만이다.

투자자와 임직원, 소비자, 협력사 등은 결국 알게 된다. ‘이 회사가 정말 착한 회사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그냥 묵묵하게 그 길로 가면 된다. ‘그까짓 평가 점수 좀 낮으면 어떤가’ 하는 배짱이 필요하다. 장삿속으로 ‘평가 잘 받게 해주겠다, 시상식을 만들어 ESG 우수상을 주겠다’고 떠벌이는 기관들은 무시하시라.

물론 글로벌 경영 환경 아래서 돌출하는 ESG 리스크 요인,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요구, 금융시장의 투자 잣대 등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ESG경영을 보다 잘 하기 위해서 말이다. 얼마전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 같은 게 대표적으로 좋은 자료다.

냉정하게 말해 ESG평가도 돈으로 사는 기업이 적지않다. 왜 돈을 잘버는 시가총액 상위기업들이 ESG평가도 높게 받고 있는 것일까. 대체로 ESG평가 관련 컨설팅사들의 도움을 받아 평가 항목별 대응을 신속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문을 받아 ESG관련 조직을 만들고, 직원을 거기에 배치하고, 그렇게 만든 활동 정보를 정기적으로 공표한다.

대기업들은 이를 기초로 지속가능보고서라는 것도 만들어 발표한다. 평가 가이드와 보고서 작성 도움을 받는데 드는 돈은 적어도 연간 최소 1억원이다. 외국계 기관들은 수십억씩 받는다. 중소기업들에겐 엄두가 나지 않는 비용이다. 

한마디로 ‘족집게 선행 과외’다. ‘언제 어디서 선생님이 숨어 지켜보고 있을테니 거기 가서 쓰레기를 치우라’고 알려준다. 그랬더니 실제 선행상을 받는다. 돈 없어 과외받지 못한 학생은 평소 어려운 친구 솔선해 돕고 뒷골목 휴지를 주워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상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EBS 수능교재 같은 게 곧 나올 모양이다. 국회의원 60여명이 ‘국회ESG포럼’을 만들어 ESG 관련 법규를 정비하기로 했고,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ESG공시 표준안을 만들 계획이다. 기업들의 불편과 불만은 줄어들겠지만, ESG에까지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하는 것인지는 논란의 소지도 있다.

장삿꾼  ESG 평가시장

지금 한국에는 ESG평가와 그야말로 큰 장이 섰다. 하루가 멀다하고 로펌과 컨설팅회사, 언론사 등이 나서 ESG 마케팅을 벌인다. ESG평가를 잘 받기 위해선 뭔가 자문을 받는 게 꼭 필요한 듯 홍보하고, 언론기관들은 관련 교육 프로그램과 시상식 마련에 분주하다.

기업들은 ESG평가가 좋게 나올라치면 ‘우리가 A등급을 받았다’고 홍보라인을 총동원해 자랑한다.

ESG 경영과 투자가 대세가 됐다곤 하지만 이렇게 요란한 나라는 없다. 그저 묵묵히 실행하고 있을 따름이다. 전형적인 냄비 근성이 ESG에도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국회와 정부가 나서 ESG 공시와 평가를 표준화하면 과열 분위기는 많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족집게 과외 근절책이 될데니 말이다.

ESG가 자본주의의 일대 전환적 움직임이고, 기업 경영의 메가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성 없이 남이 하니 나도 따라하기, 흉내내기의 거품도 분명 끼어있다. 한국은 특히 그런 것 같다.

우리 회사는 왜 ESG를 하는 것이지?”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그러면 ESG평가에 대한 답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답은 평가기관이 아니라 바로 우리 회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ESG 관련 재계의 한 행사.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행사가 열리고 있다.
ESG 관련 재계의 한 행사.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행사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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