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안 18일 유럽의회 통과..."한국 대응 미흡" 지적
’26년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전력,비료 등 6개 업종부터
'24년 해상운송 ETS업종에, ’27년엔 자동차 등에 배출권 시장
‘30년까지 EU ETS 대상 업종 전체로 확대 적용

유럽의회 본회의 전경. AP=연합
유럽의회 본회의 전경. AP=연합

[ESG경제=이신형 기자]  유럽의회가 18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2026년부터 철강 등 6개 산업에 적용하고 2034년부터 CBAM 적용 대상 업종에 제공하는 무상배출권을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CBAM 도입과 ETS 개편 법안을 통과시켰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줄이기로 한 유럽연합(EU)의 ’핏 포 55(Fit for 55)의 입법 패키지가 종착점에 거의 도달한 셈이다. 해당 법안은 몇 주 안에 EU 회원국의 최종 승인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사전에 충분한 조율을 거쳤고 의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무난하게 승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랙티브에 따르면 ETS 개편안은 찬성 413표와 반대 167표, 기권 57표로 유럽의회 문턱을 넘었다. CBAM 도입안은 찬성 481표와 반대 81표, 기권 75표로 통과됐다.

'34년부터 CBAM 대상 업종 무상배출권 폐지

EU 이사회의 발표에 따르면 EU는 ETS를 통해 EU의 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62%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개편안을 마련했다. ▲2034년까지 CBAM 대상 업종 무상 배출권 폐지 ▲2024년부터 해상운송부문 ETS 적용 ▲2027년 자동차와 건물 연료용 탄소배출권시장 신설이 골자다.

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최근 몇 년간 강세가 이어져 2020년 초 대비 거의 4배로 올랐다. 지난 2월에는 사상 최초로 100유로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ETS 개편 기대감도 EU 배출권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유랙티브에 따르면 자동차와 건물 연료용 탄소배출권시장 신설로 연료 가격이 10유로센트(0.1유로) 정도 상승할 전망이다. 연료 가격이 오르면 2018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노란 조끼 운동’과 같은 시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EU 집행위원회는 신설되는 ‘사회기후기금(social climate fund)을 활용해 피해 가구를 지원하겠다며 시장 개설을 추진했다.

867억 유로(125조9000억원) 규모의 ’사회기후기금‘ 조성을 위한 기금도 이날 유럽의회를 통과했다. 프란스 티머만 유럽연합 집행부위원장은 “(난방용 연료를 대체할) 히트펌프나 태양관 패널을 구매할 여력이 있는 가구에 구매를 유도할 더 큰 인센티브가 제공되고 구매 여력이 없는 가구는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6년 CBAM 본격 시행

’탄소국경세‘로 불리는 CBAM은 EU에서 생산하는 제품과 다른 지역에서 수입하는 제품 간의 탄소 배출 비용 격차를 줄이기 위해 수입품에 탄소 배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제도다. EU보다 탄소 배출 비용을 적게 지불하는 지역에서 물품을 들여온 수입업자는 탄소세에 해당하는 CBAM 크레딧을 사야 한다.

적용 대상은 당초 철강과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의 5개 산업이었으나, 입법 과정에서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수소가 추가됐다. CBAM 적용대상 업종에 대한 무상할당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2034년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유럽의회가 발표한 합의안에는 2026년 본격 시행 전에 CBAM 효과를 평가하고 2030년까지 CBAM 적용 대상 업종을 ETS 업종 전체로 확대한다는 것을 포함해 적용 업종 확대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EU ETS 적용 대상은 전력과 열 생산 정유, 철강, 알루미늄, 금속, 시멘트, 유리, 석회, 펄프, 제지, 판지, 유기화학, 유럽 내 항공 운항, 아디프산과 글리옥실산, 글리옥살 생산 시 발생하는 이산화질소, 알루미늄 생산 시 발생하는 과불화탄소다.

EU는 오는 10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나 2025년까지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유예기간 중에는 수입업자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해 보고하는 의무만 준수하면 된다.

법무법인 태평양이 지난 2월에 내놓은 탄소국경조정제도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업자는 분기마다 수입제품에 포함된 온실가스 배출량과 원산지에서 해당 제품에 부과한 탄소가격 등이 포함된 CBMA 보고서를 분기가 끝나기 1개월 전에 제출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은 원칙적으로 수입제품과 관련된 직접배출량(스코프 1)을 대상으로 하되 특정 조건 하에서는 간접배출량(스코프 2)도 포함된다.

CBAM 크레딧을 매입하는 본격적인 시행은 2026년부터다. 이때부터 EU보다 탄소 배출 비용을 적게 지불하는 지역에서 상품을 들여오는 수입업자는 탄소세에 해당하는 CBAM 크레딧을 사야 한다. 분기별 CBMA 보고서와 함께 CBMA 명세서도 제출해야 한다.

CBAM 크레딧 가격은 EU ETS의 배출권 경매가격의 주당 평균가격에 연동돼 결정된다. 수출업자가 원산지의 ETS와 같은 탄소가격제도에 의해 온실가스 배출 비용을 지불한 경우 소명을 통해 일부 또는 전액을 공제 받을 수 있다. 원산지에서 온실가스 배출 비용을 많이 지불하면 공제액이 커진다.

하지만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해도 법적으로 탄소 배출 비용을 부과하지 않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공제 혜택이 제공되지 않는다. EU ETS와 연계해 ETS를 운영하는 스위스와 EU ETS에 참여하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은 탄소국경조정제도 적용이 면제된다.

국내 업계 “선제적 대응 필요”

이처럼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이 목전에 와 있으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대응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당장 1차로 적용 대상이 될 기업의 대응도 부실하다는 얘기다.

S&P 글로벌 상품 인사이트(S&P Global Commodity Insight)는 지난 1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기업의 대부분이 이 제도가 미칠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탄소국경세에 대응하기 위해선 당장 엄격하고 단일화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이나 공시 관행을 갖춰야 하는데 진전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앞서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기획재정부의 의뢰로 지난해 7월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국제무역기구(WTO) 체제에 의존해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나 미국 입법 추진 중인 청정경제법안(CCA)에 따른 관세 부과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철강 산업은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 초기부터 탄소 크레딧 매입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이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보호막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서는 지적했다. 무상할당 비중이 크고 탄소배출권이 EU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중소기업도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CBAM) 적용 범위와 수준이 강화될 경우에는 중소기업도 직접적인 규제범위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공급망에 미칠 직간접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철강 등 1차 적용대상 제품 관련 업계에서는 피해 방지를 위해  탄소 경쟁력 강화 투자 등 사전대비가 필요하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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