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항공 퇴직연금 투자 법 위반 판결...ESG 투자가 불법?
트럼프 반ESG 정책으로 투자 위축 우려 401K 투자 감시 강화 전망
[ESG경제신문=이신형기자]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반ESG 정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지속가능성 투자 위축 가능성에 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백악관은 화석연료 에너지 생산과 사용 억제 정책을 종식시키겠다며 ‘에너지 비상사태(Energy Emergency)를 선포했고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수천억달러의 에너지와 기후정책 자금 지출을 중단하는 한편 연방정부의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DEI) 정책도 철회했다.
미국 법원에서는 ESG 투자를 선도했던 블랙록에 직원의 퇴직연금 자산을 위탁한 아메리칸 항공의 결정이 불법이라는 판결까지 나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리드 오코너 텍사스주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아메리칸 항공이 직원의 퇴직연금 프로그램인 401K 운용에서 블랙록에 자금을 위탁함으로써 전적으로 직원들의 재무적 이익에 기반해 투자 결정을 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이런 가운데,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는 지난 7일 ESG 투자의 불법성 여부와 다른 난제를 다룬 ’ESG 투자는 불법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ESG 투자가 "불법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ESG 투자는 "위축될 것"이라고 썼다.
모닝스타의 리아 미첼 선임 정책분석가는 “근로자퇴직연금보장법(Employee Retirement Income Security Act, ERISA) 상의 수탁자 의무 때문에 401K 자산의 투자는 더 높은 수준의 감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퇴직연금 제도의 기반이 되는 이 법은 수탁자는 연금 가입자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한 퇴직연금 수탁자가 자금운용이나 주주권을 행사랄 때 ESG 요소를 고려할 수 있도록 한 노동부 규정을 개정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부 규정 개정 가능성은 퇴직연금의 지속가능성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다. 오리건대학의 제인 다뉴 장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ESG 펀드에 자금을 맡긴 401K 가입자는 15% 미만에 불과하다.
공적연금의 ESG 요소 고려 여부는 주정부가 결정한다. 플로리다주와 오하이오주 등이 공적연금의 ESG 요소를 고려한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다. 뉴햄프셔주 등 일부 주에서는 법원 판결 등으로 ESG 투자 금지 시도가 좌절됐다.
401K 가입자에게 이 퇴직연금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투자 옵션 외에 더 다양한 투자 기회를 허용하는 브로커리지 윈도우(Brokerage Window)의 경우 앞으로도 가입자가 자유롭게 ESG 투자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입자는 브로커리지 윈도우를 통해 개별 종목이나 채권, 뮤추얼 펀드, ETF 등에 투자할 수 있다.
모닝스타의 미첼 분석가는 “일반적으로 대다수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수탁자가 브로커리지 윈도우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퇴직연금 이외의 사적인 투자에서도 ESG 투자 여부는 당연히 전적으로 투자자가 결정할 몫이다. 하지만 대다수 미국인에게 금융투자 창구는 퇴직연금뿐이다.
자산운용사 ESG 투자 철회?
보고서는 자산운용사들이 ESG 투자를 철회할 가능성이 있으나, 적어도 ESG 투자에 관심이 큰 유럽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액티브 펀드 매니저들은 여전히 ESG 분석을 실사의 일부로 고려하고 있다고 썼다.
CFA 인스티튜트(CFA Institute)의 크리스 피들러 산업기준 책임자는 “특정 ESG 요소가 투자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부동산에 투자할 때 홍수가 잦은 지역인지 고려하지 않는다면 수탁자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펀드매니저들은 오히려 지속가능성 투자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모건스탠리 지속가능투자연구소(Morgan Stanley Institute for Sustainable Investing)가 900개 이상의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지난해 8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산운용사의 약 78%와 자산 소유자의 80%가 앞으로 2년간 운용자산에서 지속가능 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속가능성 투자 수익성 저하?
보고서에 따르면 지속가능성 투자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을 밑돌고 있으나,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수요 증가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개방형 지속가능 펀드와 ETF는 2년 연속 순유출을 기록했다. 낮은 수익성이 부분적인 자금 유출 요인이 됐다.
모닝스타 서스테이널리틱스의 호텐스 비오이 지속가능 투자 리서치 책임자는 지속가능 펀드의 42%만이 모닝스타의 펀드 평가에서 상위 50% 안에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 2021년 이후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전기차 등을 대상으로 하는 녹색투자는 고금리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은 속도가 둔화될 수 있으나,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수익률은 펀드매너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단기적으로는 트럼프가 녹색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고 연준이 금리인하 속도를 늦출 경우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심리 위축이 이어질 수 있다. 모닝스타의 브렛 카스텔리 주식 분석가는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에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일부 폐지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해 3분기에 수력을 제외하면 신규 발전용량의 90%가 재생에너지 발전이었다며 “재생에너지가 단기적으로 신규 발전용량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천연가스 발전량도 증가해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닝스타의 데이빗 휘스턴 자동차 산업 담당 투자 전략가는 “법을 새로 만들지 않으면 IRA에 따른 7500달러의 전기차 구매자에게 제공되는 세액공제를 폐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내연기관차 판매를 억제하는 환경보호청의 규정은 대폭 완화하거나 폐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또한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된다고 해도 테슬라는 여전히 미국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저가의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부과에 나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테슬라가 경쟁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속가능성 투자는 유용한가?
보고서는 ESG 투자의 유용성은 투자 목적에 따라 다르다고 분석했다. ESG 투자자의 유형도 다양하다.
대다수 기관투자자들은 ESG 분석을 모든 종류의 중대한 리스크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가치 투자자는 특정 자산을 포트폴리오에서 걸러내기 위해 ESG 분석을 활용한다. 기후 문제를 중시해 화석연료 자산을 배제하려는 투자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임팩트 투자자의 경우 ESG 투자의 효과를 측정하기 어렵다. 이런 투자자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테마 펀드에 투자하는 게 최선이다.
일반적인 ESG 펀드에 투자하면서 시장수익률 이상의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도 있다. 이런 투자자에게 ESG 투자이 수익성은 논란 거리가 될 수있다.
이론적으로는 지속가능 투자는 수익률이 낮은 경향이 있다. 이미 밸류에이션이 높은 양질의 기업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킹햄 웰스 파트너스(Buckingham Wealth Partners)의 래리 스웨드로 리서치 책임자는 ESG 분석을 통해 선별된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이 떨어져 투자 효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ESG 점수가 낮은 기업은 정부의 규제 대상이 되면서 비용이 증가하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위험이 적으면 밸류에이션이 높다”고 그는 말했다.
반면에 ESG 요소를 고려한 투자가 포트폴리로의 리스크 관리에 유용할 뿐 아니라 개별 종목 투자에서도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아브든 투자신탁(Abrdn Investment)는 지속가능 투자에 관한 여러 보고서를 통해 양질의 기업이 동종 업계의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나은 실적을 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