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책임경영 외친 정용진..."등기이사로 밸류업 올인해야"
"지난 5년간 이마트 주가 46%, 10년간 70% 폭락" “본업과 무관한 관계사들, 비핵심자산 매각해 빚 갚아야” 책임경영, 투명경영 의지...거버넌스 개편으로 이어져야 소수주주들 주주제안 보내…"집중투표제·보수심의제 도입"
[ESG경제신문=김대우 기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소탈하고 인심좋은 이웃집 아저씨 이미지를 갖고 있다. SNS 팔로우들과 형·동생 처럼 소통하며, 자신의 일상생활과 생각을 격의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정 회장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과 만찬에 국내 재계 인사로는 유일하게 참석해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이끌고 있는 신세계와 이마트 주주들에겐 무능하고 무책임한 오너이자 최고경영자(CEO)라고 지탄을 받는다. 지난 10년간 이마트를 비롯한 신세계 그룹사들의 주가는 처참하게 떨어졌고,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는 곤두박질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사업을 찾아보기 힘든 가운데 새로운 먹거리를 찾겠다며 나선 인수합병(M&A)과 투자는 헛발질의 연속이었고, 그룹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계열 분리 공식 발표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개편과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정용진 회장이 최근 모친인 이명희 그룹 총괄회장의 이마트 지분 10% 매입을 완료하는 등 거버넌스 개편 작업도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정용진은 과연 그룹을 되살릴 수 있을까?
형식적 거버넌스 개편 완료, 이젠 실력과 실적으로 답해야
정 회장은 지난 11일 장 마감후 시간외매매로 이 총괄회장 보유 이마트 주식 278만7582주를 주당 8만760원에 매수했다. 주당 가격은 친족 간 거래인 관계로 당일 종가(6만7300원)에 20% 할증이 붙은 액수다. 전체 거래액은 2251억2512만원이다. 정 회장의 이마트 보유 지분은 18.56%(517만2911주)에서 28.56%(796만493주)로 늘었다.이에 따라 이마트에 대한 경영권도 한층 강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마트는 지난달 정 회장 모자간의 주식거래계획을 공시하면서 "정 회장이 이마트 최대주주로서 성과주의에 입각한 책임경영을 더 강화하기 위한 조치이고,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책임의식과 자신감을 시장에 보여준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 회장이 증여 대신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매수방식으로 주식을 확보한 것도 책임경영 의지를 드러내고 궁극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게 이마트의 설명이다.
정 회장은 또 이번 거래 당일이 이마트의 지난해 및 4분기 실적공시와 주당 최소배당금 상향 및 자사주 소각 등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공시가 있었던 날이라 주가가 전일 종가(6만2600원)보다 7.5%나 뛰어 산술적으로 157억원을 더 투입해야 했다.
매입 비용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고자 밸류업 공시를 며칠 뒤로 미루는 등의 방법이 있었음에도 정 회장이 굳이 투명하게 절차대로 진행한 것은 책임경영, 투명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해 시장에 믿음을 주는 게 장기적으로 더 큰 자산이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온다.
책임경영, 기업가치 제고, 책임의식
정 회장이 이마트 승계를 마무리하면서 책임경영과 투명경영을 외치고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마트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정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본업 경쟁력’과 ‘혁신 DNA’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시급하고도 직접적인 조치는 빚 청산과 거버넌스 개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 회장은 '이마트가 거버넌스 개선과 주주권익 측면에서 구조적인 저평가에 시달리고 있다'는 시장의 평가를 귀담아 듣고 기업가치 제고에 올인해야 한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정 회장이 지난해 3월 8일 그룹 회장에 취임한 후 지난달 15일 기준으로 이마트 주가는 9% 하락했다. 총차입금 14조2000억원에서 현금 및 현금성자산 2조1000억원을 뺀 순차입금은 12조1000억원에 달한다. 9개월 사이에 1조원 가량 불어났다. 지난 5년간 이마트 주가는 46%, 10년간 70% 폭락했다. 기업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진 것이다.
급격한 기업가치 하락은 정 회장의 방만한 경영, 차입에 의존한 M&A 실패, 쿠팡 등 이커머스 대응 전략 부재 등에 기인한 것으로, 인력 구조조정이나 대표이사 교체, 비용 절감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심각한 ‘재무상태표 문제’라는 것이 포럼의 분석이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빚이 많은 기업은 금융부채 상환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주가 상승이 불가능하다"며 "기업가치 중 금융부채 87%, 시총 13%(1조8000억원) 구조는 시장이 이마트 재무상태 및 현금흐름을 매우 걱정한다는 의미이고, 7배의 순차입금/시총 배수는 비정상적이고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진단한다.
이래서 부채를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 회장이 사업부 매각 등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마트는 수년간 많은 M&A를 수조원의 차입금으로 진행했다.
미국 와이너리 등 본업과 무관한 딜도 많았고 스타벅스커피코리아 같이 성급한 마음에 불리한 조건으로 지분을 고가에 인수하기도 했다. 본업과 무관한 관계사들은 모두 정리하는 자산 매각을 통해 차입금 축소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 회장이 오는 3월 주총에서 등기이사로 취임, 이사회를 통해 전면에 등장해 명실상부한 책임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간 정 회장은 등기이사가 아니어서 경영 실패, 차입금 누적 등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보수는 많이 받는 등 책임있는 경영자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주주의 ‘물음표’에 당당하게 실적으로 평가받고 ‘느낌표’로 바꾸라는 얘기다.
독립이사 선임 등 이사회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거버넌스 개편도 시급한 과제다. 포럼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대부분의 관계사에서 본원과 별 관계가 없는 국세청, 감사원, 검찰, 김앤장 등 권력기관 출신의 권위주의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사외이사들로 이사회가 구성된다. 본업인 컨슈머, 리테일, IT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주주를 위해 일하는 ‘독립이사’를 선임하는 등 이사회를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아울러 이마트 이사회가 수년간 이어진 대규모 주주 손실과 악화되는 경영실적을 고려해 정 회장과 부친 정재은 명예회장, 모친 이명희 총괄회장에 대한 급여 및 상여금 지급이 적절한지를 선관주의 입장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반기보고서에 명기된 정 회장에 대한 7억원 상여금 지급이 적절한지 확인이 필요하고, 정 명예회장과 이 총괄회장이 ‘상근’하지 않는다면 각각 9억원의 보수 지급이 적절한지도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한채양 대표의 보수 6억원보다 50% 많다.
“거버넌스와 주주권익 측면서 구조적인 저평가에 시달려”
소수주주 플랫폼 ‘액트’와 경제개혁연대는 3월 주총을 앞두고 보낸 주주제안서에서 밸류업 계획 공개와 자사주 전량 소각, 집중투표 배제 조항 삭제, 주주총회 보수심의제 도입, ESG 사항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 등 5가지를 제안했다.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측 후보의 이사 선임 가능성을 높여 기업 거버넌스 개선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보수심의제가 도입된다면 경영진 보수의 합리성과 그에 대한 주주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액트는 지난해 3분기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16에 불과한 이마트는 거버넌스 개선과 주주권익 측면에서 구조적인 저평가에 시달리고 있다며 최근 발표한 밸류업 계획을 보완해 올해 상반기까지 재공시하고, 그 이행 현황을 매 분기 공시할 것을 요청했다. 지난 11일 이마트는 최소배당금을 기존의 주당 2000원에서 2500원으로 25% 상향하고 기보유 자사주의 절반 수준을 소각하는 밸류업 계획을 공시했었다.
이에 대해 액트는 "일부만 소각하고 나머지 약 52만주는 계속 보유할 합리적인 이유나 필요성을 찾기가 어렵다"고 지적하고 ”나머지 자사주는 2021년 네이버와 상호주를 형성한 것처럼 우호 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신세계그룹은 1997년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뒤 지난 2023년 기준 매출 71조원을 넘어서며 국내 최대 유통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백화점은 고급화 전략으로 업계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고, 이마트도 전국 150여개 점포를 바탕으로 국내 1위 대형마트로 자리매김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0월 정용진 회장이 주도하는 이마트 부문과 정유경 회장이 주도하는 백화점 계열로 사업 영역을 구분했다.
이번 정 회장의 지분 매입은 이마트와 ㈜신세계의 계열 분리를 위한 후속조치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상 친족기업 간 계열 분리를 하려면 상장사의 상호 보유 지분은 3% 미만, 비상장사의 상호 보유 지분은 10% 미만이어야 한다. 이 총괄회장이 이마트 지분을 털어냄으로써 큰 숙제를 하나 해결한 셈이다. 앞으로 남은 건 온라인 쇼핑몰 SSG닷컴(쓱닷컴) 등 신세계와 얽혀 있는 지분 정리다. 현재 SSG닷컴 지분은 이마트가 45.6%, 신세계가 24.4%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마트의 주요 계열사로는 SSG닷컴(쓱닷컴), G마켓 SCK컴퍼니(스타벅스), 이마트24, 신세계프라퍼티(스타필드), 신세계푸드, 조선호텔&리조트 등이 있다. 신세계는 백화점 사업을 영위하며 신세계디에프(면세점)와 신세계인터내셔날(패션·뷰티), 신세계센트럴시티, 신세계까사, 신세계라이브쇼핑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