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2·3당 기후정책…목표부터 달성 전략까지 제각각
CDU·CSU·SPD, 2045 넷제로 목표 지지...AfD, 기후변화 부정 CDU·CSU, 핵발전소 재개 고려...SPD, 재생에너지 확대 집중 CDU·CSU-SPD, 연정 구성 유력...에너지 정책 변화 지켜봐야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독일 연방의회 총선거에서 득표율 상위 3당은 2045년 넷제로 기후목표 지지 여부는 물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치러진 독일 연방의회 총선거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1위, 극우성향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위,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이 3위를 차지했다. 전체 630석 가운데 CDU·CSU 연합이 208석, AfD 152석, SPD 120석, 녹색당 85석, 좌파당 64석을 배분받는다.
영국의 로펌 프레쉬필드(Freshfield)는 지난 13일 내놓은 ‘독일 연방선거 2025: 에너지 정책 미리보기’ 보고서에서 “다음 정부에서 기후 행동과 경제 발전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데 성공할지는 에너지 전환뿐만 아니라 향후 독일의 장기적인 경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면서 “야심찬 국가 기후 목표가 점점 더 면밀한 검토를 받는 가운데, 에너지 전환의 결정적인 지속 여부는 소비자의 에너지 비용을 국가가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2045 넷제로? 기후변화 부정하는 AfD
독일은 연방기후보호법을 통해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를 최소 65%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2035 NDC)는 1990년 대비 77% 감축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독일의 기후정책은 지난 정부에서 부침을 겪었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끌었던 SPD, 녹색당, 자유민주당(FDP) 연립정부는 임시 편성된 코로나19 회복 예산 600억 유로를 기후변환기금으로 용도를 변경했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을 받으며 자금 공백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헌재 결정 이후 전부처에 신규지출 전면 중단을 요청하고 기후변환기금의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그럼에도 CDU·CSU는 독일이 2045년까지 기후 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확고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기후 목표와 경제 경쟁력 유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CDU·CSU 연합의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지난달 "파리 기후협정과 야심찬 기후 목표를 고수하되, 이념이 아닌 실용적 해결책으로 달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CDU의 전 의원 우르줄라 하이넨에서는 클린에너지와이어(Clean Energy Wire)와의 인터뷰에서 "기후정책은 메르츠의 우선순위가 아닐 것"이라면서도 "그는 탈탄소화를 위해 규제보다 시장 기반 도구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SPD 역시 유럽연합(EU, 2050넷제로목표)과 독일의 기후 목표를 준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SPD는 기후 보호를 공공 서비스의 일환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AfD는 "인간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과학적 합의"에 대해 반복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AfD가 지난달 발간한 ‘AfD의 프로그램북(공약집)’에는 “인간이 기후변화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면서 “수천억 유로의 비용이 드는 에너지 전환을 이런 토대 위에서 진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AfD는 이같은 기후변화 부정론을 기본으로, 기후 보호와 관련된 모든 정책과 세금 지출을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AfD는 파리협정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화석연료(석탄, 천연가스, 석유 등)가 반드시 필요하고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화석연료부터 원전, 재생에너지까지 다양한 에너지원 검토
CDU·CSU와 SPD는 같은 2045 넷제로 목표를 지지하지만,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CDU·CSU는 폐쇄된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하는 것에 대한 "전문가 검토"를 제안하고, 차세대 원자로(4세대, 5세대)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또한 기존 독일 정부의 2038년까지 석탄 발전소 단계적 폐지 목표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CDU·CSU의 메르츠 대표는 지난 2023년 세계 최초로 탈원전에 성공한 독일이 다시 원전을 재가동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CDU·CSU는 전력요금을 최소 5센트/kWh로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력요금 인하를 위한 공공재원을 탄소가격제 수익으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DU·CSU는 탄소가격제를 기후 정책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삼고, 이를 확대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SPD는 가정용 태양광 패널 및 지역 풍력 발전소를 확대하고자 한다. SPD는 EU 전력 시장의 통합을 추진하며, 에너지 집약 산업(유리, 배터리, 화학 산업 등)에 대한 전기요금 보조금을 확대할 예정이다.
CDU·CSU와 SPD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들은 또한 실용적인 수준에서 수소 네트워크 확장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AfD는 재생에너지 산업, 풍력 및 태양광 발전소 설치가 주변 생태계와 자연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AfD는 공약집을 통해 “(풍력 터빈 설치로 인한)새, 박쥐, 곤충의 죽음은 녹색 에너지 전환의 부수적 피해로 개체수가 감소하고 보호종이 멸종될 수 있다”면서 “(태양광 패널 설치의 경우) 토지 이용이 너무 많고 주변 온도 상승을 일으킨다”고 비판했다.
CDU·CSU-SPD, 연립정부 구성...정책 변화 주목해야
한편, 이번 선거에서 제1당에 오른 CDU·CSU이 SPD와의 연립정부 협상에 나서겠다고 발표하면서, AfD의 영향력은 의회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등 다수 외신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 대표는 24일(현지시간) 베를린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SPD와 건설적이고 신속한 대화로 대략 부활절(4월20일)까지 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독일의 전통적인 보수정당인 CDU·CSU는 최근 몇년간 극우정당으로 급부상한 AfD와의 연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선거 직후 "역사적 승리"라며 "우리는 CDU와 연정 협상에 열려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정치적 변화도 불가능하다"며 연정에 참여시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독일 정당들은 AfD가 민주주의를 해친다며 연정 구성을 비롯한 모든 협력을 거부하는 ‘방화벽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민 문제와 에너지 전환 정책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 CDU·CSU와 SPD가 연정을 구성하게 되면, 이들 정책간의 차이가 어떻게 조율되고 변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