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수 칼럼] 한국 기업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률 세계 ‘꼴찌’ 불명예
CDP에 감축 목표 제시한 세계 1041개 기업 대상 하버드 등 대학 연구팀 2020년 목표 달성 여부 분석 대상 기업 60.8%가 성공, 9%는 감축목표 달성 실패 한국 기업은 46곳 중 26%만 달성, 33개국 중 ‘꼴찌’ 목표 제시 때 언론 주목받고 ESG 점수 상향 재미 실패하면 슬그머니 목표 삭제하며 비판 벗어나
[ESG경제신문=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국내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국제 사회와 이해관계자들에게 약속하고서는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축 약속 발표로 자사의 ESG 평가 점수는 올려놓고는 정작 목표를 ‘공약(空約)’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 뉴욕대학의 스턴 경영대학원과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의 하스 경영대학원,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팀은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했던 전 세계 1041개 기업의 감축 이행 상황을 공동으로 분석, 그 결과를 최근 ‘네이처 기후 변화(Nature Climate Chnage)’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기업의 이행 상황을 국가별로 분류해 분석하기도 했는데, 한국 기업(46개 기업)은 감축 목표 달성률이 26%로 국가명이 제시된 33개 국가 가운데 가장 낮았다. 싱가포르나 뉴질랜드의 경우 전체 대상 기업수가 5개로 한국보다 작지만, 달성률은 80%로 1위였다.
미국은 71%(251개 기업 중 152개)의 달성률을 보였고, 영국은 66%(105개 중 69개), 독일은 65%(40개 중 26개), 일본은 57%(165개 중 57개)로 나타났다. 트럼프의 반ESG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이 감축목표 달성에 모범을 보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중국은 2020년 감축 목표를 제시한 기업이 4개에 불과했지만, 절반인 2곳이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로 달성 여부 확인
연구팀은 각 기업이 탄소공개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 CDP)에 제시한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바탕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CDP는 기업, 도시, 국가 등이 탄소 배출량, 기후변화 대응 전략, 환경 영향을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2000년에 설립된 CDP는 전 세계 투자자와 이해관계자를 대신해 기업의 탄소 배출량, 기후변화 대응, 수자원 및 산림 관리 현황 등을 조사하고 평가하며, 이를 통해 기업의 환경 정보 공개를 촉진하고,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투자 및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스코프 1(기업 자체 배출량)과 스코프 2(기업 사용 전력 등의 배출량)에 해당하는 배출량 중 80% 이상을 감축 대상으로 포함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각 기업의 목표 달성 여부는 CDP를 통해 공개한 데이터, 기업이 발행한 지속가능성 보고서, 언론 보도자료 등을 통해 확인했다.
2020년 기준으로 분석 대상인 1041개 기업의 스코프 1 온실가스 배출량을 다 더하면 연간 25억 톤으로, 글로벌 배출량의 약 5%에 해당한다.
기업 31%는 슬그머니 목표 삭제해
분석 결과, 1041개 기업 가운데 633개(60.8%)는 목표를 달성했고, 88개(9%)가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며, 320개(31%)는 목표가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목표가 사라졌다는 것은 이전에 2020년을 목표 연도로 정하고 감축 목표를 설정했지만, 2021년까지도 해당 목표에 대한 이행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기업들은 제시했던 배출 목표를 슬그머니 삭제하거나, 목표 연도를 수정해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기존 목표의 달성 여부에 대한 공개를 회피했다.
연구팀은 각 기업의 과거 배출 추세를 바탕으로 2020년 배출량을 추산했는데, 2020년 목표를 삭제한 기업의 63.2%는 해당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한편, 성공 비율이 가장 낮은 산업은 자재·에너지 분야였다. 자재 부분은 실패율이 14%였고, 에너지 분야 기업은 39%에 이르렀다. 고배출 산업 부문에서는 기업의 목표가 사라진 경우가 많았고 목표 달성률도 낮았는데, 이는 감축에 어려움이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달성률이 높은 산업은 의료·금융·부동산·정보기술 분야로 탄소 집약도가 비교적 낮은 산업들이었다.
언론 보도 많은 기업 달성 성공률 높아
한국의 경우 12개 기업(26%)이 달성에 성공했고, 8개 기업(17%)은 실패했으며, 26개 기업(57%)의 경우 목표를 삭제했다.
한국 기업 중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곳은 포스코, 한국남동발전 등 한국전력 계열사들, 현대제철, 삼성전자, 쌍용양회, 에스오일, 엘지화학, GS칼텍스, SK에너지, 삼표, 롯데케미칼 등이 꼽힌다.
연구팀은 “배출량 목표 달성률은 법치주의와 주주 보호가 전체 시스템의 특징인 관습법 국가에서 더 높았다”고 지적했다.
의무적 환경 공개 및 탄소 가격 책정 규정이 있는 국가의 기업에서 오히려 달성률이 더 낮았는데, 이는 목표를 삭제한 기업의 비율이 높았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의무 감축 규정이 있는 국가의 기업은 목표를 달성하라는 압력에 더 많이 직면하고 있는데, 목표 달성에 실패를 인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목표를 지우는 것이 비용이 덜 드는 옵션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다만, 규제 자체가 없으면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도 내용상 목표 달성의 ‘품질’이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감축 성과를 부풀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선진국 기업과 비교했을 때, 개발도상국 기업에서 실패율이 약간 더 높았다. 이는 잠재적으로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압력과 경제 성장의 요구가 상충한 탓으로 해석됐다.
언론의 자유가 높은 국가에서는 달성 실패율이나 목표 삭제 비율이 모두 낮았다.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해 언론 보도가 많은 기업은 달성률이 높고, 목표가 사라진 비율도 낮았다.
실패해도 ‘처벌’ 받는 기업 거의 없어
목표 달성에 실패한 기업 가운데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배출 목표 달성에 실패했음을 밝힌 기업은 26개였고, ‘실패’ 등의 단어를 사용해 실패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기업은 16개에 불과했다.
반면 배출 목표 성과와 관련해 보도자료를 배포한 기업은 2곳으로, 둘 다 감축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감축 목표를 모니터링하는 미디어의 역할은 미미했는데, 기업이 공개한 내용을 기반으로 수동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을 보였다. 목표 달성에 실패한 88개 회사 중 3개만이 미디어에 보도됐는데, 이들 3개 회사 모두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목표 실패를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이에 비해 목표를 달성한 회사 가운데 관련 뉴스 보도가 이뤄진 기업은 48개인데, 이 가운데 12개 기업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020년 배출 목표가 사라진 기업에 대해서는 보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감축 목표 성과를 자발적으로 공개함에 있어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투명성이 낮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목표 달성에 실패한 기업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나 ESG 평가 기관의 평가 점수 하락 여부를 조사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부정적인 결과를 찾지 못했다”면서 “이는 전반적으로 기업이 배출 감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처벌’ 받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행 상황을 추적 감시하는 체계 갖춰야
연구팀은 기업이 감축 목표를 발표할 때는 미디어가 주목해 보도하고, ESG 평가기관으로부터도 후한 평가 점수를 받는 등 혜택을 누리지만, 언론기관이나 ESG 평가기관은 정작 그 결과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미디어 보도는 실패를 은폐하는 기업보다 실패를 솔직하게 밝히는 기업을 더 많이 질책하는 경향도 있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한 기업으로서는 목표 달성에 성공하면 그만큼 생색을 낼 수 있고, 실패해도 잘 감추기만 한다면 ‘무료 점심’을 챙길 수 있는 셈이다. 손해볼 게 없는 장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이 목표를 제시만 할 뿐, 목표 달성에는 소홀할 경우 판이 깨질 수도 있다. 이해관계자가 목표를 달성한 회사, 실패한 회사 또는 포기한 회사를 구별할 수 없다면 목표를 제시하거나 목표를 달성한 기업도 인센티브를 잃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목표 제시 자체가 빛을 잃게 되고, 그나마 기대할 수 있던 감축 성과도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연구팀의 우려다.
결국,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나서도록 독려하기 위해서는 감축 목표를 제시한 기업들이 감축 추진 상황과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적시에 발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나 ESG 평가기관에서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감축 성과를 적절하게 평가하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중간에 목표를 슬그머니 취소하는 기업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겸 칼럼니스트 envirep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