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내부탄소가격 도마에...사실상 “외부탄소가격”

국내 기업 내부탄소가격 해외 기업과 격차 커

2025-04-28     이신형 기자
국내 기업의 내부탄소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돼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ESG경제신문=이신형기자]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내부탄소가격을 적용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 기업의 낮은 내부탄소가격은 다른 나라보다 낮은 탄소배출권 가격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내부탄소가격제(Internal Carbon Pricing, ICP)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탄소배출량에 대해 내부적으로 책정한 가격을 적용해 투자나 사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제도다. 기업은 이를 통해 기후 변화와 관련된 위험과 기회를 정량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중요성 때문에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마련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ESG 공시기준)의 글로벌 기준선은 내부탄소가격의 톤당 가격을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반면에 국내 기준인 KSSB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은 내부탄소가격 톤당 가격 공시 여부를 기업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CDP한국위원회는 28일 국내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수준을 보여주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기업의 내부탄소 도입률이 48%에 달하나, “국내 기업은 tCO₂e당 1~10달러, 글로벌은 60~90달러로 설정한 기업 비율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국제통화기금 IMF는 2030년 적정 탄소가격은 75달러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CDP한국위원회는 이런 국내외 내부탄소가격의 격차는 지난해 평균 약 6달러에 그쳤던 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반영된 결과라며 “탄소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형성돼 저탄소 투자를 유도하고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려는 정책 본연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외부탄소 가격”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김정석 책임연구원은 이날 공개한 내부탄소가격은 국내외 동일하게 ‘그림자 탄소가격(Shadow Carbon Price)’이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그림자 탄소가격은 기후 시나리오 분석에 많이 쓰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와 녹색금융협의체(NGFS) 등의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와 국가별 탄소중립 달성 정책, 시장 가격 등을 기반으로 도출한 탄소 가격이다.

이렇게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나 탄소중립 달성 정책을 고려하면서 내부탄소가격을 정하면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리스크가 내부탄소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내부탄소가격은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나 정책 등을 고려하지 않고 탄소배출권시장의 배출권 시장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부탄소가격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외부탄소가격이고 그러다 보니 국내의 낮은 배출권 가격이 고스란히 반영되면서 해외 기업의 내부탄소가격과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투자 등의 의사결정을 할 때 내부탄소가격을 얼마로 할 건가 정하는 방식으로 그림자 탄소가격을 활용하는데, 국내 기업은 내부탄소가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대부분 시장가격이나 시장가격 평균을 내부탄소가격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반영이 안 된 리스크를 고려해 내부탄소가격을 정해야 하는데 규제시장(ETS)의 배출권 거래 가격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기업이 많다”며 “내부탄소가격과 외부탄소가격(배출권 가격)은 엄연히 다른데 외부 가격을 그대로 적용하는 사례가 많아 외부 가격이 바뀌면 내부 가격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KIS자산평가의 박용진 ESG사업본부장도 “대다수 배출권거래제 대상 국내 기업은 내부탄소가격을 정할 때 배출권시장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며 “실제로는 내부탄소가격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부탄소가격 어떻게 산출하나

최종원 연세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해 12월 한국회계기준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세미나’에서 내부탄소가격 산출을 위한 접근 방식으로 ▲탄소배출권 가격의 실제 거래 가격을 반영하는 배출권거래제 가격 수준 기반 ▲국제에너지기구(IEA)와 녹색금융협의체(NGFS) 등의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 기반 ▲국가별 정책과 시장 특성을 반영하는 정책 및 시장 분석 기반 ▲기업의 실제 탈탄소 프로젝트 비용을 반영하는 묵시적 가격 기반을 소개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중 배출권 거래제 기반과 묵시적 가격 기반의 내부탄소가격은 기업의 현재 상황을 반영해 단기적인 탄소 감축 실행 가능성을 높이는 데 적합하다. 다만 배출권 시장을 기반으로 할 경우 가격 변동성이 높아 불안정성이 상존하고, 묵시적 가격을 기반으로 할 경우에는 외부 요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기후 시나리오 분석에 많이 쓰이는 온실가스 배출량 시나리오 기반으로 내부탄소가격을 산출할 경우 기업의 중장기적 탈탄소 목표 수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책 및 시장 분석을 기반으로 할 경우 규제나 정책과의 연계성을 강화해 정책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다.

[표] 내부탄소가격 산출을 위한 접근 방법

자료=최종원 교수

구체적인 내부탄소가격 산정 방식으로 최 교수는 ▲그림자 탄소가격(Shadow Carbon Price) ▲암묵적 탄소가격(Implicit Carbon Price) ▲내부 탄소 수수료(Internal Carbon Fees)를 소개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그림자 탄소가격은 장기적인 탄소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데 적합하고 외부 설득력을 높이는 데 강점이 있다. 반면에 실제 시장 상황과 괴리가 있을 수 있고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가 있다.

암묵적 탄소가격은 기업의 과거 실제 투자 비용이나 탄소 감축 성과를 기반으로 산출된 암묵적 가격으로 내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이고 신뢰도 높은 내부탄소가격 산출이 가능하다. 반면에 과거 데이터에 의존하다 보니 장기적 목표 설정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내부 탄소수수료는 조직 내 사업이나 부서별 탄소배출량에 따라 내부적으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실질적인 탄소 감축을 유도할 수 있고 부서간 책임과 탄소 감축 기여도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적인 합의가 없을 경우 도입하기 어렵고 운영 비용도 발생한다.

 

[표] 내부탄소가격 산출 방식

자료=최종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