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탄소시장 진입 가속화”...한국 배출권 금융자산 되려면?
탈탄소 규제 이어 탄소 무역장벽 현실화 "EU ETS 중장기적으로 성장세 지속 전망" "한국 배출권도 중장기적으로 소폭 상승 예상"
[ESG경제신문=이신형기자] 탈탄소 규제에 이은 탄소 무역장벽이 현실화하면서 탄소 배출 비용이 산업경쟁력을 좌우할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탄소배출권의 수요가 늘어나고 거래 가능한 투자자산으로 전환하면서 금융기관의 탄소시장 진입도 가속화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물론 가격 형성 기능이 제한적인 한국의 탄소배출권 가격도 중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규제적 탄소시장을 보완하는 전략적 자산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탄소 크레딧을 활용한 기업의 스코프 3 온실가스 배출량 상쇄나 잔류배출량 상쇄를 허용하는 방안이 최근 잇따라 제기되면서 고품질 탄소 크레딧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발간한 ‘탄소배출권도 자산이다’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탄소는 아직 규제지만 곧 관세가 될 수 있다”며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탄소는 기후 규제를 넘어 무역과 외교 전략의 수단으로 부상 중”이라고 썼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이 예정된 가운데, 미국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6월 민주당의 셸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은 청정경쟁법안(CleanCompetition Act, CCA)을 발의됐다. 탄소세를 부과하지 않는 나라로부터 수입하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톤당 55달러의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법안으로 철강과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등 고탄소 업종의 수입품이 과세 대상이다. 이 법안은 현재 미국 의회에서 계류 중이다.
보고서는 이 법이 제정되면 “한국처럼 탄소배출권 가격이 낮거나 불투명한 국가의 수출품은 상대적 리스크가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공화당도 탄소 배출 수입품에 탄소국경세 형태의 세금을 부과하는 해외오염관세법(Foreign Pollution Fee Act, FPF)를 발의했다.
PWC에 따르면 공화당은 오염집약도가 미국산 유사 제품보다 10% 이상 높은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이 법안을 2023년 11월 발의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13일 내용을 수정한 새로운 FPF 법안을 발의했다. 수정안은 ▲적용대상을 탄소집약적 제품군으로 변경하고 ▲탄소집약도 계산 방식 추가 ▲FTA 체결국에 대한 예외 조항 일부 수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 EU와 미국 탄소 관련 무역규제
PWC는 지난 2월 배포판 뉴스레터에서 “CCA와 FPF 등 두 법안의 취지와 접근 방식, 우선 순위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을 규제하고 미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동일한 목표”가 있다며 “두 법안이 모두 한 번에 확정되기보다 법안에 대한 정치적 입장, 국제 무역 환경, 실현가능성 등을 고려해 현재 시점에서는 공화당이 발의한 FPF를 통해 외국 제품에만 초점을 맞춘 규제를 먼저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이후 민주당의 CCA 내용을 일부 수정하거나 병합하는 방식으로 통합 및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탄소, 투자자산으로 전환 중”
PWC는 주요국의 탄소 규제가 탄소집약도가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제품별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비용을 부과하기 때문에 결국 체계적인 탄소 관리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탄소 배출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탄소배출권 수요도 늘어 탄소배출권이 투자 수단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메리츠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25%에 탄소가격제가 적용되고 있다. 약 19%는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약 6%는 탄소세가 적용된다. 지난 2005년에는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적용되는 배출량의 비중이 5%에 불과했다.
MSCI는 탄소배출권 시장이 2050년까지 약 450억~250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클레이스나 모건스탠리 등은 자발적 탄소시장도 성장세가 이어져 오는 2030년 시장 규모가 300억~2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과 시장 유동성 확대로 탄소배출권이 투자 자산으로 부상하면서 은행과 자산운용사를 포함한 금융기관의 탄소시장 진입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한국 배출권이 금융자산이 되려면?
메리츠증권 보고서는 탄소배출권이 금융자산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제도적 신뢰도 ▲시장 참여 다양성 ▲유동성 확보 ▲가격 투명성 ▲금융상품화 가능성 ▲헤지 및 투자 기능 ▲국제 연계성을 꼽았다.
보고서는 EU ETS는 이런 조건을 대부분 충족하는 반면 국내 ETS는 이런 조건을 대부분 충족하지 못한다며 특히 시장 유동성과 가격 신뢰성, 제도적 보완성 등에서 큰 격차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탄소배출권 가격이 제도 설계는 물론 정책 시그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2021~2023년 가격 급등은 EU ETS의 공급 조절 정책(MSR), CBAM 도입 등 정책 변수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구조적인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 제도 신뢰도 하락, 유동성 부족 시에는 배출권 가격이 정책 시그널에 제한적으로 반응한다고 지적하고 한국 ETS를 예로 들었다. “가격 형성 기능이 약화돼 동일한 정책 신호에도 둔감한 구조”로 “투자 자산으로써 ETS 가격의 신뢰도와 활용도가 약한 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ETS의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로 ▲낮은 유상 할당 비중 ▲유동성 부족 ▲가격 형성 기능 부재 ▲현물 위주 거래를 꼽았다.
국내 ETS는 무상할당 비중이 매우 높은 구조로 설계됐고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에도 유상할당 비중이 10%에 불과해 다른 나라 ETS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유상 경매를 통한 시장 가격 형성과 유동성 공급 역할이 미흡해 수요 충격에도 가격 조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장 유동성도 매수와 매도 양측에서 모두 부족해 거래는 이루어지고 있으나, 시장 가격을 형성할 수준의 유동성은 부족하다고 지적됐다. 정산 기간이 다가오면 거래량이 폭증하나 이는 제도적 이행 의무에 따른 비자발적 수요로 지속적인 수요와 거리가 멀다. 따라서 시장가격이 미래 가치를 반영하지 않고 단기 수급만 반영해 가격 정보기능이 상실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고서는 정부가 탄소배출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선물이나 ETF 등 금융상품을 활성화하기 이전에 “유동성 확보가 선결 과제”라며 “실물 거래만으로는 가격과 유동성 개선에 한계가 있으며 ETS의 유동성 확대는 투자 자산화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탄소배출권 관련 ETF와 선물 등이 거래소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으나, 국내 ETS는 실물 기반의 시장이다.
정부는 배출권 거래 활성화를 위해 배출권 선물 시장을 개설하고 증권사가 발행하는 지수추종형 상품인 ETF와 자산운용사가 발행하는 지수추종형 상품 ETN 출시를 허용할 계획이다.
보고서는 전환부문과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일부 산업에 배출권 거래가 집중되는 것도 한국 ETS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특정 업종이 거래량과 배출권 유통을 주도해 수급 비대칭 구조를 고착화했고 거래량 대부분이 일부 대규모 탄소 배출 기업에 의해 발생해 시장 전체의 가격 신호가 왜곡되거나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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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캘리포니아 배출권 중장기적으로 성장세 회복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EU와 미국 캘리포니아 탄소배출권 가격이 단기적으로는 박스권에서 거래되거나 약세를 보일 것으로 보이나,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세를 회복할 전망이다.
올해 EU 배출권은 산업생산 위축과 발전부문의 배출량 감소, 정책 모멘텀 둔화에 따른 수요 부진으로 톤당 65~85유로 범위 내에서 박스권 등락이 예상됐다. 수요 위축에도 EU 당국의 시장안정조치를 통한 수급 조절로 큰 폭의 하락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U 배출권은 2026~2030년 중 톤당 100~170유로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단계적 적용으로 수입제품에 탄소비용이 부과되고 역내 감축 필요성이 커지면서 배출권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또한 EU가 204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현재보다 강화된 수준으로 설정할 예정이어서 중장기 감축 수요가 늘어나고 금융 투자자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강세 전망의 요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연내 약 30~33달러 수준에서 안정세를 보일 거승로 전망됐다. 연방정부 차원의 탄소 규제 완화 가능성이 약세 요인으로 꼽히지만 청정경쟁법 발효 기대감과 캘리포니아주 당국의 최저입찰가격 상향조정으로 하방 경직성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캘리포니아주 배출권은 오는 2026~2030년 중에는 톤당 60~180달러 내외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주정부가 2045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로 예정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연장할 예정이어서 시장의 신뢰도가 상승하고 주정부가 2030년까지 1990년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8%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상승 요인으로 꼽혔다. 최저입찰가격도 꾸준히 상승하면서 하방경직성을 높이고 있고 ETF와 선물시장을 통한 기관투자자의 투자 자금 유입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 탄소배출권 가격은 연내 톤당 8000원~1만원 수준의 박스권에서 거래될 것으로 전망됐다. 오는 2026~2030년에는 톤당 1만원~1만4000원 수준으로 점진적인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이어지는 4차 할당계획 기간 중 유상할당을 상향조정하고 소폭이나마 배출허용총량을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한 탄소차액계약제도 도입 시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제3자 거래 확대와 파생상품 시장 개설이 예정돼 있는 점도 가격 상승 요인으로 꼽혔다.
탄소차액계약제도는 기업이 탄소 감축 신기술을 도입할 경우 정부가 일정기간 고정된 탄소가격을 보장해 기업의 감축 투자를 유도하는 제도다.
자발적 탄소시장도 성장 전망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탄소 크레딧을 사용한 상쇄를 조건부로 허용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 이니셔티브(Voluntary Carbon Markets Integrity Initiative, VCMI)는 지난 4월 말 기업의 스코프 3 배출량 상쇄를 위한 탄소 크레딧 사용 지침을 제시했다.
이에 앞서 프랑스 정부는 잔여 배출량 상쇄에 탄소 크레딧 사용을 허용하는 '탄소 크레딧 헌장'을 마련했고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도 잔여 배출량 상쇄에 탄소 크레딧 사용을 허용하는 지침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런 흐름에 따라 향후 고품질 탄소 크레딧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메리츠 증권 보고서는 “탄소 감축 수요 증가와 기업의 ESG 전략 강화를 배경으로 자발적 탄소시장 거래 규모 및 (탄소 크레딧의)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일부 고가 크레딧이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어 시장 평균 가격 지표보다 감축 사업의 품질이나 인증 기관에 따라 “세분화된 투자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한 탄소 크레딧이 ETS 배출권 가격 급등락시 대체 수단으로 포트폴리오를 완충하는 기능을 할 수 있어 규제시장의 리스크 헤지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연기금이나 기관 투자자의 기준에서 자산 분산 및 신흥시장 접근 수단이 될 수 있고 기존 금융자산과 상관계수가 낮아 분산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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