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광물 신탁’ 설치 제안…희토류 전쟁 끝날까?
광물 생산국-소비국 중개 플랫폼 G7회의 앞두고 전문가 설립 제안 공급국, 글로벌 시장 공정가격 혜택 수요국, 공급망·가격 안정 이점 과도한 개발 따른 환경파괴 예방도 중·러 등 빠진다면 기대 효과 줄어
[ESG경제신문=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최근 일본·인도 등지에서 전기자동차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고, 미국-중국이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광물 부족으로 탄소중립에 필요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를 제때 설치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 전문가 그룹이 ‘글로벌 광물 신탁(Global Minerals Trust)’을 설치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 세계 광물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공정한 가격을 보장하고, 비효율적인 신규 광산 개발을 억제하며, 개발도상국이 광물 산업을 지속 가능하게 확장할 수 있도록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중립적인 관리자 또는 중개자 역할을 할 기관을 설립하자는 아이디어다.
투명한 메커니즘, 공동 투자, 이익 공유를 통해 리튬·코발트·니켈·희토류와 같은 핵심 광물의 판매 및 거래를 조정하는 중립적인 플랫폼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광물 안보 파트너십(MSP)’과 같이 광물 조달을 위한 지역 파트너십의 구축이 시도되고 있는데, 이런 시도가 세계적으로 확대된다면 글로벌 광물 신탁의 설립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란 얘기다.
국제연구팀 ‘사이언스’ 논문 통해 제안
미국 델라웨어대학 샐림 알리 교수와 호주·스위스·네덜란드·중국 등의 전문가들은 지난 5일(현지 시간)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글로벌 광물 신탁(GMT)의 설립을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오는 15~17일 캐나다 앨버타주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채택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이 회의에 이재명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논문에서 “전 세계가 지속 가능한 에너지와 인프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필수 광물에 대해 공평한 접근을 보장하는 동시에 광물 공급자에게는 공정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하고, 자원 분쟁의 심각한 위험을 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고, 녹색 전환을 위한 자원 관리 협력을 강화하고, 카르텔 형성을 억제하기 위한 GMT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자간 신뢰에 바탕을 둔 중립적 플랫폼
광물 자원은 일부 국가에 편중돼 있으며, 다국적 기업이 불공정한 계약이나 환경 파괴적 개발을 주도해 왔다. 또, 일부 국가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공급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번에 제안을 내놓은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GMT는 한마디로 기존 양자 간 광물 자원 거래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자간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중립적 자원 중개 플랫폼이다. GMT는 수요국(participants)과 공급국(contributors), 수탁자(trustees)로 구성된다.
수요국은 녹색 전환 기술에 필요한 광물을 공급 받기를 원하는 소비국이다. 광물 구매를 위해 시장에 돈을 지불하고, 채굴 등에 필요한 기술의 이전 등에 기여한다.
공급국은 자국 내 광물을 신탁을 통해 거래하려는 국가다. 신탁으로부터 정당한 수익을 배분받는 대신에 정치적 목적으로 공급을 제한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수탁자는 수요국과 공급국을 중개하는 기구를 말하는데, 유엔 산하 국제기구 또는 참여국이 합의한 관리 기구가 역할을 맡는다. 광물의 판매와 거래 기준, 가격 책정 원칙 등을 관장한다.
GMT가 설치되면 공급국은 자국 광물 공급 가능량을 신탁에 등록하고, 수요국은 녹색 기술 수요를 근거로 할당량을 요청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논문에서 “GMT는 양자 주도의 거래가 아닌 공동 거버넌스와 조정을 기반으로 하는 자원 공유 메커니즘이며, 더 많은 인류가 광물에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자국 내 우선 사용권은 그대로 유지
논문은 GMT가 광물 생산국에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우선 광물 자원에 대한 수요가 안정화되고, 수요예측도 가능해지며, 공정한 가격 메커니즘을 갖춘 글로벌 시장에 대한 접근도 보장된다.
물론, 광물 생산국이 자국 내 하류 산업(downstream industry, 가공·제조 등)에서 국내 수요를 가지고 있는 경우, 당연히 자국 내에서 우선 사용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대부분 국가에서 광물에 대한 국가 재산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시민 공동 소유를 의미한다. GMT는 국가 재산권의 논리를 지구적 권한으로 확장하지만, 자원이 채굴된 곳의 시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보장한다. 주권이라는 것은 자원 자체의 소유권과 그 사용 및 판매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정적인 공급만 보장된다면 그에 따른 이익은 당연히 확보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신탁에 참여하는 공급국은 특정 프로젝트를 개발할 권리를 보유하며, 국가 법률과 허가 절차에 따라 민간 또는 공공 기관에서 개발하게 된다. 초기에는 광물 거래 대상을 기존 광산으로 제한될 수 있지만, 나중에는 신탁이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할 수도 있다.
신탁에서는 녹색 전환에 대한 수요 위주로 거래하기 때문에 같은 광물이라도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 신탁 외부에서 독립적으로 거래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인 인도네시아가 녹색 전환 프로젝트에 대한 공급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신탁 외부에서 금속을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자원 흐름을 추적하며 불법 행위 감시
GMT는 특정 자원의 흐름을 추적, 불공정한 중복 채굴이나 자원 착취를 방지한다. 신탁이 환경의 훼손, 아동 노동, 강제 노동 등을 감시하고 방지할 수 있다. GMT는 공급국이 정치적인 이유로 공급을 중단할 경우 참여 자격을 박탈할 수 있으며, 국제 감시 기구의 기술 감사를 수용해야 한다.
GMT에는 환경 및 사회적 안전장치를 보장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독립적인 감사 메커니즘이 포함될 수 있다. IAEA는 에너지와 안보를 위한 우라늄 공급을 분리하고 면밀히 감시하는 것과 유사한 체계가 될 수 있다.
GMT에서는 가격이 시장에 의해 결정되고 초과 생산물은 비축할 수 있다. 재활용을 통해 확보한 광물도 비축하거나 거래할 수 있다.
수탁자인 GMT는 장기적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위임받은 형태로 운영될 수 있다. 유엔 산하의 정식 국제기구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안전보장이사회가 광물 안보에까지 역할을 확대한다면, 광물 안보 이슈는 현재 국가 간 거래 영역에서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다자간 외교 문제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 기술 검토 후 자원 할당량 결정
수요국 입장에서는 GTM을 통해 광물 공급망 불안을 해소할 수 있고, 가격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혜택을 볼 수 있다. 신탁은 수탁자들이 합의한 거래 규정에 따라 공평한 경쟁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광물 거래 절차를 간소화하고, 임시적 거래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수요자, 즉 전기차 제조사, 배터리 기업, IT 기업 등 친환경 기술 생산자는 광물에 대해 적절한 시장 가격을 지불하게 된다. 신탁은 필요한 광물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친환경 기술 생산자에게 판매되도록 보장하게 된다. 신탁이 재고를 넉넉히 확보할 수 있다면 시장 가격은 안정화될 수 있다.
신탁에서 친환경 기술의 적격성에 대한 검토를 거쳐 친환경 기술 개발자에게 광물 할당량을 정하는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의사결정 체계에서는 친환경 기술이 필요한 재료를 사용할 자격이 있는지, 얼마나 필요한지, 그에 따라 얼마를 할당할 것인지 등을 따지게 된다. 산업 단체와 주요 환경·사회 감시기관, 신탁 내 다양한 거버넌스 위원회 등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특히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A)와 기후기술센터네트워크(CTCN)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GMT의 혜택을 받는 녹색 기술 생산자는 주요 에너지 전환 광물 공급자, 특히 개발도상국에 대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투자할 수도 있다.
“생산자-수요자에 윈-윈 기회 제공”
GMT는 기후 위기라는 전지구적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공유재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 협력 틀인 셈이다. 광물 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원 정의와 녹색 전환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진화된 글로벌 거버넌스 실험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GMT가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공해(公海) 내 광물에 적용돼 온 ‘인류 공동 유산’이라는 개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1962년 유엔 총회 결의안과 1982년 세계자연헌장에 명시된 천연자원에 대한 영구적 주권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소개했다. 또한 GMT는 ‘행성 공유지’라는 새로운 거버넌스 개념에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에서 전문가들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도 최근 중요 광물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세계자원은행(WRB) 설립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소개하면서 “GMT는 지속 가능한 미래에서 필수적인 핵심 기술을 보급하는 데 있어서 가격 안정화, 공급 보장, 시장 신뢰라는 윈-윈(win-win)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이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논문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G7 정상회의에서 이러한 제안을 채택하더라도 중국·러시아 등이 불참한다면 GMT의 효과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중국·러시아 등이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한다면 GMT는 그런 공급망에 맞서는 대체 구조로서만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겸 칼럼니스트 envirep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