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탈원전서 ‘원자력 확대’로 대전환...원전 산업 새국면 맞나

EU 그린 택소노미 원전 포함...관련 ESG 공시 강화 EU, 과도한 러시아 원전연료 수입 의존도 해소 과제 SMR 등 차세대기술 상업화...원자력산업 확대 전망

2025-06-18     주현준 기자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본부 앞에 걸린 EU 깃발. 로이터-연합

[ESG경제신문=주현준 기자] 유럽연합(EU)이 에너지 안보 강화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기존 탈원전 정책에서 ‘원자력 발전 확대’ 정책으로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 불안정성 해소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3일 발표한 제8차 원자력실태프로그램(PINC)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25년 98GW에서 109GW로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보고서는 “모든 신규 원전이 계획대로 건설되고 기존 원전의 수명이 연장될 경우 최대 144GW까지 증가할 수 있고,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기술 상용화 시 17~53GW의 추가 발전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신규 원전 건설에 2050억 유로, 기존 원전 수명 연장에 360억 유로 등 총 2410억 유로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독일 등 탈원전 국가들도 정책 전환 움직임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덴마크 등 기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던 국가들 역시 원자력 정책을 재검토하거나 전환하고 있다. 독일은 2023년 4월 마지막 원전을 폐쇄했으나, 원자력의 법적 지위와 에너지 믹스 내 역할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2024년 원자력 기술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약 30년 만에 원전 재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벨기에는 2023년 7월 기존에 추진하던 2025년 원전 완전 폐쇄 계획을 철회하고 두 기의 원자로 수명을 10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덴마크 역시 2024년 40년 만에 처음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을 공식 검토하고 있다.

EU ESG 공시, 친환경 에너지에 '원전 포함'

EU는 2022년 7월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시키는 법안을 최종 통과시켜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원전 건설·운영 활동을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원자력 관련 기업은 ESG 공시에서 원전의 탄소중립 기여, 안정성, 방사선폐기물 관리 등 구체적인 정보를 보고해야 하며, 투자자들은 원자력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 기준 충족 여부를 평가하게 됐다.

최근 CSRD(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등 ESG 공시 규제 변화 움직임은 원전 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CSRD 적용 대상을 대기업으로 한정해 중소 원전 관련 기업의 공시 부담은 완화됐지만, 대형 원전 운영사 및 관련 대기업은 더욱 엄격한 ESG 정보 공개와 공급망 실사 의무를 지게 됐다.

2021년 12월 31일 가동이 중단된 독일 니더작센주 그론데 원자력 발전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조건부로 원자력 발전에 녹색 지위를 부여하는 택소노미 초안을 공개했다. 하지만 독일은 3개의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등 탈원전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AP=연합

EU, 원전 공급망에서도 러시아 탈피 과제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 문제 해결을 위해 천연가스와 석유 수입을 대폭 줄이고 원전 도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나, 원전 연료(우라늄·부품) 분야에서는 여전히 러시아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라톰 공급청(Euratom Supply Agency)의 2023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EU가 사용하는 천연 우라늄의 약 23.5%가 러시아산이며, 농축우라늄의 경우 38%까지 러시아 의존도가 나타났다.

특히 러시아 국영에너지기업 로사톰(Rosatom)과 그 자회사 TVEL이 VVER형 원전 연료 공급망을 독점하고 있어,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일부 회원국들은 원전 기술 및 공급망에서 러시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EU 집행위는 지난 5월 발표한 에너지 독립 로드맵에서 2027년까지 러시아산 핵연료 수입을 단계적으로 종료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미국·캐나다 등과 대체 공급 계약을 확대하는 등 공급망 다변화와 내제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원자력 확대 추세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주요국들은 AI 데이터센터 등 미래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다시 확대하는 추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1월 공식 보고서에서 “세계 원자력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공급망 다변화가 필수”라고 강조하며, “전 세계적으로 70GW 이상의 신규 원전이 건설 중이고, 40개국 이상이 원자력 발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이 2030년대 초 상업화될 전망이며, 세계 각국이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서고 있어, 원전 산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기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