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에너지 고속도로 ‘속도전’…실효성엔 갑론을박
대선 과정에서도 에너지 '고속도로' VS 에너지 '그물망' 갑론을박 "비싼 비용 들여 송전하지 말고 공장을 재생에너지 발전지에 건설해야" "현재 수요처는 수도권에...당장 재생에너지 확대 시급해 계통망 확보해야"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가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 관련 업무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에너지 고속도로는 높은 비용, 긴 건설기간, 변전소 건설과 주민수용성의 문제 등을 안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국정기획위원회는 19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재생에너지 확충 노력,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 RE100 산단 추진 등 에너지정책 관련 세 가지 핵심 내용이 포함된 업무 보고를 받았다.
산업부는 이날 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를 위한 핵심 인프라로 약속해온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의 2030년경 첫 개통 목표 달성 추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총력 대응 계획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주요 발전 지역인 호남권 생산 전기를 핵심 수요지인 수도권으로 나르는 초고압직류송전(HVDC)망을 말한다.
"에너지 '고속도로' 만들지 말고 공장을 지방에 지어라"
그러나 정책 효율성, 변전소 건설과 주민수용성 등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는 ESG경제에 “해상 전력망을 세워도 결국 육지에 올라와 변전소를 거쳐야 하는데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리고 하남 변전소 건설이 계속 지연되는 등 변전소 설립도 언제 될지 모르는 판국”이라고 지적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선로를 통해 송전한 뒤 이를 변환하여 수요처로 배전하는 변전소가 필요하다. 변전소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송전선로나 배전선로를 통하여 수요자에게 보내는 과정에서 전압을 높이거나 낮추는 작업을 하기 위해 설치된다.
최근 경기 하남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 사업은 주민들의 반대와 지자체의 인허가 거부로 1년 넘게 표류하면서 변전소 증설 지연이 발전소들의 송전제약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동서울변전소 사업은 ‘동해안-수도권 HVDC 프로젝트’의 핵심 구간 중 하나다. 강원도 해안 지역 화력·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약 230㎞ 길이의 송전선을 통해 수도권으로 전송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하남시의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이 지속적으로 지연되면서 올해 동해안 발전소들의 발전량은 17.9GW에 달하는데 송전량은 14.5GW에 불과한 상황이 됐다.
박 교수는 또한 “에너지 발전이 일어나는 곳에 공장을 지으면 돈 100조도 안 들고 관리비도 안들고 더 중요한 것은 지역 균형 발전을 말하면서 수도권에 공장을 짓도록 하는 정책이 앞뒤가 안맞는다”면서 “미국은 반도체 공장을 텍사스주 시골에 짓는데 한국은 시골도 아닌 동남권에 지으라는데 왜 못 가나. (동남권에) 삼성이 지으면 누가 못 간다고 하겠나. 다 간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공약대로 에너지 고속도로와 전남 등지에 풍력발전 배후단지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사업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업계는 1GW 해상풍력을 구축하는 데 약 3조~4조원이 필요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송전망, 해저케이블, 변환소, 연계 시스템까지 포함하면 전체 사업비가 1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정부는 아직 해상풍력 발전소 건설과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해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식이나 단계별 예산 계획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분산에너지 다분히 이상적...현실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계통망 확충 시급"
이에 대해 에너지 싱크탱크 넥스트 그룹의 이주헌 정책 수석은 “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서 소비해야 한다는 구상이 이상적이긴 하나, 지방으로 산업단지를 분산한다고 해도 결국 그곳에서도 전력망과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긴 매한가지”라고 반박했다.
이 수석은 또한 “당장 국내 최대 재생에너지 발전 지역인 서남해안 지역만 봐도 생산되는 에너지를 사용할만한 지역 내 수요처가 있나? 없다”면서 “이 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에너지 정책은 결국 ‘재생에너지 확대’인데 재생에너지를 확대해도 이를 수요처(수도권)에 보낼 계통망이 없으면 막대한 손해”라고 지적했다.
산업단지의 지방 이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진전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에너지 분산과 지역균형 발전을 논하는 것은 당장 시급한 재생에너지 확대의 속도만 늦출 뿐이라는 것이다. 재생에너지의 수요처가 수도권이라는 전제 하에 기존 재생에너지 발전 지역에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수도권에 에너지를 송전할 수 있는 전력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이번 제21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의 에너지 고속도로 공약은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 후보자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지난달 7일 여의도 FKI타워에서 개최된 ‘기후민주주의자들이 바라는 대한민국: 2025 기후위기 국민 인식조사 결과 발표 집담회’에서 권 후보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서울로 올리는 에너지 고속도로가 아니라 에너지가 생산되는 곳에서 소비되도록 하는 에너지 그물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권 후보자는 “산업단지 및 대규모 전력 이용 시설은 재생에너지 생산 지역에서만 설립하도록 그리고 운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는 강조했다.
이날 이재명 후보를 대신해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의원은 “지역 중심의 자족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배경이 될 수 있는 전력망의 확충은 절실”하다면서 “우리 경제 전환, 산업 전환이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에 대한)산업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전력망 개발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