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부 호남으로 가나..."현실적이지 않아"

"민주당 호남 민심 잡기 위한 전당대회용 카드로 보는 게 현실적" '기후에너지환경부'든 '기후에너지부'든 산업과 에너지 정책 분리 산업.통상과 에너지 정책 분리에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 소리도 커

2025-08-11     김연지 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8일 전남 무안군 전남도당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기후에너지부의 호남 유치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힘들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당 대표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달 23일 정청래 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해수부는 부산으로 갔으니 기후에너지부는 호남으로 가는 게 맞다”면서 당 대표가 되면 기후에너지부를 호남으로 유치해 호남 발전의 견인차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경쟁 후보였던 박찬대 의원까지 기후에너지부 호남 유치에 동의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민주당 전당대회 이전에도 그런 주장은 있었다”면서 “호남이 아무래도 재생에너지 발전 환경이 좋고 그런 부분을 미래 먹거리로 삼아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지역 정치인을 중심으로 그런 이야기가 꾸준히 나왔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정부 부처 이전과 같은 결정은 대선 공약에 포함될 정도의 어떤 비전과 결단이 있어야 되는데 대선 준비하는 기간에도 그런 의사결정은 없었다”면서 “몇 분이 대선 과정에서도 환경부 이전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재명 당시 후보는 ‘좀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을 밝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국정기획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아직 나오지 않아 뭐라 얘기할 사안이 아니다”면서도 “해수부에 이어 기후에너지부까지 세종시를 떠나면 (과거 공공기관 지방 이전 때처럼) 지자체들와 지역 정치인들이 지역 민심을 이용해 정부 각 부처를 유치하려고 나서는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지 않겠나”고 부정적 기류를 전했다.

산업부 에너지 업무 환경부로 이전하나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정기획위원회는 대통령실에 전달한 기후에너지부 설치와 관련해, 산업부 2차관 산하 에너지정책실을 환경부로 이관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하는 1안과 산업부의 에너지정책실과 환경부의 기후정책실을 합쳐 별도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는 2안을 제시했다. 이 중 1안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관측이 최근 우세하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아직은 해당 안들을 테이블 위에 두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기후에너지부 업무는 환경부가 맡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중을 내비추신 적도 있다고 하니 정부 안팎으로 1안이 더 유력하다는 예측이 나온다”고 말했다.

만약 이같은 정부안이 확정되면 환경부는 기후와 환경은 물론, 에너지 분야까지 맡는 거대 부처로 거듭나는 반면 산업부는 산업·통상만 담당하는 부처로 쪼그라들게 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산업계에선 환경부로 에너지 업무가 이전되면 아무래도 산업적인 경쟁력보다 환경 목표 달성에 더 몰두하다 에너지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우려를 보인다”면서 “반대로 환경단체들은 환경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에 초점을 맞추다가 환경보전과 규제는 느슨해지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그간 환경부가 기후 목표를 수립하고 달성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협조를 요청하기 어려웠다면 이제 기후위기 대응에 에너지 산업이 함께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다”고 밝혔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조직 개편 방향과 관련해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8월 15일 이전에 정리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경영계, 산업정책과 에너지정책 분리에 우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4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런 개편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강화하고, '재생에너지 전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관세 전쟁' 등 미국발 통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정부의 통상 대응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기업들의 걱정이 크다. 에너지정책이 산업 진흥에서 환경 규제 쪽으로 급속히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논의 방향대로라면 산업부의 에너지 기능은 신설되는 기후에너지부나 환경부로 무조건 넘어가게 된다. 실제로 에너지 정책이 산업 정책과 분리된다면 1993년 상공부와 동력자원부가 합쳐져 상공자원부가 만들어진 이후 32년 만에 처음이다.

전통적으로 원유와 가스, 석탄 등 에너지를 거의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오일쇼크 등 위기를 여러 차례 겪으면서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각별히 중요하게 여겨왔다. 미국발 통상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경제안보 측면에서 더욱 중요성이 커지는 에너지 정책 기능을 통상·산업과 분리하는 데 대한 우려도 크다.

한국 정부는 최근 대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를 중심으로 한 3500억달러의 투자 패키지와 액화천연가스(LNG)를 중심으로 미국산 에너지 1000억달러어치 구매를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일본 등 경쟁국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정부 내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관세 정책을 포함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정책이 산업, 통상과 긴밀히 연결돼 작동할 필요성이 여전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미 협상에서 LNG 구입 등 에너지 협력 의제는 핵심 지렛대 중 하나였다"며 "에너지와 조선, 자동차 등이 연계된 통상 협상 전략의 중요성이 커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기후 위기 대응의 집행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차원에서도 에너지·산업 정책 간 협력의 중요성이 크다는 지적도 많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대미 관세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산업 협력과 LNG 추가 구매를 지렛대 삼을 수 있었는데 이게 (산업·통상과) 분리되게 되면 미국이나 유럽을 상대로 한 통상 대응을 제대로 해나가기 어렵다"며 "산업을 중심으로 통상도, 에너지도 논의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