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反풍력정책 불똥 튄 오스테드...재무위기에 13조원 유상증자
트럼프 행정부 해상풍력 규제, 재생에너지 산업에 직격탄 수익 악화 오스테드 유상증자 결정에 주가 31% 폭락 에퀴노르·라바 릿지 프로젝트 중단…대규모 손실 현실화 트럼프, 14년 전부터 풍력발전 공개 반대 "가장 나쁜 에너지"
[ESG경제=이진원 기자] 덴마크의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기업 오스테드가 11일(현지시간) 약 94억달러(약 13조원) 규모의 신주 발행을 통해 재무구조 강화에 나선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풍력발전 반대 정책으로 해상풍력 산업이 더욱 위축되면서 악화된 사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결정은 트럼프 재집권 이후 재생에너지 산업이 직면한 정치·경제적 압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발표 직후 코펜하겐 증시에서 오스테드 주가는 약 31% 급락했다. 회사 측은 뉴욕주 동남부 몬토크갑(岬) 인근 해상에 건설 중인 대규모 해상 풍력 프로젝트 ‘선라이즈 윈드(Sunrise Wind)’ 지분 매각이 무산돼 재무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고 유상증자의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5일간 오스테드 주가 움직임>
기존 주주들은 보유 지분 비율에 따라 신주를 매입할 권리를 갖는다. 오스테드는 자사 지분 50.1%를 보유한 덴마크 정부도 이 같은 ‘비례 배분' 방식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신주 발행 규모는 8월 8일 기준 오스테드 시가총액의 약 45%에 달한다.
오스테드는 그간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기획한 뒤 프로젝트 지분을 투자자에게 대량 매각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해왔으나, 최근 미국 내 상황 악화로 인해 이러한 수익 모델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무구조 악화는 풍력발전 반대하는 트럼프 탓?
회사 측은 신주 발행 발표에서 재무구조 강화가 불가피해진 원인을 재생에너지, 특히 해상풍력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트럼프 행정부 탓으로 돌리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라스무스 에르보(Rasmus Errboe)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성명에서 “미국 내 부정적인 시장 동향에 더해 지난 몇 년간의 거시경제적 및 공급망 문제로 인해 우리는 예외적인 상황에 처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업계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신규 풍력발전 프로젝트 추진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면서 “이번 오스테드의 결정은 이미 진행 중인 사업마저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오스테드는 유럽에서 해상 풍력 개발을 선도해왔지만, 미국에서는 대규모 투자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024년 트럼프 재선 전부터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으로 예정된 사업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대규모 프로젝트 손실 처리와 풍력단지 취소가 이어졌다.
게다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해상 풍력단지 조성에 필요한 해역 배타적 이용 권한을 축소하고, 건설 중인 사업에 대해 추가 심사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프로젝트 지연 또는 중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내무부는 7월 “풍력 등 신뢰할 수 없는 에너지원에 대한 특별 취급을 종료한다”고 발표했으며, 이 조치는 오스테드가 미국 동부 해안에서 건설 중인 두 해상 풍력단지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한 풍력 터빈 등 수입 장비에 부과되는 관세도 비용 상승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재집권 후 달라진 분위기
오스테드의 이번 대규모 유상증자는 트럼프 재집권 이후 변화한 재생에너지 업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급성장하는 해상 풍력 산업을 적극 지지했으나, 트럼프는 백악관 복귀 첫날인 1월 해상풍력 발전소 허가 및 임대 계약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하며 산업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재검토 지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급망 문제와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던 관련 산업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다.
올해 4월 트럼프는 노르웨이 풍력 개발업체 에퀴노르(Equinor)가 뉴욕 앞바다에서 주도하는 대형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작업 중단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명령은 이미 승인을 받은 프로젝트가 재검토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 믿었던 업계 전문가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후 국내외 정치적 협의를 거쳐 5월 중순 중단 명령이 철회되면서 공사는 재개됐지만, 에퀴노르는 약 9억5500만 달러(약 1.3조 원)의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에퀴노르 프로젝트는 작업이 재개됐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정부 말기에 승인된 대규모 풍력발전 프로젝트인 ‘라바 릿지(Lava Ridge) 풍력 프로젝트’ 승인도 취소했다.
내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잘못된 ‘마지막 승인 밀어붙이기’를 되돌린다”며 프로젝트 철회 방침을 밝혔다. 구체적인 절차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법적 결함과 무시된 고유 법률 기준”을 이유로 들었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서명한 행정명령에서 이 프로젝트를 직접 겨냥해 내무부에 추진 중단과 재검토를 지시했다. 라바 릿지 프로젝트는 아이다호주 트윈폴스 북동쪽에 231기의 풍력 터빈을 설치해 최대 5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규모로 계획됐다.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미국 내 대형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14년 전부터 커진 반감
트럼프는 오랫동안 해상풍력 발전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 왔다.
‘가디언’과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러한 반감은 최소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단은 그가 스코틀랜드 애버딘셔에 소유한 멘니(Menie) 골프 리조트 인근 바다에 설치될 예정이던 북해 해상풍력 터빈이었다.
당시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리얼리티 TV 스타로, 2011년부터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골프장 해안선에서 보이는 11기의 풍력 터빈을 두고 “흉물(monstrosities)”이라 부르며, “이 풍력 발전기는 스코틀랜드의 관광 산업을 파괴하고, 북해 해안을 세계에서 가장 추한 경관 중 하나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경관 훼손뿐 아니라 경제적 피해를 강조했다. 그는 풍력 터빈이 주변 부동산 가치 하락을 초래하고, 전 세계에서 골프를 즐기러 오는 관광객의 발길을 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스코틀랜드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해상풍력 단지를 적극 추진하고 있었지만, 트럼프는 해당 계획에 맞서 법적 소송까지 불사했다.
이후에도 그는 풍력 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풍력 터빈을 두고 “가장 나쁜 형태의 에너지이자 가장 비싼 형태의 전기를 생산하며, 수많은 새를 죽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발언은 단순한 경관 문제를 넘어, 풍력 발전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적·이념적 반대로 발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의 풍력 반대 입장은 이후 미국 정치 무대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으며,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전반에 제동을 거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