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사 화석연료금융 194兆..."기후위기 대응체계 조기 도입해야"
10대사 화석연료 보험 182조, 재생에너지 보험의 7배…기후ST 실시 미흡 "보험사,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보험 제공...화석연료산업 유지 핵심역할" 기후위기 가속화시 손보사 지급여력 급락...기후리스크 관리 내재화해야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국내 금융기관의 화석연료금융 중 절반 이상을 손해보험사들이 보유하고 있는등 보험산업이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가 매우 큰 산업부문으로 드러났다. 이에 보험사들의 기후리스크 내재화와 적극적인 기후대응이 중요하다는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국회에서 진행된 ‘일상화된 재해, 보험 산업의 기후위험과 책임’ 세미나에서 발표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자료에 따르면, 국내 112개 금융기관의 화석연료금융(보험금액 포함) 372.3조 원 중 손해보험사가 보유하고 있는 화석연료금융은 194.4조 원(보험 182.7조 원 포함)으로, 총 화석연료금융의 52.2% 차지하고 있다.
2023년 말을 기준으로 국내 10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 현대해상, 한화손해보험, 흥국화재,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코리안리재보험, SGI서울보증)의 화석연료 보험 규모는 182.7조 원으로 재생에너지 보험의 7배에 달했다.
화석연료 보험 지원 중에서도 특히 석탄 부문은 2024년 6월 기준으로 전년동기 대비 82% 이상 급증하는 양상을 보였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보험 지원은 2021년 20.1조 원에서 2023년 20.9조 원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들 10대 보험사들의 탄소중립목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대 보험사 중 2050년 탄소중립목표를 수립한 보험사는 6곳에 불과했다. 탄소중립목표에 금융배출량을 반영하겠다고 답한 보험사는 3곳, 보험배출량을 반영하겠다고 보험사는 한 곳도 없었다. 화석연료금융에서 ESG금융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보험사도 KB손해보험과 NH손해보험 단 두 곳에 불과했다.
국내 보험사 중 기후 리스크를 리스크 관리 체계에 반영하기 시작한 보험사도 일부 대형사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행 이대건 기후리스크분석팀장은 “국내 보험사(42개사)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기관의 29%만이 기후 리스크 측정을 위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이하 ‘기후ST’)를 실시하고 시행 기업 중 이를 실제 기후 리스크 감축계획 수립 활동으로 연계하는 보험사는 33%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보험사 지원여부에 따라 시장 상황 결정...화석연료산업 유지의 핵심"
이날 세미나에서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 기후리스크분석팀장은 “보험사들은 고탄소산업에 투자를 축소하고 저탄소 전환 투자자금을 확대하며 경제 전반의 저탄소 전환을 촉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동시에 보험상품 운용을 통해 자연재해 발생 시 피해를 흡수하고 재난에 대한 회복탄력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박남영 ESG금융실 실장 역시 “보험이 어떤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거부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상황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손해보험사는 대형 화석연료 프로젝트의 건설과 운영에 필수적인 보험을 제공함으로써 화석연료산업의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강조했다.
보험제공은 직접적인 자금 조달과 달리 위험 분산 기능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화석연료 프로젝트의 투자 안전성을 높여 간접적인 자금 유입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박 실장에 따르면, 보험사는 ▲자연재해 손해 보장 및 경제적 손실을 계량화해 정부·기업의 정책 설계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관리자 ▲대규모의 자산을 산업에 투자하는 자산운용자 ▲대형 산업 프로젝트를 실행 또는 좌초되도록 유도하는 언더라이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호주 퀸즐랜드의 초대형 석탄 개발 사업인 아다니 카미켈(Adani Carmichael) 석탄광 개발 프로젝트는 2019년 이후 40개 이상의 글로벌 보험사(AXA, Swiss Re, Munich Re 등)들이 연달아 인수를 공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사업 지연 및 금융 조달 실패 등을 겪었다.
2100년경 국내 손해보험사 지급여력비율 43.9%p 하락 전망
국내 보험사들은 소극적인 기후대응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보험산업은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가 가장 큰 산업부문 중 하나다. 올해 초 한국은행이 국내 7개 대형 보험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은행·보험사에 대한 하향식 기후변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보면,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지 않을 경우, 2100년경 지급여력비율이 생명보험사는 17.3%p, 손해보험사는 43.9%p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이대건 팀장은 “해당 분석 결과도 보험사들이 보유한 자산과 부채의 일부만을 토대로 고려한 결과이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직면한 실제 리스크는 이것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 팀장은 “국내 보험사들은 보험사의 리스크 관리 체계에 기후리스크를 내재화 해야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기후 리스크를 반영한 보험감독규제 및 공시 체계의 조기 도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팀장은 또한 “보험이 지속가능한 기후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경제 전반이 함께 이 기후리스크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면서 “의무 기후보험 가입범위 확대, 재정지원을 통한 취약계층 보험 가격접근성(보험료율) 제고해 기후 리스크에 노출된 경제주체의 기후보험 가입률 확대를 유도하고, 대형 자연재해 발생시 보험사의 부담규모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할 수 있는 리스크 전가체계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지속가능성 공시 도입시 스코프3 배출량(금융배출량, 보험인수배출량)을 포함▲공공기관과 지자체가 보험사 선정 시 기후금융 실적을 평가 기준에 포함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 도입 ▲기후대응을 위한 산업 차원의 공동행위에 대한 공정거래법상 면책 규정 마련 등의 정책도 함께 제시됐다.
한편, 글로벌 주요 보험사들은 북극·타르샌드 등 고위험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배제하고, OECD·유럽 기준 2030년, 글로벌 기준 2040년까지 석탄 단계적 폐지를 목표로 하는 등 전환 속도를 높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