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권환경실사법안에 ‘기후대응’ 포함돼야"

EU CSDDD도 기후전환계획 포함...인권환경은 기후와 밀접 기후전환계획이냐, 기후실사냐 방식에선 이견 보여 "기후실사 통해 기업 배출 예방하고 감축 유인할 수 있어"

2025-08-28     김연지 기자
녹색전환연구소와 박지혜 의원실이 28일 개최한 ‘공급망실사법과 기후전환계획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모습. 사진=녹색전환연구소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기업의 인권환경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최근 재발의된 가운데 이 법안에 기후대응 관련 조항이 빠졌다는 점이 지적됐다. 기후위기가 인권·환경 리스크를 발생시키는만큼 인권환경실사 시 기후전환계획을 포함하거나, 기후실사를 함께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녹색전환연구소와 박지혜 의원실이 28일 개최한 ‘공급망실사법과 기후전환계획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참여한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이같이 말했다.

박 변호사는 "기업인권환경실사법 발의는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기후대응 관련 조항이 빠져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면서 "기후위기가 인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고 기후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조치 또한 인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기후대응 조항 포함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EU CSDDD도 기후전환계획 포함...인권환경은 기후와 밀접

사진=녹색전환연구소

이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한 지현영 변호사(녹색전환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EU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에는 ‘기후전환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자사 사업모델이 파리기후협정 1.5℃ 목표에 부합한지 점검하고, 이에 맞춰 이행조치가 포함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지 변호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개정한 ‘책임 있는 경영을 위한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에도 기업이 실사를 통해 다루어야 하는 주요 환경요인으로 기후변화가 명시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후솔루션 신유경 변호사 역시 “EU CSDDD의 경우 실사가 다루어야 하는 환경영향에 기후영향을 포괄하고 있지는 않지만 법률 적용 대상이 되는 기업들에게 실사 체계와 별도로 기후전환계획을 채택해야 할 의무를 부과한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한국법제연구원 최정윤 법학기초교육연구센터장은 “한국은 아직 CSDDD와 같은 법제가 없어서 EU처럼 규제 피로도를 이유로 실사와 기후전환계획을 분리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기후위기의 긴박성, 국제 ESG 규범 동향, 공시 신뢰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실사 체계와 기후전환계획의 연결구조를 통합하는 방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후전환계획과 기후실사 중 어떤 방식이 적절한가

이처럼 참석자들은 인권환경실사에 기후대응 관련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모았지만, '기후전환계획 수립'과 '기후실사 시행' 방식 사이에서 이견을 보였다. 

현재 EU CSDDD가 포함하고 있는 기후전환계획은 인권환경실사와는 별개로 기후변화에 대한 실사의무는 없으나 지속가능경제로의 전환과 파리협정목표에 부합하는 사업전략이 포함된 전환계획을 따로 수립하고 채택하는 방식이다. 

반면 기후실사는 ‘기업이 자신의 주도하에 자신의 비용으로 자신과 공급망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측정한 후, 이를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로 감축하는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하고, 이 전체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신유경 변호사는 "만약 실사의 범위에 기후영향을 포함한다면 기업이 스코프 3 배출량에 어떤 책임을 지고, 이해관계자의 범위는 어떻게 정의가 되는지 등 불분명한 측면이 있다"면서 “한국 법 체계에서 어떤 방식의 기후실사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하여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박종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환경과 행정사무관은 기후실사가 기업의 공급망 배출량까지 포함하는 스코프 3 배출량 공시와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행정사무관은 “실사는 인권환경 부문에 발생하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부정적 영향이 발생했을 때 이를 극복하는 피해회복의 단계가 있다”면서 “인권환경은 피해자와 피해회복 방법이 비교적 명확하지만, 글로벌 차원에 걸쳐 발생하는 기후피해는 피해자 식별도 어렵고 피해자에 대해 어떤 보상을 해야하는지도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기후실사의 경우 공급망 배출량 측정은 가능하지만,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피해자를 특정해 피해회복을 강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박 행정사무관은 "기후실사가 스코프 1,2,3를 공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법무법인 지평의 임성택 변호사는 "유럽연합도 CSDDD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기후실사가 논의됐지만 결과적으로 빠졌고 기후전환계획이 살아남았다"면서 "기업의 기후책임을 높이는 방법에는 탄소중립법, 대기환경보전법, 다른 기후 관련 법령 등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법제화되지 않은 기후실사여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지 변호사는 “온실가스 배출은 누적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결과를 책임지는 것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고 배출 예방이 필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기후실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사가 예방적 차원의 제도인만큼 기업 기후실사를 통해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을 예방하고 감축을 유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21대 국회서 폐기된 인권환경실사법안, 22대 국회서 재발의 

한편 기업의 인권환경실사를 골자로 하는 법안은 지난 2023년 9월에 최초 발의됐으나,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이후 수정과 보완을 걸쳐 올해 6월 13일 정태호 의원이 재발의했다. 

정 의원은 당시 국회 소통관에서 ‘인권환경실사법 발의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기업의 인권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리스크 관리가 아니라 글로벌 사회에서 기업의 신뢰와 명성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기업의 인권환경실사는 기업의 부담이 아니라 장기적인 지속가능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상시근로자 500명 이상 또는 직전 사업연도의 매출액 2000억 원 이상 기업이 인권환경실사 의무화 대상이다. 규모가 작은 기업의 경우 인권 환경실사 체계를 수립하고 이행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해 중소기업은 제외됐다. 

법안은 대상 기업들이 인권환경실사 이행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경영책임자 등은 매년 기업의 인권환경실사 이행계획을 수립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정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기업활동에서 발생했거나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식별하고 대책을 수립 및 실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기업이 이 법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거나 이 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인권환경기업위원회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포함됐다. 만약 시정명령을 기한까지 이행하지 않은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사회에 기업의 인권환경실사 이행에 관한 계획을 보고하지 아니한 자에 대해서도 과태료 처분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