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국내외 주식투자 100% 책임투자?…"기준 너무 느슨"

책임투자 기준은 'ESG평가등급'..."시가총액 순위와 별 차이없어" 말로만 기후 '중점관리'...중점관리 대상 기업 한 곳도 없어 "위탁자산 책임투자 대부분 ESG워싱"...형식적 코드만 만들어놔

2025-09-06     김연지 기자
5일 ‘국민연금의 기후 스튜어드십,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 세미나에 참석한 발제자들의 모습. 사진=국민연금기후행동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국민연금의 국내외 주식투자 자산 전체가 책임투자로 분류된 가운데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기준이 느슨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5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전진숙 의원,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 국민연금기후행동, 경제개혁연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이 공동 주최한 ‘국민연금의 기후 스튜어드십,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 세미나에서 이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범여권인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함에 따라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책임투자 운용 개선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국내외 주식투자 자산 100% 책임투자…투자 기준은 ESG 평가?

2024년 기준 국민연금의 자산군별 책임투자 고려 자산 현황. 사진=경제개혁연대

이 날 발제를 맡은 경제개혁연대 노종화 정책위원은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책임투자 분류 기준이 허술해 사실상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 국민연금의 자산군별 책임투자 비중을 보면 국내주식과 해외주식에 관해서는 100% 책임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채권의 경우 국내채권은 전체 약 26%, 해외채권은 전체 약 55%를 책임투자로 운용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전체 책임투자 적용 규모를 보면, 2019년 130조 원(적용률 13.7%)에서 2021년 384조 원(43.2%), 2023년 587조 원(56.7%)을 거쳐 2024년에는 709조 원(58.5%)에 이르렀다. 불과 몇 년 사이 전체 운용자산에 대한 책임투자 적용 규모가 급격히 성장해온 것이다. 

국민연금이 직접운용하는 자산에 책임투자를 시행하는 경우 ‘ESG 통합전략’을 적용하는데, 이때 ESG 통합전략의 핵심은 ESG 평가다. 그러나 노 위원은 “ESG 등급을 매기고 이를 투자에 반영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일반 투자와 얼마나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지 비교해볼 때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노 위원은 “ESG ETF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주요 ETF의 구성종목을 살펴보면, 상위 10개 종목이 대체로 모두 동일하고, 대부분 KOSPI 상위 15개 기업이 포함된다”면서 “이는 대기업들이 ESG 등급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ESG 평가 시스템이 실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한계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말로만 기후 '중점관리'...중점관리 대상 기업 한 곳도 없어

2024년 기준 국민연금 중점관리사안 별 대상기업. 사진=경제개혁연대

국민연금이 기후변화와 산업안전을 스튜어드십(수탁자책임활동) 지침의 중점관리 사안에 추가한지 2년이 지났지만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전무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노 위원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기후변화 위험관리 관련 관여활동을 위해 지난해 기준 29개 기업에 대한 32회 서한, 면담 및 비공개대화 대상 선정을 했지만, 관여활동과 관련해 어떠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 체계, 대응 전략 및 계획, 운용자산의 기후위험 노출 정도, 운용자산의 온실가스 배출량, 탄소집약도 및 감축 목표 등 최근 국제적으로 금융기관에게 요구되는 기후 관련 재무정보의 공시는 사실상 전무하다.

이어진 발표에서 기후솔루션 기후금융팀 박현정 연구원은 2025년에도 기후변화와 관련된 수탁자책임활동이 6건의 비공개 면담 외에는 중점관리 대상기업을 단 한 곳도 지정하지 않는 등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면담에서부터 공개 및 비공개 중점관리, 서한 발송에 이은 주주제안 및 의결권 행사 등의 각 단계에서 관리대상이 3개 기업 내외에 불과하다. 박 연구원은 공개적인 주주활동에 이르기까지 최소 2~3년이 걸리는 절차적 구조, 비공개 위주의 활동으로 인해 이해관계자에게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행력과 속도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장은 “탄소중립 목표 준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좌초자산 위험과 그에 따른 손실이 국민연금 기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기후 스튜어드십이 중요한 과제”라면서도 “다만 기업과의 신뢰 유지를 위해 비공개적인 대화를 통해 체질개선을 먼저 유도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위탁자산 책임투자 대부분 ESG워싱"...형식적 코드만 만들어놔

이번 세미나에서는 국민연금과 더불어 공적금융 기관 및 민간 금융회사들의 기후 스튜어드십 확산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은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규모 중 위탁운용 자산 대부분은 ESG워싱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해당 위탁자산의 실질적인 책임투자 고려 및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은 선정 기준에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 관련 평가지표들이 기후 리스크를 평가하기에는 매우 불충분하고 기후 관련 정보 입수율도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선경 켐토피아 ESG 전략실 상무 역시 국민연금의 단순한 ESG 등급 반영을 넘어, 주주활동 강화와 위탁운용사 ESG 활동 평가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운용사가 형식적으로 코드만 만들어 놓고 있어 운용사의 성과 평가 기준으로서 실질적 의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세미나를 공동주최한 박주민 의원은 축사를 통해 “국내 굴지의 에너지·제조 기업의 최대주주로서, 산업의 탈탄소 전환과 지속가능한 금융 생태계의 실질적 변화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의 화석연료 투자와 기후대응 정책, 스튜어드십 실천을 둘러싸고 시민의 요구와 글로벌 기준도 높아진 만큼,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