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ESG 현장 가다]⑯ 결산 좌담회...“완벽할 필요 없다, 일단 시작하라”

독일 함부르크 교육당국과 교사들이 한국 교육계에 주는 조언 "입시나 취업과 상충되지 않아. 오히려 도움 되는 측면을 봐야" 국내 전문가들, "한국도 ESG 교육 여건 무르익어. 이제 실천할 때"

2025-10-19     ESG경제

#ESG경제신문은 창간 5주년 특집으로 독일ㆍ일본ㆍ스웨덴 등 ESG 선진국과 한국의 ESG 교육 현장을 찾아 기획 취재한 ESD(지속가능발전교육) 심층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ESG의 진정한 의미는 미래세대를 위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ESG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고, 실천이 생활이 되도록 해줘야 합니다. 당장 눈앞의 성과가 아닌,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현장의 변화와 실험을 조명하며 ESG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독일 함부르크 교육청 담당자와 교사들이 ESG경제 취재팀과 좌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ESG경제

ESG경제는 <학교 ESG 현장 가다> 해외 취재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9월 11일 ESD(지속가능발전교육)에서 선구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독일 함부르크시의 교육ㆍ환경 당국자 및 교사들과 결산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들은 한국 교육계에 대해 "ESD가 본격 확산하는 가운데 아직 준비 소홀로 망설이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며 "완별할 필요는 없다. 일단 시작해 보라. 학생들의 변화는 의외로 빠르다. 오히려 교사 입장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고 입을 모았다.

진행: 김광기 ESG경제 기자
참석: 뵈른 폰 클라이스트(Björn von Kleist) 함부르크 교육청 환경기후 담당관 /  엘레나 바우만스(Elena Baumanns) 함부르르 기후보호재단 기후학교 프로젝트 담당 / 슈테판 크뢰머(Stefan Krämer) 함부르크 인증 기후학교인 알브레히트-테어 김나지움(ATH) 교사 / 마티아스 드리슈너(Matthias Drieschner) ATH 교사 겸 함부르크 기후환경 교육연구소  연구위원

"현장의 변화는 교사에게서 시작되어야"

김광기 : 체계적인 ESG 교육을 위해서 교사들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독일에서 교사 연수 프로그램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폰 클라이스트 : 함부르크의 모든 교사는 연간 30시간의 연수를 의무적으로 이수합니다. 일부는 학교장이 필수 주제로 지정하고, 나머지는 교사가 자유롭게 선택합니다. 저희 환경·기후부서에서는 매년 약 70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기후, 에너지, 자원 절약 등 구체적인 주제를 다뤄 교사들이 실천 중심 교육 설계를 배웁니다.

바우만스 : 함부르크 기후보호재단은 교육연구소(Landesinstitut)와 협력해 ‘기후학교 플러스(Klimaschule Plus)’ 프로젝트를 인증 제도로 운영합니다. 교사 연수를 통한 학교 활동 지원이 핵심입니다. 모든 연수는 무료이며, 현장 전문가들이 강사진으로 참여합니다. 피드백을 주기적으로 수집해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합니다.

폰 클라이스트 : 이런 연수는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학교가 기후계획을 세우는 출발점이 됩니다. 실제로 함부르크의 ‘50/50 프로그램’은 학교가 절약한 에너지·물·폐기물 비용의 50%를 보상받는 제도입니다. 연수에서 배운 원칙이 즉시 학교 운영에 반영되는 구조이죠.

SDG와 학교, 그리고 일상 속 지속가능성

김광기 : 함부르크의 교육에서는 UN의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다뤄지고 있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입니까?

폰 클라이스트 : 기후보호 프로그램 외에도 ‘BNE 학교(Bildung für nachhaltige Entwicklung)’라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모델은 빈곤, 성평등, 소비, 사회정의 등 넓은 관점의 SDG를 포괄합니다. 목표는 학교가 스스로 지속가능발전 계획을 세우고, 학생들은 시민사회의 행위자로서 책임을 배우는 것입니다.

드리슈너 : 우리 학교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11개의 사회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벼룩시장, 노숙자 인식 개선 연극, 어린이 복지 캠페인 등 일상과 밀접한 주제들입니다. 학생들에게 “나의 행동도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현실로 느끼게 하는 과정입니다.

크뢰머 : 독일에는 ‘기후학교’, ‘움직이는 학교’, ‘인종차별 없는 학교’ 등의 인증 제도가 있습니다. 이런 인증은 단순한 명패가 아니라 시민윤리를 학교문화에 편입시키는 수단입니다. 학부모, 지역단체, 기업도 함께 참여합니다.

좌담회 참석자들 왼쪽부터 폰 클라이스트,  크뢰머, 바우만스, 드리슈너. 사진=ESG경제

학부모의 시선과 학교의 현실

김광기 : 한국의 경우 입시 중심 교육이 강해 SDGs 활동에 대한 학부모 우려도 있습니다. 독일의 반응은 어떤가요?

바우만스 : 맞습니다. 독일에서도 학부모 중 일부는 기후·환경 수업을 “시험과 무관한 활동”으로 봅니다. 하지만 함부르크에서는 이 주제들이 교과 내에 통합돼 있습니다. 기후·환경 등 SDGs 관련 이해를 높이면 전체 교과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융합적 사고 능력이 커지며, 이는 학업 성적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드리슈너 : 예를 들어 물리 과목에서는 재생에너지를 다루고, 지리 시간엔 기후변화의 지리적 영향을, 문학 수업에서는 기후 관련 청소년소설을 읽습니다. 이런 통합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글로벌 생산 체계와 개인 소비의 연결을 배우며 ‘학문적 사고력+윤리적 판단력’을 함께 기릅니다.

폰 클라이스트 : 중요한 건 학생이 “내 행동이 의미 있다”는 체험을 갖는 겁니다. 쓰레기 분리라는 기술보다, 그 행동이 사회와 미래에 미치는 결과를 이해하는 게 교육의 목적입니다.

배움의 중심은 실천: ‘Learning by Doing’

김광기 : 함부르크의 교육모델은 ‘learning by doing(하면서 배우기)’로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어떤 의미로 적용됩니까?

폰 클라이스트 : 저희는 완벽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함부르크가 ‘기후학교 계획’을 시작할 때,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시도하면서 고쳐 나갔습니다. ‘먼저 해보고 배우자’가 원칙이었습니다.

드리슈너 : 저도 정원 가꾸기를 전혀 몰랐지만 학생들과 함께 생태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배움입니다. 교사는 모든 것을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동료로서 존재합니다.

바우만스 : 바로 그것이 민주적 학습이에요. 학생과 교사가 동등하게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속에서 자율과 책임을 동시에 배웁니다.

함부르크 기후학교 ATH 교사들과 ESG경제 취재팀이 교내 생태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ESG경제

제도적 지속성과 학교 조직의 변화

김광기 : 이런 프로젝트가 개인 의지에 그치지 않게 하는 구조가 있을까요?

폰 클라이스트 : 함부르크는 학교당 교사 6명에게 ‘기후보호 담당 교사’라는 공식 직책을 부여합니다. 급여 인상과 근무시간 축소가 뒤따라, 교사가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아닌 ‘조직이 책임지는 구조’로 제도화된 것이죠. 프로그램의 연속성과 품질이 이를 통해 담보됩니다.

크뢰머 :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네트워킹입니다. 각 학교의 교사들이 3~6개월마다 서로 만나 경험을 공유합니다. “학자나 부처가 지시하는 구조가 아니라, 교사가 발견한 실제 사례의 축적”이라는 점이 독일식 성공의 비결입니다. 한국에서도 교사회 중심의 협업 모델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재미있는 학습...즐거움이 참여를 이끌어

김광기 : 한국의 유사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자들에게 조언한다면요?

폰 클라이스트 : 첫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모든 구성원이 변화를 체감해야 동기가 생깁니다. 예컨대 보일러 교체 같은 보이지 않는 조치보다, 학생들이 참여하고 교실이 달라지는 프로젝트가 더 효과적입니다.

드리슈너 : 교사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르겠다, 같이 해보자”라는 태도입니다. 그 과정이 곧 교육입니다.

크뢰머 : 조그마한 허브사탕 만들기 프로젝트처럼, 학생이 직접 만들고 나누며 경험한 활동은 평생 기억에 남습니다. ‘작고 즐거운 성공’이 학교 문화를 바꾸는 출발점입니다.

바우만스 : 결국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즐거움은 참여를, 참여는 변화를, 변화는 지속가능성을 이끕니다.

 ESG경제 취재 종합

좌담회의 분위기는 끝까지 밝고 실용적이었다.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기준을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교육은 정책이나 규정보다 현장에서 태도와 문화를 바꾸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

즉, 함부르크형 ESD의 본질은 “작은 시도에서 태도 변화를, 태도 변화에서 사회적 책임을” 이끌어내는 학교 문화의 혁신이었다. 

국내 ESG 교육 전문가들, "한국도 할 수 있다. 이젠 실행으로"

ESG경제는 독일과 스웨덴, 일본의 지속가능발전교육(ESD) 현장을 취재한 후, 국내 ESG 교육 현장 및 관련 연구 분야의 전문가 6명과 인터뷰를 가졌다. 대학, 교육 현장, 연구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한국 교육 현실에 맞는 ESG 교육 방향을 논의하며, “완벽한 체계보다 작은 실천이 먼저”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오대영 교수(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ESG 교육은 학교 현장에서 교사가 직접 경험하고, 학생들과 함께 실천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독일처럼 교사 연수를 통해 ESG를 단순한 수업이 아니라 학교 운영의 원리로 흡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사가 먼저 ESG의 가치를 체감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때 교육의 지속가능성이 생깁니다. 교사의 역량 강화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태호 교수(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학부모의 입시 걱정 때문에 ESG 교육이 주변적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학 입시에서 요구하는 창의적·융합적 사고력은 ESG 활동에서 나옵니다. 학교 전체가 입시와 협업 가능한 ESG 프로젝트를 설계하면 학생과 학부모 모두 긍정적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ESG 교육은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입시 경쟁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습니다.”

허창협 대표(한국가치평가연구소)

“계속해서 단발성 이벤트 형태로 ESG 교육을 하면 교사·학교가 금방 지칩니다. 독일처럼 학교가 노력한 환경·에너지 절감 실적을 인센티브로 환류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제도와 실질적 지원이 결합될 때, 학교 전체가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ESG 담당 교사제를 제도화하고,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황성주 교수(중앙대학교 산학협력단)

“ESG 교육은 환경캠페인만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기획·실행하는 ‘문제 해결형 참여’를 제도적으로 허락해야 합니다. 당장 성공을 기대하지 말고 실패의 과정 자체를 학습으로 인정하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독일이 말하는 ‘learning by doing’을 명심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며 배우는 과정이 진정한 ESG 교육입니다.”

최문학 대표(노무법인 백경)

“학교에서 ESG 교육을 잘해야 젊은이들이 건전한 시민이자, 국가 경제에 기여할 유능한 인적자원으로 성장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와 지역사회, 기업들 간의 활발한 교류와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교실 밖의 지속가능성 문제들의 실제 변화 사례와 실패담까지 나누는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지시나 형식적인 보고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쌓은 경험의 교류가 학교 ESG의진짜 동력이 됩니다. 학교와 지역사회 간 네트워크를 통해 ESG 교육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가은 대표(임팩트리)

“ESG는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경험하고 느끼는 교육입니다. 학생들이 직접 작은 프로젝트를 해보며 ‘성취감’을 경험해야 참여가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지속가능성과 책임 의식이 생깁니다. 재미와 동기가 없는 제도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ESG 교육은 학생의 자발적 참여와 즐거움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육이기 이전에 문화 활동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6인의 전문가 모두 “완벽한 규정이나 제도보다 작은 실천과 반복적 시도가 문화와 태도를 바꾼다”며, 학교와 교사, 학생, 그리고 지역사회, 학부모 모두가 ‘처음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체계적 ESD는 한국에서도 교사 중심, 현장 밀착형 실천에서부터 시작하며, 한국도 얼마든지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ESG경제 ESD 특별취재팀=김광기·이신형·김대우·김연지·김현경·주현준 기자, 오대영 가천대 교수]  

#취재 자문 및 설문 인터뷰=오대영 가천대 교수, 이태호 연세대 국제대학원  객원교수, 황성주 중앙대 산학연구교수, 허창협 한국ESG평가원 연구위원, 최문학 노무법인 백경 대표, 이가은 임팩트리 대표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