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 도입 여전히 고민 중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의원 국감서 질의 이창용 총재, "개편 여부 고심 외환보유액 늘어나면 외화자산 ESG 투자 확대 노력
[ESG경제신문=이신형기자] 한국은행이 저탄소경제로의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신용정책 수단으로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권고가 이어지고 있으나, 한은은 여전히 도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현재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의 30%를 차지하고 있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중소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가장 큰 애로로 자금 부족으로 꼽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중소기업 탈탄소 지원 예산이 충분치 않고 예산 지원 사업도 소수 기업의 모범사례를 만드는 사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은이 녹색금융중개대출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존 금융중개대출제도를 개편해 중소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나 이와 유사한 형태의 제도는 한은이 기업의 저탄소 전환을 돕기 위해 도입할 수 있는 신용정책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정책 수단이다. 법적으로 부여된 한은의 권한 내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중소기업의 녹색전환 자금 조달을 지원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은은 금융기관에 저금리로 자금을 공급하고 금융기관이 중소기업에 저금리로 대출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제를 운영하고 있다. 한은은 대출 대상 기업을 정하지 않고 시중은행에 대상 기업 선정을 위임하고 자금 공급 역할만 맡는다. 무역금융지원과 신성장‧일자리 지원, 중소기업 대출안정화, 지방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현재 대출 한도는 30조원으로 설정돼 있다.
경기대학교 채희율 경제학부 교수(주저자)와 상명대학교 권세훈 경영학부 교수, 고려대학교 김진일 정경대학 교수 등은 「기후변화와 중앙은행의 역할 : 중앙은행의 책무 및 정책수단 검토를 중심으로」 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를 새로 도입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저탄소 경제 전환에 기여하는 중소기업과 그린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대출 실적에 따라 은행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논문은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 도입과 함께 적격담보에 은행의 기후대응 대출채권 포함, 기후대응 채권과 기후대응 대출채권의 담보인정가액 조정 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논문은 지난 2월 31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경제분석’의 ‘기후변화 연구 특별호’에 실렸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열린 ‘중소‧중견기업이 원하는 탄소중립 지원방안 토론회’에서도 지현영 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한은이 금융중개지원대출을 녹색금융중개대출로 확장해 중소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채 교수 등은 금융중개지원제도와 유사한 형태로 별도의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 도입을 제안했고 지 전 부소장은 금융중개지원제도의 지원 대상에 녹색자금을 포함시킬 것을 제안했다는 차이가 있으나, 실질적인 지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지난해와 올해 열린 한은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에서도 이에 대한 질의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의원은 지난행 국감에서 금융중개지원제도 개편 등 중앙은행의 실질적인 기후대응 정책을 주문했고 이창용 총재는 “금중대의 경우 어떻게 고려할지 고민 중”이라고 답변했다.
정 의원은 20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이창용 총재가 “금융시스템 안정에 있어서 기후 대응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명확히 갖고 있다는 말씀을 주셨고 한은이 그 부분에서 절대 노력이 덜하지 않다 이런 자신감 있는 말씀도 주셨으나 정작 통계는 (한은이)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금융중개지원대출제도에 따라 지방중소기업에 지원된 자금은 5조9000억원이었다. 이중 녹색기업에 지원된 자금은 173억원으로 0.29%를 차지했다. 녹색자금 지원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기존 제도하에서 지원된 자금 중 일부가 녹색기업에 지원된 결과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녹색금융 제공을 위해 “저희가 금중대를 더 활용해야 하느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작년에도 저희가 생각 중이라고 했는데, 금중대 전체를 어떻게 개편해야 되는지에 대해 큰 고민이 있다”며 “금중대의 무역금융이나 신성장 이런 항목에 녹색이라는 재료를 만들어 재정의 역할을 저희가 해야할지 아니면 금중대를 어떻게 개편해야 할지 이런 문제가 있어서 잘 못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 내에서는 재정의 역할에 해당하는 중소기업 지원을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시행하는 금융중개대출제도를 유지하는 게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은이 금중대 유지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려도 정부의 동의없이 이를 폐지하기는 힘들다. 폐지도 못하고 중소기업 녹색자금 대출 지원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의 이대건 팀장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기후금융 관련 토론회에서 녹색금융중개대출제도와 관련, “아마 관련 부서에서 이런 논의와 요구가 있기 때문에 계속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되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앙은행은 발권력을 동원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나 발권력을 동원했을때의 부작용 등을 보수적으로 따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은 ESG 투자 둔화
정 의원은 한은이 운용하는 외화자산의 ESG 요소를 고려한 투자도 최근 증가세가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2021년 기후변화 대응 정책 로드맵인 ‘기후변화와 한국은행의 대응 방향’ 보고서 발표 후 빠른 해당 연도에 39.6% 증가했다. 이후 올해 현재까지 투자 규모는 2배 이상 늘었으나, 증가율은 1.1%로 둔화했다.
[표] 한은 ESG 요소 고려한 외화자산 투자 현황
이 총재는 “외환보유액이 줄어들고 있어 새로운 투자를 못하고 오히려 (투자를) 줄이는 상황”이라며 “이게 바뀌면 (ESG 투자를 늘리도록) 좀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