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HD현대 회장, '무늬만 총수'?…승계 완성까지 남은 3대 난제

지분 6%로 회장 된 정기선, 부친 27% 물려받기까지 '산 너머 산' 증여세만 1조원 육박…담보대출 3715억·옥상옥 구조도 걸림돌 "배당·장내매입 장기전" vs "조기 증여로 속도전" 시나리오 엇갈려

2025-10-24     김제원 기자
HD현대 사옥. 사진=HD현대

[ESG경제신문=김제원 기자] HD현대그룹이 지난 17일 정기선(43)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키며 37년 만에 오너 경영 시대를 열었다. 정주영 창업주, 정몽준 명예회장에 이은 3세 경영 체제다.

하지만 정 회장이 진정한 '그룹 총수'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재계 8위 그룹을 이끌 정 회장의 HD현대 지분은 6.12%에 불과하다. 부친 정몽준(82) 아산재단 이사장이 보유한 26.6%와는 20.48%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재계에서 "직함은 회장이지만 실질 지배력은 '무늬만 총수' 수준"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지분율 6%로 30조원 그룹 이끈다?

재벌 총수의 안정적 경영권 행사를 위한 지분율은 통상 20~30% 이상으로 꼽힌다. 정 회장은 현재 최대주주인 부친과 아산사회복지재단(3.90%), 아산나눔재단(0.49%)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도 10.51%에 그친다.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해선 부친으로부터 주식을 계속 증여받아야 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정 회장은 2018년 부친으로부터 현금 3540억원을 증여받아 HD현대 지분 5.1%를 매입하며 승계 작업에 첫발을 뗐다. 이후 7년간 배당금 재투자와 장내 매입을 통해 지분을 6.12%까지 끌어올렸지만, 연평균 증가폭은 0.15%포인트에 불과하다. 이 속도라면 20~30% 확보까지 100년 걸린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정 회장이 지난해 HD현대와 HD한국조선해양에서 받은 보수는 22억7000만원, 배당금은 174억원이다. 연간 약 200억원의 현금 유입으로는 수조원대 지분 매입은 불가능하다. 결국 부친의 '빅딜' 증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증여세 폭탄 1조원…"세금 낼 돈이 없다"

정몽준 이사장이 보유한 HD현대 주식 2101만주의 가치는 시가 기준 약 1조60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증여세다. 현행법상 최대주주가 직계비속에게 주식을 증여하면 최고세율 60%가 적용된다. 정 이사장이 보유 지분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면 약 9821억원의 증여세가 발생한다.

더 큰 문제는 정 이사장 보유 지분의 54.36%인 1142만주가 이미 주식담보대출 담보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정 이사장은 하나은행, 교보증권 등에서 총 3715억원을 빌리며 HD현대 주식 14.46%를 담보로 제공했다. 대출을 상환하기 전까지 이 지분은 사실상 증여가 불가능하다.

담보 제외 지분 12.14%(약 7471억원 상당)를 증여해도 세금은 4483억원에 이른다. 정 회장이 연간 200억원 안팎의 보수·배당을 받는다 해도 세금 납부에만 22년 이상 걸린다. 재계 관계자는 "현금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또 다른 리스크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주담대 3715억원, 주가 급락하면 '마진콜 공포'

정몽준 이사장은 올해 들어서만 주식담보대출을 두 차례 연장했다. 3월 교보증권과 맺은 1.53% 지분 담보대출 계약을 3개월 연장했고, 4월엔 하나은행과의 10.44% 지분 담보대출을 1년 연장했다. 7월엔 2.49% 지분에 대한 계약 만기가 돌아온다.

주식담보대출의 가장 큰 위험은 주가 급락 시 '마진콜(추가 담보 요구)'이다. HD현대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 은행은 추가 담보를 요구하거나 강제 매각에 나설 수 있다. 2023년 초 HD현대 주가가 급락했을 때도 정 이사장의 담보 비율이 위험 수위에 근접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정 회장 본인도 NH투자증권으로부터 HD현대 주식 1.45%를 담보로 500억원을 빌렸다. 2019년 첫 계약 이후 6개월마다 연장하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부자가 합쳐 4200억원 이상의 주담대를 안고 있는 셈이다. 재계 안팎에선 "승계를 서두르다 주가 리스크에 무방비 노출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옥상옥' 지배구조…PBR 1.07배 '저평가'

정 회장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난제는 HD현대의 복잡한 지배구조다. HD현대는 최상위 지주회사 아래 조선 중간지주 HD한국조선해양과 건설기계 중간지주 HD현대사이트솔루션을 두는 '옥상옥'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구조는 2019년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HD현대는 인수 자금 부담을 줄이고 기존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HD한국조선해양이라는 중간지주를 물적분할로 신설했다. 이후 건설기계 부문도 HD현대사이트솔루션으로 분사하며 옥상옥이 고착화됐다.

문제는 투자자들의 외면이다. 올 상반기 HD현대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7배에 그쳤지만, 중간지주인 HD한국조선해양은 2.50배로 2배 이상 높았다. 같은 그룹 안에서도 최상위 지주는 저평가되고, 중간지주는 고평가를 받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증권가에선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가 모두 상장하면서 한국조선해양은 '조선사'가 아닌 '조선사 주식을 가진 지주사'로 전락했다"며 "투자자 입장에선 삼중 중복 상장으로 비친다"고 지적한다. 메리츠증권은 "옥상옥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화 김동관과 엇갈린 행보…"승계 속도전" vs "지분 쌓기"

정기선 HD현대 회장과 김동관(42) 한화 부회장은 1년 터울의 라이벌이다. 두 사람 모두 장남으로 태어나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그룹에 입사해 조선·방산 부문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승계 방식은 크게 갈린다. 정 회장은 지분 6.12%로 회장에 먼저 올랐지만, 실질 지배력 확보는 요원하다. 반면 김 부회장은 아직 부회장이지만, 부친 김승연(73) 회장으로부터 한화 지분 9.77%를 증여받아 두 동생(각 5.38%)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지분을 확보했다.

업계는 "정 회장이 '직함 먼저, 지분 나중' 전략을 택했다면, 김 부회장은 '지분 먼저, 직함 나중'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김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1~2년 내 가능할 것"이라며 "두 사람의 승계 방식이 누가 더 효과적인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 사진=HD현대

2026년 권오갑 퇴임 후 '정기선 단독체제' 본격화

정 회장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영 정당성 확보다. 현재 HD현대는 정 회장과 권오갑(67) 회장이 공동으로 이끄는 '투톱 체제'다. 하지만 권 회장의 임기가 2026년 3월 종료되면 정 회장의 단독 체제가 본격화된다.

업계는 "정 회장이 향후 1~2년 내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소액주주와 기관투자자들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2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3%룰(대주주 의결권 제한) 등이 도입되면 낮은 지분율의 정 회장은 경영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정 회장은 취임 메시지에서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과 DNA를 바탕으로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퓨처빌더가 되자"고 강조했다. 그는 2024년 CES 기조연설에서 AI 기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팔란티어와 협업해 무인 수상정·첨단 조선소를 개발하는 등 혁신 행보를 보여왔다.

하지만 혁신만으로는 부족하다.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지분 확보, 세금 해결,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삼중고를 풀어내지 못하면 '무늬만 총수'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고 말했다. HD현대의 진정한 3세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HD현대 주가(일별) 그래프. 사진=네이버 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