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ESG 트렌드]③ '착한 보고서' 시대 끝났다…세부규제 전문적 대응이 생존조건
EU 중심으로 포장재, 폐기물, 원자재 등 DPP 규제 본격화 제품 특성별 공급망 전역 데이터 추적,검증,감시 체계 필수 범용 ESG 보고 중심의 실무자들은 ESG 현장에서 밀릴 수도
[ESG경제신문=김제원 기자] 2026년은 글로벌 ESG 지속가능성 트렌드에서 '규제적 공식화(regulatory crystallization)'의 분기점을 맞이한다. 유럽연합(EU)이 앞장서는 가운데 EU와 거래하는 세계 모든 기업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
대표적인 규제가 2026년 8월 12일 시행에 들어가는 EU의 포장재및폐기물규정(PPWR)이다. 이런 규제들은 기업의 ESG경영이 이제 '착한 선언'을 넘어 '운영 층위별 세밀한 준수(operational detail compliance)'를 강요한다.
기업이 벌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선 당장 포장재의 PFAS(과불화화합물) 함량부터 공급망 추적까지, 제품 설계와 IT 시스템을 전면 재편해야 한다.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용 지속가능성 보고서 제작에 안주하는 기업들은 ESG 규제 대응에 뒤쳐지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또한 보고서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ESG 실무자들도 ‘데이터 관리 능력’과 ‘기술 적합성 입증 능력’을 갖춘 기술 및 공급망 전문가들에게 기업 내 입지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다.
2026년, ‘규제적 공식화’의 분기점과 상세성의 승리
EU의 포장재및폐기물규정(PPWR)은 단순 환경 규제를 넘어, 기업의 제품 설계, 공급망 구조, 데이터 관리 체계를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 순환경제의 틀을 요구한다. 기업은 2030년까지 모든 포장재가 재활용 가능성 기준(Grade C 이상, 70% 이상 재활용률)을 충족해야 한다. 또한 확대된 생산자책임제(EPR)를 통해 포장재의 전체 생명주기에 대한 재무적·관리적 책임을 진다.
PPWR은 기업이 시장에 출시한 포장재의 종류, 무게, 재활용률, 유해물질 포함 여부 등을 EU 각 회원국의에 등록·보고하고, 포장재의 재활용성 평가를 기술 문서화하여 제출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곧 공급망 전역의 데이터 추적, 검증, 감시 체계 없이는 규제 준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EU의 ESG 정보공시 세분화
PFAS 금지: 화학 물질 규제의 ‘나노 급’ 세밀화
가장 주목해야 할 규제적 충격은 제품 유해물질 함량의 극단적 엄격화다. EU는 2026년 8월 12일부터 PFAS 기반 포장재를 식품 접촉 포장에서 완전 금지하는 역사적인 조치를 단행한다.
PPWR이 제시하는 PFAS 제한 기준은 이전 규제와 차원이 다르다. 개별 제품의 표적 PFAS 분석으로 측정한 농도는 25 ppb를 초과할 수 없다. 이는 올림픽 수영장에 PFAS 625마이크로그램을 섞은 수준의 극소량이다. 또한 폴리머 PFAS를 포함한 전체 불소 함량은 50 ppm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제조업체는 포장재 설계 단계부터 PFAS 함유량을 최소화해야 하며, 규제 당국 요청 시 'PFAS 함유 포장재에 대한 기술 문서(technical dossier)'를 작성·보유해야 한다. 이 규제 미준수 시 EU 회원국은 기업 연매출의 10~20% 범위 내 상당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기업들은 PFAS 위험군을 식별하고, 고비용의 표적 PFAS 분석 및 총 불소 분석을 실시해야 하는 부담에 직면했으며, 2026년 8월까지 남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PPWR은 PFAS 외에도 납(100 mg/kg 이하), 카드뮴, 수은, 6가 크롬 등 기존 제한 물질도 유지하고 강화한다.
기업의 ESG팀은 이제 단순히 온실가스 정도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공급망 전역의 포장재에 사용된 모든 화학 물질을 식별, 분류, 모니터링해야 하는 화학 물질 인벤토리 관리라는 중대한 역할을 떠안게 됐다.
DPP와 Catena-X: 공급망 투명성의 기술적 기준
PPWR과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그리고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은 공급망 원재료의 추적성을 선택이 아닌 필수 의무로 만든다. 기업은 이제 Scope 3 배출 공개뿐만 아니라, 제품 원재료 추출지까지 위험 기반 접근으로 추적해야 한다.
이러한 다층적 추적 의무를 실현하는 기술적·제도적 인프라가 바로 '디지털 제품 여권(DPP, Digital Product Passport)'이다. DPP는 각 제품에 부여된 QR 코드 등의 고유 식별자를 통해 원재료 구성, 유해 화학 물질, 재활용률, 탄소 발자국 등 제품의 전체 생명주기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DPP의 단계적 강제 적용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배터리 여권 : DPP의 선도 사례인 배터리 여권은 2027년 2월 18일부터 EV, 산업용 배터리 등에 강제 적용된다. 이는 제품 식별 정보, 생명주기 데이터, 중요 원자재 함량, 그리고 원자재 채굴지 및 공급업체 정보를 포함하는 300개 이상의 상세 데이터 속성을 요구한다.
• 섬유·의류 : 복잡한 공급망을 가진 섬유 제품은 2027년부터 최소 간소화 DPP가 도입될 예정이며, 2030년까지 심화 공급망 추적을 요구하는 고급 DPP로 이행된다.
• 기타 제품군 : 전자제품 (2028년 이후), 건설 자재 (2029년 이후) 등 대부분의 실물 제품이 단계적으로 DPP 의무화 대상이 된다.
DPP는 ESG 데이터 관리를 기업 단위가 아니라 각 제품, 각 재고관리단위(SKU , Stock Keeping Unit), 각 배치 수준에서 요구한다. 한국 제조업체들은 EU 수출을 위해 독일 자동차 산업 주도의 Catena-X와 같은 개방형 데이터 교환 표준에 맞춰 LCA(생명주기 평가) 및 PCF(제품 탄소 발자국) 데이터를 자동화하고 EU DPP에 대응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DPP 시행 세부 일정
ESG 실무자의 위기: 전문화 못하면 주도권 상실
PPWR, PFAS 규제, DPP, CSRD의 압박이 결합하면서, 기존 ESG 팀의 업무 구성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ESG 실무자는 더 이상 단순한 '보고자(reporter)'나 "사회 공헌 담당자"가 아니다.
새로운 규제 환경에서 ESG 실무자들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데이터 거버넌스 및 IT 기술 통합 : CSRD는 80개 공시 요구사항과 800개 데이터 포인트를 요구하며, 기업의 거의 70%가 데이터 수집, 처리, 보고에 어려움을 느낀다. ESG 팀은 중앙화된 데이터 관리 플랫폼을 구축하고, ERP, IoT 센서 등 다양한 소스에서 수집된 정보의 **추적성(lineage)**을 유지해야 한다.
· 규제 전략 및 기술 문서화 : ESG 팀은 단순한 보고를 넘어 기술 적합성 입증(technical compliance demonstration)을 위해 포장재 기술 문서(technical dossier)나 LCA 보고서 등을 작성·제출해야 한다. 이는 화학, 독성학, 규제 해석 역량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 공급망 및 오퍼레이션 개입 : PPWR과 순환경제 정책은 ESG팀이 포장재 재활용성 평가, 공급자 ESG 준수 검증, 순환경제 메트릭 추적 등 공급망의 세부 운영에 깊이 개입하도록 강제한다.
전문성 확보 위한 조직 내 협력체계 구축
ESG 실무자가 이러한 데이터 거버넌스, 화학 규제, 기술 통합 역량을 빠르게 확보하지 못하면, 기업 내 ESG 주도권을 다른 전문화된 부서에 빼앗길 수도 있다. ESG팀 실무자들은 아래와 같은 사해 부서 전문가들과 강력한 협업체계 또한 구축해야 한다.
• IT/데이터 부서 : CSRD와 DPP가 요구하는 800개 데이터 포인트의 수집, 표준화, 검증(lineage) 능력은 IT 및 데이터 거버넌스 팀의 영역이다.
• 공급망/구매(SCM/CPO) 부서 : CSDDD, PPWR, EUDR의 강제 실사 요구사항은 공급망 리더(CPO)가 비용 절감 대신 ESG 준수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으로 두게 만들며, 이들이 DPP 및 Tier N 추적 시스템 운영을 주도할 수 있다.
• 제품 개발/R&D 부서 : PFAS 금지, 재활용 설계 의무화는 제품 및 포장재 설계 자체의 변혁을 의미하며, 이는 화학/재료 공학 기반의 R&D 및 품질 관리 팀이 중요한 입지를 점한다.
ESG 실무자는 이제 "규제 전략가"이자 "운영 최적화자", "데이터 거버넌스 관리자"로 진화해야만 기업 내 입지를 유지하고 규제 환경을 선도할 수 있다. 이러한 역량 확보를 위해 많은 기업들이 ESG 데이터 거버넌스 담당자, 화학 물질 규제 전문가 등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ESG 세부 준수가 곧 미래 경쟁 우위
2026년 이후 글로벌 ESG 트렌드는 규제의 공식화와 세부 사항별 대응을 특징으로 한다. 형식적 공시에만 의존하는 기업은 규제 제재와 평판 손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DPP를 통한 제품 수준의 세밀한 데이터 관리, PFAS 규제 준수를 통한 화학적 투명성 확보 등은 이제 기업의 핵심 경쟁 우위가 된다. ESG 실무자들이 이 기회를 활용하여 기술, 규제 해석, 데이터 관리라는 세 가지 핵심 역량을 확보하고 다른 사업 부문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비로소 그들의 역할은 단순 보고자를 넘어 기업의 전략적 생존과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