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ESG 트렌드]④ 중대재해, 기업가치 주요변수…ESG평가 직결
정부 “2030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출 것”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중대재해 반복 발생 시 과징금 및 영업정지 등 금융위, 중대재해 ESG평가 직결…수시공시 신설 등 공시반영 고도화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중대재해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현장의 안전 문제’를 넘어 기업가치·자본조달·ESG 등급에까지 직결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한 번의 사고가 기업의 신용·평판·주가·대출조건을 동시에 흔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특히 중대재해가 기업평가와 자본조달에 미치는 영향이 제도화된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산업안전 정책 전반을 처벌·공시·참여·평가 체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노동안전 종합대책’에는 원·하청 공동 안전보건위원회 구성, 근로자 작업중지권 완화, 재해 반복 시 과징금·영업정지 등 경제적 제재 도입이 포함됐다.
동시에 금융위원회는 중대재해 발생을 보고하는 수시공시를 신설하고, ESG 평가기관이 중대이슈를 평가등급에 의무 반영하도록 가이던스를 개정했다. 이는 산업안전이 더 이상 개별 사업장의 관리 문제가 아닌, 기업 신뢰·평판·자본비용을 결정하는 시장 변수로 자리 잡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부 “2030년까지 사고사망만인율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출 것”
정부는 산재예방에 노동자 참여를 확대하고 기업 공시와 처벌 신설 등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정부는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산업안전보건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0.39‰에서 0.29‰로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 및 관계부처는 지난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노동안전 종합대책 중 기업에 영향을 미칠 핵심 내용으로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의무화 ▲작업중지권 행사요건 완화 ▲중대재해 반복 발생 시 과징금 및 영업정지, 인·허가 취소 ▲공공입찰 제한 및 여신 규제 등이 있다.
먼저 건설안전특별법은 도급계약 시 원청의 안전 예방 의무를 강화하는 법안이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건설안전특별법’에 따르면, 건설공사 참여 주체인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등에게 안전관리 의무가 부여된다. 이를 소홀히 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건설사업자 등에게는 1년 이하의 영업정지 또는 매출액 3%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정부는 또한 원·하청이 공동으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운영하게끔 해 원·하청 노사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안을 제시했다. 상대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미흡한 사내협력업체의 근로자들을 원청이 직접 관장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 내로 편입시킨 것이다.
근로자 작업중지권도 강화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의 ‘우려’가 있는 경우로 확대했다. 근로자의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 시 불리한 처우에 대해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규정도 도입했다.
정부는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재해 현황·재발방지대책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제 ▲안전보건투자 규모 등을 공시하는 ‘안전보건공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안전보건계획 공시가 의무화될 경우 기업은 재해율, 안전보건 예산액 등 민감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안전보건공시제는 5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우선 적용하되 300인 이상 사업장까지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형사처벌 외에도 관계법령 제·개정을 통해 중대재해 반복 시 ▲제재적 성격의 과징금 ▲영업정지 및 인·허가 취소 ▲공공입찰 제한 ▲여신심사, 보증, 분양 등에 중대재해 리스크 반영 등 다양한 경제적 제재 수단을 마련했다.
정부는 "대책의 차질 없는 이행을 위해 입법·예산 과제에 대해 재정 당국·국회와 긴밀히 협의"할 것 이라며 8개 부처, 12개 법률에 해당하는 입법과제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 중대재해 발생 ESG평가에 직결…수시공시 신설 등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 중대재해 관련 금융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해 중대재해 관련 수시공시를 신설하고 사업보고서 등 정기공시를 강화했다. 아울러 ESG 평가기관 협의체에서는 중대재해 등 중대이슈 발생을 ESG 평가에 반영하는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를 개정했다.
금융위원회는 유가증권시장·코스닥·코넥스 상장회사가 ▲고용노동부에 중대재해 발생 관련 사실·현황을 보고한 당일에 그 보고내용을 공시하도록 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의 형사법원 판결 결과를 확인한 당일 관련 사실을 공시하도록 하는 한국거래소 공시규정 승인안을 의결했다.
금융위는 “그간 상장회사는 큰 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한국거래소에 수시공시 중으로, 재산손해가 없는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공시할 의무가 없었다”면서 “그러나 중대재해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커지고 행정·사법 조치가 강화되면 해당 기업의 향후 영업활동이나 투자수익률 등이 중대재해 발생 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의결 이유를 밝혔다.
중대재해와 관련하여 사업보고서 등 정기공시 강화도 추진된다. 금융위는 “현재도 사업보고서·반기보고서에 중대재해 관련 형벌 및 행정상 조치 등의 사항은 공시되고 있었으나, 중대재해 발생사실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 투자자에 대한 정보제공이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관련해 사업보고서·반기보고서에도 대상기간 중 중대재해 발생사실과 대응조치 등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고시 개정을 추진했다.
ESG 평가기관 협의체는 중대재해 등 중대이슈 발생시 평가체계 반영을 명시하도록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를 개정했다. 지금까지 국내 ESG 평가기관들은 중대재해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중대한 사안(controversy)에 대한 중대이슈가 발생할 시에만 자율적으로 반영하고 있었다. 한국거래소는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 준수현황을 정기적으로 비교, 분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