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30, 브라질 초안서 탈탄소 전환 로드맵 빠지나

‘무티라오 결정’서 전환 경로 표현 약화 80여개국 공동 압박 속 1.5℃ 목표 이행 논쟁 격화 IPCC “2030년 43% 감축”과도 괴리

2025-11-21     김제원 기자
지난 10일부터 브라질 벨렘에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열리고 있다. 예정된 종료일은 현지시간 21일이다. 사진=연합뉴스

[ESG경제신문=김제원 기자] 브라질이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제30차 당사국총회(COP30)에서 석유·가스·석탄 등 화석 연료로부터의 전환 경로를 명시하자는 약 80여 개국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는 방향으로 예비 합의문(‘무티라오(mutirão) 결정’)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의를 주관하는 브라질 의장단은 당초 현지시간 20일 오후 차기 초안 텍스트를 각국 대표단에 제시할 예정이었으나, 회의장 화재로 대규모 대피가 이뤄지면서 공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화재는 20일 오후 파빌리온(블루존)에서 발생해 6분 만에 진화됐으며, 10여 명이 연기 흡입으로 경미한 치료를 받았다. 협상은 사실상 하루가 멈춰선 상태다. 

브라질 초안, 화석 연료 전환 ‘로드맵’ 문구 삭제 유력

기후전문매체 클라이밋홈뉴스(Climate home news)에 따르면, 브라질 의장단이 준비 중인 무티라오 결정 차기 초안에서는 화석 연료 전환 로드맵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삭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초안에는 ‘화석 연료로부터의 전환을 위한 로드맵 마련을 검토한다’는 수준의 문구가 옵션 형태로 들어 있었으나, 산유국과 일부 신흥국의 강력한 반대에 따라 이런 문구도 빼는 방향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화석 연료 전환 로드맵에 대해 국가간의 의견은 첨예하게 나뉘고 있다. 브라질 COP30 의장인 앙드레 코헤아 두 라구는 앞서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는 다음 단계를 설계하는 합의를 둘러싸고 상당한 저항이 존재한다”며 “대부분의 국가가 로드맵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거나, 혹은 ‘적대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화석 연료 전환 논의는 그간 유엔 기후협상의 가장 민감한 쟁점 중 하나였다. 2년 전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서는 처음으로 공식 합의문에 “에너지 시스템에서 화석 연료를 ‘전환(transition away)’한다”는 문구가 들어갔으나, 구체적인 일정·부문별 감축 경로는 빠졌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COP29에서도 후속 논의가 크게 진전되지 못하면서, 이번 회의에서는 이행 경로를 명시하는 글로벌 로드맵 채택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유럽·남미·도서국까지 80여 개국 “전 세계 로드맵 필요”

현재 브라질이 추진 중인 방향과 달리, 유럽연합(EU), 영국, 콜롬비아, 케냐, 마셜제도, 일부 카리브·태평양 소도서국 등 80여 개국은 무티라오 결정에 ‘화석 연료 전환 로드맵 마련’에 대한 명시적 합의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독일 등 주요 선진국과 콜롬비아·케냐 등 대형 개발도상국, 해수면 상승 위기에 놓인 태평양 도서국들이 공동 연설을 열고, COP28에서 합의한 “화석 연료로부터의 전환”을 구체화하기 위한 다음 단계로 글로벌 로드맵을 마련하자는 요구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마셜 제도 기후특사 티나 스테게는 “전 세계가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는 것은 1.5℃ 목표의 핵심”이라며 “브라질 초안에 들어 있는 로드맵 문구는 약하고 선택적으로 제시돼 있으며, 더 강화하여 채택돼야 한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정부 역시 로드맵의 핵심 지지국으로, 이레네 벨레스 환경장관은 “화석 연료 생산국들이 이제는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지구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화석 연료 사용을 중단하기 위한 조치 결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IPCC “2030년까지 온실가스 43% 감축 필요”… 로드맵 논쟁, 1.5℃ 공약 시험대

지지국들이 로드맵을 ‘핵심 시험대’로 보는 배경에는 과학계가 제시한 1.5℃ 목표 달성 문제가 있다.

IPCC(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이 늦어도 2025년 이전에 정점을 찍고,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약 43%, 2035년까지 60% 감축돼야 한다. 

또한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에 따르면, 1.5℃에 부합하는 경로에서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탄소예산)는 약 510GtCO₂ 수준인데, 현재 가동 중이거나 계획된 화석 연료 인프라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누적 배출량은 이보다 훨씬 많은 약 850GtCO₂에 달한다. 사실상 기존·계획 설비만으로도 1.5℃ 탄소예산을 초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존 및 계획된 화석 연료 기반 시설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그래프=세계자원연구소

브라질 “극단 사이 균형” 주장… 산유국·개도국 반발 여전

현재 공개된 무티라오 초안에는 화석 연료 전환과 관련해 ▲국가별 ‘공정하고 질서 있는 전환 로드맵’ 마련을 위한 원탁회의 개최, ▲기존 에너지 시스템의 다변화, ▲삼림 파괴 중단 등 다양한 옵션이 병렬로 제시돼 있다. 다만 글로벌 차원의 구속력 있는 로드맵을 명시하는 문구는 빠져 있는 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과 일부 신흥국들은 여전히 배출 감축에는 여러 경로가 있으며, 특정 에너지원(화석 연료)을 명시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엔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화재로 협상이 중단된 가운데서도 “타협이 가능하다"며 로드맵을 둘러싼 협상 타결을 촉구했다. COP30은 당초 21일(현지시간) 공식 폐막이 예정돼 있지만, 화석 연료 로드맵과 기후금융, 무역·투명성 등 핵심 쟁점에서 여전히 입장 차가 커 협상이 주말까지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