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기후 귀속 과학 서비스' 출범…기후소송 판도 바꿀까
기후재난에 대한 기후변화의 영향력 정량적 산출 가능해져 다양한 주체가 기후변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수치로 산출 기후귀속과학, 기후소송 증거·보험 리스크 모델 핵심 도구로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유럽연합(EU)이 폭염 및 홍수 등 극한 기상재난에서 기후변화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공신력 있게 판별해주는 상시 기후 귀속 분석 서비스 출범을 공식화했다.
이 제도는 정부의 기후정책은 물론, 보험과 금융권의 위험 모델링, 그리고 기후소송의 과학적 증거 제공까지 ESG·지속가능성 관리 패러다임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향후 3년간 250만 유로 지원 예정…내년 말 첫 보고서 발간 계획
해당 서비스는 기후 귀속 과학(climate attribution science)을 기반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이는 특정 폭염·홍수·가뭄 같은 극한 기상현상이 기후변화로 인해 얼마나 더 강해졌거나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는지를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과학적 분석이다.
기후 귀속 과학은 과거(기후변화가 없었다고 가정한 상황)와 현재(온실가스가 증가한 실제 상황)를 각각 시뮬레이션해 두 시나리오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기후변화의 영향력을 정량적으로 산출한다.
특히 귀속 과학은 온실가스 배출량, 소득 수준, 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지구온난화와 극단적 기후 현상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수치로 산출하기 때문에 기후소송, 탄소중립 정책, 국제 협상, 기업별 기후책임 산정 등에서 과학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새롭게 출범하는 상시 기후 귀속 분석 서비스는 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opernicus Climate Change Service, C3S) 산하에 새롭게 구축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C3S 소속 과학자들은 로이터통신에 이 서비스가 악화하는 기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물리적 리스크를 정부가 판단하고, 이에 대응하는 정책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상시 기후 귀속 분석 서비스의 기술 책임자 프레이야 밤보르그(Freja Vamborg)는 “극한 기상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기후변화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요구가 있다”고 말했다.
상시 기후 귀속 분석 서비스는 향후 3년간 약 250만 유로가 지원될 예정이다. C3S는 내년 말까지 첫번째 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이후에는 한 달에 두 건의 보고서를 제공할 예정이다. 각 보고서는 특정 극한 기상현상 발생 후 일주일 이내에 발표된다.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는 귀속 사무국은 EU 회원국의 국가 기상청은 물론 영국 기상청(UK Met)과 적십자·적신월 기후센터와 협력할 계획이다.
기후귀속과학, 기후소송 증거·보험 리스크 모델 핵심 도구로
기후변화가 기상 패턴에 미친 영향을 계산해 그 기여도를 산정하는 이 접근법은 보험회사와 금융 부문에서도 도움이 된다.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환경과학자 요한 록스트룀(Johan Rockstroem)은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은 이미 이를 활용하고 있다”면서 보험사나 금융사 내부에서는 기후재난의 발생 확률을 계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기관은 리스크를 이해하고, 리스크를 정량화해야 한다”면서 “귀속 과학은 이를 정량화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사와 보험사는 보험료 산정, 자산 평가, 규제 대응을 위해 기후재난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고 얼마나 큰 손실을 일으킬지를 정량적으로 계산해야 한다. 폭우·홍수·폭염 등 극한기상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고 어느 정도 피해를 유발할지에 대한 확률값은 금융사와 보험사의 기후리스크 평가의 핵심 요소이며, 기후변화로 인해 기후재난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에 따라 그 수치는 크게 달라진다. 기후귀속과학은 이러한 확률 산정에 필요한 기후변화의 기여도(발생확률 증가 요인)를 제공해 금융권의 리스크 모델을 더 정확하게 만든다.
기후소송에서 한 국가 또는 기업의 배출이 기후로 인한 재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계산하는 데에도 귀속 과학은 이미 사용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7월 귀속 과학이 배출과 기후현상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하다고 밝혔지만, 아직 법정에서 완전히 검증된 적은 없다.
비영리단체 국제환경법센터의 선임 변호사 에리카 레논(Erika Lennon)은 “우리는 가능한 가장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자 한다”면서 “귀속 과학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법원에 청구를 성공적으로 제기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런던정경대의 기후소송 연구원 노아 워커-크로포드(Noah Walker-Crawford)는 “법원은 귀속 과학을 자세히 논의하거나 기후모델이 충분히 정교한지와 같은 복잡하고 난해한 질문들에 대해 검토하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