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30, 기후적응 금융 3배 늘려 연간 최소 1200억弗 지원

글로벌 무티랑·GGA 59개 지표로 취약국 지원 틀 마련 무역·기후 대화 채널 신설·GCF 역할 부각, 한국도 대응 과제 부상

2025-11-24     김제원 기자
미국에 차기 의장국을 인계하고 G20 폐막을 선포하는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사진=남아공 정부 공보실. EPA=연합뉴스

[ESG경제신문=김제원 기자]  브라질 파라주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22일(현지시간)가 합의문 도출을 위한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예정 보다 하루 늦게 폐막됐다. 당사국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극한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적응 재원을 대폭 늘리기로 합의했으나, 화석연료 감축·폐지에 관한 구체적인 로드맵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했다.

‘글로벌 무티랑(Global Mutirão)’ 결정과 ‘벨렝 패키지(Belém Package)’로 불리는 합의문은 개도국 기후적응 재원 목표를 현 수준의 세 배로 확대하고, 각국의 적응 노력을 측정하기 위한 59개 지표를 채택했다. 반면 수십 개국이 요구해온 ‘화석연료 단계적 폐지 로드맵’과 각국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의 상향 요구는 최종 문안에서 빠졌다.

‘글로벌 무티랑’·‘벨렝 패키지’

적응 재원 3배 확대 목표

AP뉴스에 따르면, 합의문은 기후변화 영향에 취약한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후적응 재’ 목표를 현 수준의 세 배로 늘리고, 연간 최소 1200억달러 규모를 지향하는 새로운 적응 재원 목표를 설정했다. 다만 이 목표 달성 시점은 당초 개도국이 요구한 것보다 5년가량 뒤로 미뤄졌다.

적응지표 59개 채택

각국의 적응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글로벌 적응목표(GGA)’ 이행 수단으로, 당초 100개로 설계됐던 지표가 최종적으로 59개로 축소·수정된 형태로 채택됐다. 이 지표들은 농업, 물, 인프라, 보건 등 다양한 부문에서 취약성 감소와 회복력 제고 정도를 측정하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무역·기후 연계 논의의 공식화

합의문에는 앞으로 3차례의 본 회기 중간 회의(독일 본)에서 WTO, UNCTAD, 국제무역센터(ITC)가 참여하는 ‘기후와 무역’ 대화를 개최하고, 2028년 COP33에서 고위급 장관급 회의로 이어가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기후 정책과 통상 규범을 연계해 논의하는 정식 절차가 처음으로 UNFCCC 틀 안에 들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1.5℃ 달성을 위한 ‘이행 가속화’ 구상

벨렝 합의는 1.5℃ 목표를 “여전히 달성 가능하지만 매우 좁아진 경로”로 재확인하면서, ‘글로벌 이행 가속기(Global Implementation Accelerator)’와 이른바 ‘벨렝 1.5℃ 미션’을 통해 파리협정 최초 글로벌 스톡테이크(GST)에서 나온 결론을 추진하겠다는 정치적 신호도 담았다.

화석연료 문구의 부재와 브라질·콜롬비아 로드맵 구상

이번 COP30의 최대 쟁점이었던 화석연료 감축 로드맵은 최종 합의문에 명시되지 않았다. 초안 단계에서 ‘화석연료 단계적 폐지(phase-out)’ 또는 ‘전환(transition)’에 관한 문구가 여러 버전으로 논의됐지만, 산유국과 일부 신흥국의 반대로 최종본에서는 관련 표현이 사라졌다.

21일(현지시간) COP30 회의장 밖에서 진행된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 요구 시위. 사진=벨렝 AP=연합뉴스

브라질 의장국은 콜롬비아 등과 함께 별도의 자발적 이니셔티브 형태로 화석연료 축소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COP30 공식 결정문과 같은 법적·정치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콜롬비아 대표단은 “합의문 어디에도 ‘화석연료’라는 단어조차 들어가지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다자협력의 틀은 유지”…부분적 진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COP30 결과에 대해 “어떤 국가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도전에 맞서 여전히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서도, “과학이 요구하는 수준과 현재 사이의 격차는 여전히 위험할 정도로 크다”고 평가했다.

팔라우 대사는 “지정학적 여건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패키지”라면서, 합의 실패보다는 불완전한 합의가 낫다는 입장을 밝혔다.

E3G, IISD 등 국제 싱크탱크는 ▲적응 재원 목표의 구체화 ▲59개 적응지표 채택을 통한 GGA의 실질적 출범 ▲무역·기후 대화 채널 신설 등을 COP30의 가시적 성과로 꼽으면서, 향후 2030년대 중반까지 기후재원·적응정책을 끌고 갈 기본 골격이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취약국에 대한 지원 강화

COP30 합의문은 특히 기후위기에 취약한 아프리카·중소도서국가들이 요구해온 ‘적응 재원 확대’에 대해, 기존 모호한 약속 수준을 넘어 금액과 배수를 명시한 점이 특징이다. 시에라 리온 환경장관은 “아프리카가 요구한 모든 것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바늘을 조금은 움직였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이 문장이 얼마나 빨리 실제 사업과 생계 보호로 이어지느냐”라고 말했다.

E3G는 이번 적응 재원 목표가 “취약국의 요구에 실질적으로 응답하는 첫 단계”라면서도, 2035년이라는 시한이 개도국이 원했던 속도보다 늦다는 점에서 절충의 산물이라고 정리했다.

파리협정 목표와는 여전한 괴리

여러 국가와 시민사회 단체들은 COP30 합의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한다는 파리협정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아프리카 기후단체 ‘파워 시프트 아프리카’의 모하메드 아도우는 “이번 합의는 방향 자체는 옳지만, 위기의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아기 걸음(baby steps)’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필리핀 전 협상가이자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소속인 재스퍼 인벤터는 “합의문 텍스트를 벗겨내고 보면,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말했고, 파나마 협상대표 후안 카를로스 몬테레이 고메스는 “‘화석연료’라는 단어조차 언급하지 못하는 기후결정은 중립이 아니라 공모(complicity)”라고 비난했다.

절차 논란과 적응지표 축소

합의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도 도마에 올랐다. 본회의에서 패키지 합의안이 빠르게 채택된 뒤, EU와 여러 라틴아메리카 국가, 캐나다 등은 적응지표 문안이 “불명확하고 실행 불가능하다”며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표결 직전까지도 발언을 신청했지만 COP 의장이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며 반발했고, 결국 의장은 사과했다.

전문가들은 COP29(바쿠)에서 전문가 그룹이 합의한 100개 지표가 협상 과정에서 59개로 줄어드는 과정이 불투명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일부 지표는 문구가 바뀌어 사실상 활용이 어렵게 됐으며, 향후 다시 수정 논쟁이 반복될 소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화석연료 로드맵 부재

가장 큰 한계로 꼽히는 부분은 지난 2023년 개최된 COP28에서 합의된 ‘화석연료에서의 전환(transition away from fossil fuels)’ 문구를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회의 막판까지 80여 개국이 화석연료 단계적 감축·폐지 로드맵을 요구하며 결렬 가능성까지 거론됐지만, 최종 합의문은 기존 합의 재확인 수준에 그쳤고, ‘화석연료’라는 표현 자체도 삭제됐다.

여러 국제 언론과 연구기관은 이번 COP30 결과를 두고 “다자협력의 틀은 유지했지만, 기후 비상사태를 반영하기에는 야심이 부족한 합의” “최소한의(miminal) 합의” 등으로 평가했다.

韓, 기후재원 공여국·GCF 호스트국으로서의 역할

한국은 UNFCCC 체제에서 ‘비(非)부속서Ⅰ(Non-Annex I)’ 당사국이지만, 동시에 인천에 본부를 둔 녹색기후기금(GCF)의 호스트국이자 기후재원 공여국이기도 하다. GCF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초기 조성(IRM) 시기부터 꾸준히 기금을 출연해 왔으며, 2023년에는 1차 보충(GCF-1) 대비 50% 증액된 신규 공여를 약속했다.

COP30 합의가 적응 재원 3배 확대를 명시하면서, GCF·다자개발은행(MDB) 등 기존 기후기금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IISD는 무티랑 결정이 공여국들의 기후재원 확대 압력을 유지하는 정치적 신호라고 분석했으며, UN Geneva는 COP30 결과로 다자기구(MDB)와 기후기금(GCF 포함)의 역할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무역·통상 환경 변화 가능성

COP30 합의문이 향후 몇 년간 기후와 무역을 병행 논의하는 정식 ‘대화 채널’을 만들기로 하면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기후 관련 무역조치에 대한 정치·외교적 논의가 UNFCCC 틀 안에서 전개될 기반이 마련됐다.

E3G는 이번 회의를 “무역 측면에서 역사적인 COP”이라고 평가하며, WTO·UNCTAD·ITC가 함께 참여하는 논의 구조가 향후 기후·통상 규범을 둘러싼 주요 장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입장에서는, EU·미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의 탄소규제와 더불어 UNFCCC 내 무역 논의의 흐름을 면밀히 추적할 필요성이 커진다. 한국은 2024년 기준 연간 수출액이 약 6,838억달러에 이르는 무역의존적 경제로, 반도체, 승용차, 정제 석유제품, 선박, 철강 제품 등이 상위 수출 품목으로 집계된다.

국제 보고서와 통계에서는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수소 등을 에너지 다소비·탄소집약 산업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들 품목에 대해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탄소·환경 규제가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