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후쿠시마 이후 첫 도쿄전력 원전 재가동...‘원전 최대 활용’ 대전환

액화천연가스 수입·연료비 부담 완화 겨냥 원전, 인플레이션 붙잡을 일본 정부의 대응책

2025-11-24     김제원 기자
일본 가시와자키·가시와 원자력발전소. 사진=AFP 연합뉴스

[ESG경제신문=김제원 기자] 일본이 세계 최대 원전인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니가타현)에 대해 사실상 재가동 절차에 들어갔다. 후쿠시마 다이이치 사고 이후 도쿄전력(TEPCO)이 운영하는 원전이 다시 돌아가는 것은 처음으로, 일본의 전력 수급과 연료비, 에너지 정책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니가타현 히데요 하나즈미 지사는 11월 21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 6·7호기 재가동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번 동의는 내달 열리는 현 의회의 추인을 전제로 중앙정부에 재가동 수용 의사를 통보하겠다는 의미로, 사실상 지역 차원의 최종 관문을 통과한 셈이다.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은 일본 서해안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시·가리와촌 일대에 위치한 7기 원자로, 총 설비용량은 8212MW로 단일 원전 단지 기준 세계 최대 규모다. 도쿄전력은 이 가운데 설비용량 1356MW급 고급비등수형원자로(ABWR)인 6·7호기 두 기부터 재가동한다는 계획으로, 두 호기가 동시에 가동되면 271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도쿄전력은 6호기에 대해 연료 장전을 완료하고 10월 주요 계통 점검을 마쳤으며, 재가동에 필요한 주요 설비가 정상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회사는 지역 여론을 고려해 니가타현과 인근 지자체 지원을 위해 총 1천 억엔 규모의 지역 지원 패키지도 제시했다.

이번 결정은 도쿄전력이 2011년 후쿠시마 다이이치 사고 이후 보유 원전에서 추진하는 첫 재가동이다. 일본 전기협회·국제 에너지 통계 등에 따르면 후쿠시마 사고 이전 일본에는 54기의 상업용 원전이 운영됐지만, 사고 이후 전원 가동이 중단됐다. 이후 신규 안전기준에 따라 심사를 통과한 33기 가운데 14기만이 재가동에 들어갔고, 가시와자키-가리와 6·7호기는 규제당국으로부터 재가동 인허가를 받았으나 지역 동의 절차가 남아 있었다.

원전, 전력 수급·연료비 감소에 영향

가시와자키-가리와 6호기가 이르면 내년 초 재가동될 경우 일본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을 줄이는 효과가 예상된다. 에너지 분석업체 Kpler는 6호기 재가동 시 2026년 일본의 LNG 수요가 약 100만 톤 감소해, 기존 전망치 6300만 톤에서 6200만 톤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2025년 예상치인 6600만 톤과 비교해도 추가 감소폭이 발생하는 것이다.

일본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LNG 수입국이자 3위 석탄 수입국으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의존도가 줄어든 대신 LNG·석탄·석유 수입 비중이 크게 늘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사고 이전 원전은 일본 전력 생산의 약 30%를 담당했으나, 2023년 기준 원전 비중은 약 6% 수준에 그쳤다.

LNG는 연료비 부담도 크다. 일본 경제산업성·정부 통계에 기반한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LNG와 석탄 수입에 10조 7000억 엔을 지출했으며, 수입 화석연료는 전체 전력 생산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도쿄전력의 실적 측면에서도 가시와자키-가리와 재가동은 의미가 크다. 도쿄전력은 과거 공시에서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의 원자로 1기 재가동 시 연간 순이익이 약 1천억 엔 개선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원전이 재가동되면 고가의 LNG·석탄 발전 비중을 줄일 수 있어 연료비가 감소하고, 이는 곧 기업 수익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일본 전력 생산 현황.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원전 가동 중단으로 인해 천연가스, 석유, 석탄 수입 의존도가 높아졌다. 일본은 국내 화석 연료 자원이 제한돼 있어 대부분의 화석 연료를 수입하고 있다. 그래프=미국에너지정보국

‘원전 최대 활용’으로 선회한 에너지 정책

이번 재가동은 일본 중앙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과도 맞물려 있다. 일본 정부는 2021년 제6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전력 믹스에서 원전 비중을 20~22%, 재생에너지를 36~38%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미국 EIA가 지난 1월 정리한 분석에 따르면, 2024년 말 공개된 제7차 에너지 계획(초안)에서도 일본은 2040년 원전 비중 목표를 20%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기존 원전의 가동 기간 연장과 재가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올해 10월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인플레이션과 연료비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원전 재가동을 내세우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다카이치 내각은 수입 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에너지 안보와 탈탄소에 기여하는 전원”의 최대 활용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원전 재가동과 차세대 원자로 도입을 배치했다.

정부는 러시아산 LNG 의존도 축소와 미국산 LNG 도입 확대 등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도 병행하고 있지만, 사할린-2 프로젝트 등 기존 장기계약 구조상 단기간에 러시아산 비중을 크게 줄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단기간 내 전력 공급 능력을 크게 늘릴 수 있는 기존 원전의 재가동이 정책 수단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가시와자키-가리와 6·7호기가 실제로 상업 운전에 들어가면,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중단됐던 도쿄전력 소유 원전의 가동을 재개하는 동시에, 전력 믹스에서 원전 비중을 확대하는 첫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향후 니가타현 의회 심의와 중앙정부의 최종 절차,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의 추가 점검 일정에 따라 실제 재가동 시점과 운전 범위가 구체화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