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금산분리 완화 카드 만지작...'SK 특혜' 논란 고조

‘국가전략산업 지원’ 명분 속 논의 활발...‘핀셋 완화’에 방점 與 ‘조건부 완화론’ vs 野 “예외조항 안돼” 전면 재검토 요구 SK 대규모 투자계획 맞물려...정책펀드와 공동운용 구상 주목 “산업육성 논리 내세우지만, 특정 대기업 중심 지원 귀결 가능성”

2025-11-25     김대우 기자
SK그룹 서린사옥. 사진=SK그룹

[ESG경제신문=김대우 기자] 정부가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산업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금산분리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SK그룹의 대규모 투자 계획과 맞물린 ‘특정 기업 특혜’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정책 방향 자체가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재벌 지배구조와 금융자본 집중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는 모양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는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등 초대형 자본 투입이 필요한 전략 산업에 한해, 기업이 직접 펀드를 조성해 운용에 참여하거나 정책 펀드와 공동운용사(GP)로 나설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공정거래법이 정한 금산분리 원칙과 은행 지분 보유 제한 등 핵심 안전장치는 유지하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전략산업 펀드 영역에서만 예외적으로 ‘실험적 완화’를 허용하는 방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른바 ‘핀셋 완화’에 방점이 찍힌 접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등 매우 특수한 영역에 한정해 금산분리 예외 조항을 논의하자는 취지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고정된 도그마에서 벗어나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는 메시지를 반복해 공론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현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 구상은 글로벌 경쟁환경 변화와 맞물려 있다. 미국·유럽·일본 등이 막대한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을 동원해 자국 반도체 및 첨단산업 공급망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 불리함에 놓여 있다는 위기의식이 정부 내에 자리 잡고 있다. 자본집약적 산업 특성상 장기·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수인데, 국내 금융 규제가 민간 투자 여력을 묶어두고 있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SK의 초대형 투자에 시선 집중...‘정책 타이밍’ 의문 제기

논란의 중심에는 SK그룹의 반도체·AI·배터리 등 대규모 투자 계획이 있다. 그룹 오너십과 연결된 투자전략 중심축이 반도체와 배터리, 디지털 전환에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금산분리 완화 논의가 본격화되자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정책 타이밍이 지나치게 특정 그룹의 이해와 겹친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칫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여론이 ‘SK 특혜 프레임’으로 고착될 경우, 정책추진 동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룹 평판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

SK그룹은 이미 지주사·투자전문회사 체제와 IT·반도체·통신을 잇는 밸류체인을 확보하고 있어, 전략산업 펀드 구조만 갖춰지면 국내외 자본을 레버리지해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준비가 상당 부분 되어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성장펀드 등 수십조~수백조 원대 정책펀드와 민간 GP간 ‘공동운용’ 구상이 거론되면서, 향후 SK가 조성하는 전략 펀드와의 결합 가능성이 시장의 주된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금산분리를 완화한다면 그 혜택을 가장 먼저 누릴 기업이 자금력과 계열사 네트워크가 탄탄한 그룹일 수밖에 없다”며 “산업육성 논리를 내세우지만, 사실상 특정 대기업 중심의 지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단기투자 확대 효과...장기적 자본 배분 왜곡과 시스템 리스크 초래

학계 일부에서는 산업정책과 공정경쟁 정책의 경계가 희미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다. 금산분리는 외환위기와 대기업 부실 사태를 거치며 금융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고, 재벌의 내부거래·사금고화를 견제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자리 잡았다. 이를 전략산업 육성이라는 이유로 성급히 손댈 경우, 단기적으로 투자 확대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자본 배분 왜곡과 시스템 리스크 누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관련 법제화 여부를 포함한 세부안을 연내 발표할 계획인 가운데 정치권의 시각도 엇갈린다. 여당은 “열어놓고 검토하겠다”며 호응하는 분위기다. 여권은 “국가 전략산업에서 글로벌 수준의 투자 여건을 만들기 위해 규제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며, 예외 적용 대상을 명확히 한 ‘조건부 완화’론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야권과 시민단체는 “예외 조항이 일단 법에 들어가는 순간 적용 범위가 쉽게 확장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들은 “금산분리는 우리 경제의 최소한의 안전판이며, 재벌·대기업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흘러서는 안 된다”며 포괄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금산분리 완화 명암 교차...국회 논의 과정서 제동 가능성

시장 관점에서 보면 금산분리 완화는 명암이 분명하다. 긍정적으로는 대기업이 전략산업 펀드를 통해 벤처·스타트업·글로벌 M&A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어, 전체 벤처 투자 규모가 상당 폭 늘어날 수 있다. 일부 분석은 규제 완화와 정책 펀드 확대를 전제로 벤처 투자 규모가 20% 이상 증가하고,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추정도 내놓는다. 기업입장에서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R&D)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질 수 있다.

반면 부정적 시각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합이 가져올 시스템 리스크에 초점을 맞춘다. 펀드 부실이 발생할 경우 산업·금융·실물경제로 충격이 연쇄 전이될 수 있고, 대기업 사금고화·계열사 특혜 대출 등 과거 위기의 재현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정 대기업으로 자금이 쏠리는 ‘승자 독식’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장기적으로는 산업정책의 초점이 ‘특정 기업 지원’이 아니라 ‘생태계 경쟁력 제고’에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AI 산업에서 대기업 주도 대규모 투자가 핵심 동력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소재·장비·설계·소프트웨어 등 밸류체인 전반의 중소·중견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산분리 완화 논의 역시 이 관점에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가지 시나리오...금융 안정성과 공정경쟁 동시에 만족시켜야

정책 설계의 핵심 변수로는 △예외 허용 대상 산업과 기업의 범위 △출자 한도 및 기간 △이해상충 방지 및 정보 차단(차이니즈 월) 장치 △사후 모니터링 및 제재 체계 등이 꼽힌다. 규제 완화 폭과 속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산업 육성과 금융 안정성 사이의 균형점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규제 틀을 유연하게 가져가되, 시장이 수용 가능한 ‘관리 가능 범위’를 제시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향후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 AI·반도체 등 제한된 영역에서 CVC·전략산업 펀드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좁은 완화’ 시나리오다. 이 경우 SK를 포함한 일부 대기업과 금융사가 단기 수혜를 보되, 기존 은행 지분 한도 등 핵심 규제는 유지돼 시스템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통제 가능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둘째, 예외 적용 산업과 투자 대상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완화 확대’ 시나리오로, 재계는 선호하지만 정치·사회적 저항이 크고 신용평가·금융안정 지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셋째, 공정위·기재부의 신중론과 여론 부담으로 인해 제도 개선이 최소화되거나 사실상 유보되는 ‘현상 유지에 가까운 시나리오’다.​

금산분리 완화 논의는 단순히 SK그룹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 경제 체질 전환의 방향성과 직결된다. 산업혁신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방식이 ‘형평성을 해치지 않는 공정한 경쟁 환경’이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금산분리 완화가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과 생산성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정치적·경제적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부가 앞으로 내놓을 금산분리 제도 개선안은 전략산업의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동시에, 금융 안정성과 공정경쟁이라는 두 축을 어떻게 동시에 만족시킬지에 대한 실질적 해법을 담아야만 ‘특정 기업 특혜’라는 시장의 의구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