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금융계, ESG관련 조직 우후죽순 확산...성격과 기능 제각각
기존 이사회처럼 형식 치중 말아야 삼성, SK, 포스코, KB, 신한 등 선도... 현대차, 롯데, NH, 우리금융 등 가세
[ESG경제=조윤성 선임에디터] 재계에 ESG가 확산되면서 기업 별로 관련 조직이나 위원회가 봇물처럼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성격은 천차만별 이어서 자칫 ‘거수기’ 이사회처럼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4일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까지 ESG관련 위원회를 신설(개편 포함)했다고 밝힌 기업은 23개에 달한다.
각 기업별로 위상은 달라 이사회 내에 ESG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협의체를 설치해 추진 체계를 갖춘 조직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만 있는 조직 ▲이사회가 아닌 그룹 내 전담조직으로 ESG위원회가 있는 조직 ▲기타 자문위원회의 성격을 갖춘 조직 등으로 구분된다.
금융업계에서는 KB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NH농협금융지주 등 4대 금융그룹은 모두 이사회 내 ESG위원회와 그룹 내 전담조직을 갖췄다.
올해 ESG위원회를 신설한 우리금융그룹이나 NH농협금융지주에게 신한금융그룹은 벤치마킹 모델이다. 신한금융그룹은 5대 금융지주 중 처음으로 2015년 이사회 내 ‘사회책임경영위원회’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2019년에 CSSO(Chief Strategy & Sustainability Officer)를 임명하고, 2021년 그룹사 CEO 전원이 참석하는 'ESG 추진위원회'를 신설해, 기존의 'ESG 전략위원회', '그룹 ESG CSSO협의회', '그룹 지속가능경영 실무협의회' 등으로 조직의 일원화된 ESG 체계를 갖춤으로써, 올해 ESG 내재화 단계에 진입했다.
2017년부터 그룹의 CEO 및 자회사 평가에 ESG를 평가항목에 반영했으니, 올해 임원 평가에 ESG 요소를 반영하는 국내 기업들 트렌드에 비하면 꽤 빠른 편이다.
NH농협금융지주는 지난 2월 이사회 내 ‘사회가치 및 녹색금융위원회’를 신설하고, 손병용 회장 주관의 ESG 전략협의회를 설립했다. 우리금융그룹 또한 사내, 사외이사 9인으로 구성된 ESG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1월 그룹사 CEO가 참여하는 ‘그룹ESG경영협의회’를 설치했다.
KB금융그룹의 경우 지난해 3월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신설했고, 조직 내 ESG 전담조직도 마련돼 있다.
같은 금융그룹이라도 ESG 전담조직이 속한 부문이 다르다. 신한, NH농협은 ESG 전담조직이 모두 전략 파트에 속해 있다. 우리금융은 경영지원부문에 속했고, KB금융은 지주의 홍보·브랜드 총괄 내 부서로, 기존의 사회공헌문화부를 ESG전략부로 개편했다. ESG를 사업전략으로 고려하는지, 리스크 관리로 고려하는지, 기업의 평판 요소로 고려하는지를 보여준다.
삼성, SK, 포스코 등 일찌감치 전담조직 갖춰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등이 일찌감치 ESG위원회와 전담조직을 갖췄다.
삼성전자는 2017년 거버넌스위원회를 설치한 후, 올해 경영지원실 산하 지속가능경영사무국을 CEO 직속 ‘지속가능경영추진센터’로 격상했다. 사업부 단위로도 지속가능경영사무국을 설립하고, 지속가능경영협의회를 CFO 주관으로 격상시켰다.
SK 하이닉스는 2018년 3월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신설한 바 있다. 글로벌 ESG 바람이 거세지자, 지난해 9월 CEO 직속의 ESG 태스크포스를 출범한 후 연말에 이를 정규조직화시켰다. 2021년에는 CEO 주관의 월 단위 회의체 ‘ESG경영위원회’를 신설했다.
2050 탄소중립을 밝힌 포스코는 지난해 그룹 내 ESG 전담조직을 설치하고, 올해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를 신설한다. 다만, ESG 위원회에 본부장급 사내이사 3인, 사외이사 2인으로 구성 돼있으며 CEO 중심의 그룹 ESG 추진체계가 갖춰져 있지는 않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 취임후 ESG에 가속도
정의선 회장 취임 후 ESG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도 계열내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을 중심으로 이사회 내에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키로 했다.
2015년부터 투명경영위원회를 운영해온 현대차그룹은 ESG 논의를 이사회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번 개편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모두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다.
그룹 경영권 다툼 등 지배구조 이슈로 리스크가 컸던 대한항공은 지난해 8월 이사회 내 거버넌스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ESG위원회는 사외이사 3인으로 구성돼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2월 이사회 내 자문기구였던 ‘거버넌스위원회’를 이사회 산하 CSR위원회와 통합해 이사회 내 ‘거버넌스위원회’로 확대 개편했다.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위해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고, 기업의 ESG를 통합 관리하는 역할을 새롭게 도입했다.
지난해 블랙록 등 글로벌 연기금으로부터 석탄투자 관련해 수많은 지적을 받아온 한국전력은 지난해 12월 이사회 산하에 사외이사 3인으로 구성된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한전은 지난해 연말 해외 신규 석탄발전사업 추진 중단을 선언하는 등 ESG 경영에 잰걸음을 내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도 위원회 꾸려
비교적 후발주자로 ESG 조직 체계를 만든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이사회 내에 사외이사 3인으로만 구성된 ESG위원회를 꾸렸다. CFO 산하 ESG 전담조직을 신설해 올해 최초로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했다.
네이버에 비해 후발주자로 ESG 경영 깃발을 내건 카카오는 올 1월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신설하고, 김범수 의상과 사외이사 2인 등 3인으로 구성돼 있다.
EO 직속 위원회 체계도 속속 신설
이사회가 아닌 그룹 내 CEO 직속 혹은 전담 추진체계로서 ESG위원회를 신설한 곳도 많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월 그룹 CSO(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로 한국조선해양 가삼현 사장을 선임하고, ESG 실무위원회를 신설, 전 계열사의 ESG 경영을 독려하고 있다. 그룹 내 각 계열사 이사회에 ESG 관련 성과 및 이슈를 보고하는 프로세스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의 경우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로 불리는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가 따로 존재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은데, 그동안 국내에는 CSO라는 직책이 드물었는데 신한금융그룹의 박상현 부사장이 지난해, 현대중공업그룹의 가삼현 사장이 올해 각각 CSO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12월 ESG 경영목표와 현안 등에 대한 심의 의결을 담당하는 의사결정 기구인 지속가능경영위원회와 ESG경영의 컨트롤타워인 ESG사무국을 설립한 바 있다. ESG 사무국을 통해 2021년 ESG 경영활동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고, 장단기 전략 실행을 위한 로드맵을 도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홈페이지에는 CSV에 관련한 내용만 있을 뿐, 지속가능경영이나 ESG와 관련한 내용을 찾기 힘들었다.
BGF그룹은 그룹내 CEO 직속으로 ESG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에는 BGF 홍정국 대표, BGF리테일 이건준 대표와 외부 자문위원 1인을 초빙해 조직을 꾸렸다.
롯데, 임원인사 평가에도 반영
롯데화학BU의 경우 지난 1월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롯데알미늄, 롯데비피화학 등 화학계열사 등이 참여해 ‘친환경 협의체’를 구성, 2021년 ESG 경영원년으로 삼아 지속가능한 친환경 비즈니스 전략을 추구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의 경우 신동빈 회장은 ESG 경영을 강조하며, ESG 지표를 임원 인사평가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직 구성으로만 보면 ESG 추진체계의 명확한 그림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ESG위원회라는 명칭은 아니지만, 일부 ESG 역할을 하는 위원회를 지닌 조직도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2월 ‘소비자리스크관리위원회’를 신설했고, 삼양식품은 지난 2월 컴플라이언스 조직을 정비하고 감사위원회, 보상위원회를 신설해 ESG 관련 이슈도 이곳에서 담당한다.
손종원 한국ESG평가원 대표는 “기업들이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갖추는 등 정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자칫 거수기로 전락할 우려가 많다”라며 “조직 구성에 신경을 쓰기 보다는 기업의 ESG내재화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