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B 서울 세미나] ESG 정보 공시 의무화, 기업에 부담인가, 기회인가?

재계, ISSB 기준 도입 속도 조절 요구...ESG 정보 공개 '혜택' 견해도 공정한 기업가치 평가와 자금조달에 도움, "전향적으로 활용해야" 자본시장연구원, "국내 기업 중요한 정보 항목 공시율은 24%에 그쳐"

2022-10-26     이신형 기자
10월25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ISSB 위원장 및 부위원장 초청 세미나에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에마뉘엘 파버 ISSB 위원장(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SG 공시의 국제 표준을 만들고 있는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위원회(ISSB) 고위 인사들이 한국에 왔다. IFRS 재단이 올해 이사회 총회를 10월 25~27일 서울에서 열기로 하면서다. 이번 총회에는 얼키 리카넨 IFRS재단 이사회 의장, 에마뉴엘 파버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위원장, 장 폴 세르베 IOSCO(국제증권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금융위원회와 한국회계기준원은 25일 ISSB 회장과 부회장을 초청한 특별 세미나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하고, ISSB가 제정 중인 ESG 공시 표준안에 대해 중점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ESG경제>는 이날 세미나 내용과 그 의미를 정리해 보도한다.  

[ESG경제=이신형기자] ESG 공시가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볼멘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능동적인 ESG 정보 공개가 오히려 공정한 기업가치 평가와 자금조달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가 제기됐다.

25일 열린 ISSB 위원장과 부위원장 초청 세미나에서 패널 토론에 참석한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이 실무적으로 (ESG 공시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는데 기업의 인센티브 측면에서 생각하고 싶다”며 “기업이 스스로 미래지향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위험과 기회 요인을 파악해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 이를 바탕으로 공정한 가치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조 연설에 이어 패널 토론에 참여한 에마뉘엘 파버 ISSB 위원장도 기업 CFO로 일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상장기업은 (ESG) 정보 제공을 통해 (더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기업의 사례를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2000년대 초반 미국 금융당국이 기후 관련 리스크 공시를 권고했고 미국 기업의 자발적인 공시가 이어지자 학계가 기업의 자발적인 기후 공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 공시를 통해 자본시장과 소통하면서 전략적 관점에서 기후 리스크에 관한 위험과 대응을 명확하게 전달하면 이런 공시를 하는 기업과 안 하는 기업이 차별화된다”며 “결국 (공시를 하는 기업이) 자본조달 측면에서 이익을 얻게 되고 기업은 자발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ESG경제>와 통화에서 “(ESG) 정보 공개를 통해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기회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기업은 불확실성 해소로 주가 움직임이 안정적”이라며 “덜 위험한 주가로 인식이 되면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결국 기업의 “자기자본조달 비용이 줄어든다”며 “(ESG 공시에)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비용뿐 아니라 혜택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ESG 정보 공개 수준은 아직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총계 2조원 이상 국내 상장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자본시장연구원의 ESG 공시 현황 조사에 따르면 블룸버그 ESG 공개점수(Bloomberg ESG Disclosure Score)의 ESG 공시 항목에서 국내 기업이 공시한 항목은 46%에 그쳤다.

중요한 정보 항목 중 이들 국내 기업이 공시한 항목은 24%로 더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국내 주요기업 ISSB 기준 도입 속도조절 요구...법적 책임에 부담 느껴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ISSB 공시 기준 국내 도입에 대한 주요 기업의 의견을 청취할 결과 “기업부담을 최소화하며 도입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주요 기업 중 37%가 충분한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고 36%는 점진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지금부터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인 기업은 27%에 불과했다.

또 주요 기업의 46%는 ISSB 공시 기준이 제시하는 공시 내용과 범위를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을, 33%는 리스크를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일괄 도입이 필요하다는 기업은 21%에 그쳤다.

기업들은 또 ESG 공시를 사업보고서에 포함시키고 공시 시기도 일치시켜야 한다는 ISSB 공시 초안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대한상의는 밝혔다.

사업보고서에 포함시켜 공시할 경우 공시 내용에 대한 법적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의 송영훈 유가증권시장본부 본부장보는 “우리나라에서는 (회계연도가 끝난 후) 3개월 안에 모든 걸 공시해야 하는데 사업보고서는 행정상, 민사상, 형사상 책임이 막중하다”며 “사업보고서로 지속가능성(ESG) 공시를 끌어오면 기업들이 삼중고를 겪어야 한다”고 말했다.

법적 책임도 부담스럽고 회계연도가 끝난 후 3개월 안에 사업보고서와 함께 ESG 공시까지 끝내는 것도 버겁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ESG 관련된 비재무정보의 범위가 계속 확장되고 있다”며 “이런 정보는 확장적인 게 특징이고 국제 기준에서 예시를 들 수 있지만 그걸로 다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미국의 경우 (ESG 정보의) 중대성 관련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 시나리오 분석 어려워

기후변화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공시하도록 한 ISSB의 요구에 관해서도 공시 내용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송 본부장보는 “장기적인 시나리오를 상정해 중대성 관점에서 공시하는 게 어렵다”며 “중대성 판단이 어렵고 정보의 범위가 계속 확장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파버 위원장은 기업은 이미 재무적인 시나리오 분석을 하고 있다며 기후 관련 시나리오 분석도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나 환율 등에 관한 시나리오 분석을 예로 들며 “기업이 사업을 영위하려면 항상 시나리오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후 시나리오 분석은 5~10년 또는 20년 후에 어떤 상황에서 리스크와 기회가 존재하는데 파악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