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연말 인사 및 조직개편, 임직원 ESG 내재화에 기여
직급 단순화와 소통 강화...ESG경영 자발적 참여 분위기 유연 근무환경 조성 위해 공유·거점 오피스 구축도 활발
[ESG경제=조윤성 선임에디터] 주요 대기업들이 임직원간 소통 강화를 위한 직급체계 전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유연한 근무환경을 구축해 임원과 직원간 벽을 허무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은 직급표기 단순화와 공유·거점 오피스 확대, 근무환경 개선 등을 통해 행복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인다. 이런 움직임은 ESG경영을 접목한 사회적 가치 창출과 아울러 임직원의 ESG 자발성 제고와 내재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올 연말 조직개편 및 직급 조정을 통해 임원의 경우 ‘사장~부사장’까지만 직급을 표기하고 이하의 ‘전무~상무~이사’ 등의 직급은 간소화하는 식의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장을 뺀 나머지 임원을 하나의 호칭으로 묶는 방식으로 직급을 표기하기도 한다.
이미 임원의 첫 관문인 ‘이사’나 ‘상무’ 등의 직급을 없애고 ‘담당’ ‘경영리더’ 등으로 개편한 경우가 많다. 일반직원의 경우도 부장이나 차장, 과장, 대리 등의 직급을 ‘매니저’로 통일하거나 이름 뒤에 ‘님’만 붙이는 경우도 있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이 상무, 전무, 부사장 직급에 대해 지난 2019년 7월부터 임원직급을 폐지하고 부사장이라는 단일 직급으로 통일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들어서는 부사장 중 팀장급은 ‘담당’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부사장’ 직급에서 내부적으로 암묵적인 구별이 필요해 마련된 직급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올해 한화그룹 신규임원 인사에서는 아예 직급표기가 빠졌다. 과거 기업의 임원 인사발표에는 일반적으로 ‘직급 이름’ 등으로 표기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올해 한화그룹 인사에서는 직급을 없애고 승진자 이름만 표기됐다. 한화 측은 “연공서열을 없애고 직무 적합도나 능력에 따른 인사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신규 임원 승진자 명단만 발표하고 직급은 없앴다”고 설명했다.
한화는지난해 7월 임원 직급을 기존 5단계(상무보·상무·전무·부사장·사장)에서 4단계(상무·전무·부사장·사장)로 줄인 바 있다. 이제는 임원 직급 자체를 없애고 실장·본부장·담당과 같은 직책으로 구분하기로 했다.
손종원 한국ESG평가원 대표는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임원과 직원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직급을 아예 없애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직급은 없애고 직책으로 구분해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만들기 위해 직급파괴를 가속화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CJ그룹도 올해 임원 인사를 통해 새로 승진한 임원 명단만 발표했다. 대표이사로 발탁된 임원만 발표했다. 지난해 말 임원 직급을 통합한 CJ는 근속연수와 관계없이 업무능력과 성과중심으로 평가하는 인사체계를 확립했다.
임원 직급 단순화와 함께 주요 기업들은 인사 시기도 수시로 바꾸거나 4분기 초에 하는 경우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한화, CJ, DL, 신세계 등이 그런 사례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4월 임원 인사제도를 개편했다. 이를 통해 3세 경영에 돌입한 정의선 회장의 경영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사대우, 이사, 상무까지 임원 직급 체계를 상무로 통합했다. 이에 기존 사장 이하 6단계 직급을 4단계로 축소했다(사장-부사장-전무-상무). 직급단순화 작업에 이어 연말에 실시되는 정기 임원인사를 경영환경 및 사업전략 변화와 연계한 연중 수시인사 체계로 전환했다.
현대차그룹의 조직 및 사업체계 개편은 외부 환경변화에 더욱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조직의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의 변화 등을 이끌기 위한 차원으로 읽힌다.
실제로 현대차그룹 내 주요 계열사의 수시 임원인사도 해 왔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인사에서는 디자인총괄인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을 최고창조책임자(CCO)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인사만 소폭 단행했다.
근무환경 개선도 잰걸음... 자율좌석제로 사무실 공기 일신
주요 대기업들은 직급 단순화를 통한 연공서열 파괴에 이어 근무환경 개편에도 속속 나서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근무자리가 비는 경우가 많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속속 공유오피스 형태로 바꾸고 있다. 팀 단위 고정 좌석이 아니라 매일 옆자리에 앉는 직원이 바뀌는 방식이다. 이러한 사무공간 혁신은 조직을 ‘애자일’(Agile) 형태로 개편한 것과도 맞물려 있다. 애자일 형태의 조직은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소규모 팀을 구성해 민첩하게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SK의 배터리전문 기업인 SK온의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해 앱을 통해 그날 자신이 근무할 자리를 예약한다. 일반 직원뿐 아니라 팀장급도 고정자리는 없다. 정해진 자리가 없어 각자 짐은 개인사물함에 보관한다. 사흘 이상 같은 자리나 같은 층에 앉을 수가 없다. 똑같은 사람을 만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개인 짐을 쌓아둔 과거와 달리 자율좌석제로 바뀌면서 출장이나 외근을 나가는 직원들의 공석을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공간활용에도 장점이 많다. 출근한 직원들은 각자의 짐을 개인사물함에 넣어두고 노트북 하나로 업무를 본다.
올해 4월에 오픈한 SK텔레콤의 거점형 업무공간 ‘스피어(Sphere)’가 구성원의 업무 효율과 행복감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스피어 이용 경험이 있는 구성원 중 과반수가 전반적인 업무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있었다고 반응했다. 거점오피스 운영 6개월 동안 절약한 출퇴근 시간은 누적 2만1459시간에 달했다. 출퇴근 시간 감소에 따라 창출한 사회적 가치는 약 8억2400만원에 달한다는게 SK텔레콤의 분석이다.
SK텔레콤은 기존 사무실의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구성원의 업무 효율과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7월에는 SK스퀘어, SK하이닉스 등 SK ICT 패밀리가 함께 쓸 수 있는 거점형 업무공간을 서울 광진구로 확대하는 등 일 문화 혁신을 전파하고 있다.
전체 거점오피스 이용률(거점오피스 내 좌석 중 사용 중인 좌석의 비율)은 평균 약 75% 정도로 구성원들이 꾸준히 거점오피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4개 거점오피스를 1회 이상 방문한 누적 방문자수는 2170명에 달하는 등 거점 오피스가 새로운 근무 방식으로 안착했다. 특히 재방문율이 73.7%에 달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재계 관계자는 “연공서열 타파에 이어 직급 파괴, 근무환경 개편까지 주요 기업의 소통문화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며 “MZ세대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근간으로 하는 ESG경영 문화가 자리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