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는 누가 평가하나?...2021년 주총이 남긴 숙제
ISS 등 외국계 의결권자문사들, 너무 기계적으로 평가. 사외이사 역할 커진만큼 책임도 막중...엄정한 ESG평가가 해법.
[ESG경제=이태호 전문기자] 12월 결산 상장회사들의 2021년 주총시즌이 끝났다. 올 주총의 화두는 단연 ESG와 사외이사였다.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ESG경영을 표방한 가운데 ESG위원회 등 조직을 새로 두기로 했고, 여기서 활동할 사외이사 적임자를 찾기에 분주했다.
사외이사에 대한 인식 변화가 뚜렷하다. 사외이사를 더 이상 이사회의 과반수 요건 충족 및 안건 통과 거수기로 봐선 안된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회사인 ISS는 올 주총에서 사외이사 선임에 대한 찬반 의견을 부쩍 늘렸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의 사외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무더기로 반대표를 던지라는 의견을 냈다.
최고경영자(CEO)의 위법 행위를 효과적으로 견제·감시하지 못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해당 기업들은 한국적 경영 풍토를 무시한 채 기계적으로 주총의안을 분석했다고 반박했고, 의안들은 주총을 통과했다.
이번 주총은 사외이사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앞으로 사외이사들의 선임 과정과 업무 수행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것이 사외이사에 대한 평가 문제다. 사외이사의 중요한 소임이 경영진을 견제·감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외이사는 과연 누가 견제·감시할 것인가. 사외이사의 역할이 커지는만큼 권력화의 우려 또한 커지는 상황에서 제기되는 의문이다.
막중한 사외이사의 역할
사외이사라는 제도는 사내이사들 만으로는 회사 경영진에 대해 제대로 된 견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다. 회사의 조직에 속하지 않는 사외이사가 경영진의 대리인 문제를 통제하는 안전 장치인 셈이다. 사외이사의 역할은 날로 복잡해지는 글로벌 및 ESG 경영환경을 맞아 매우 중요해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외이사 제도는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사의 상법상 기능은 경영진에 대한 감독, 최고경영자 선임·해임·평가,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 경영진에 대한 조언, 경영진의 수탁책임 결과보고에 대한 확인 등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회사의 이사회 안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반대 없이 통과된다. 이는 사외이사들이 대주주로부터 거수기 역할을 요구받기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지만, 전문성 및 책임감 결여로 스스로 대충 일하며 보수만 챙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외이사 추천 프로세스의 문제
무엇보다 사외이사 추천 프로세스 상의 문제가 크다. 사외이사 후보의 추천은 독립성, 전문성, 활동성 등의 자질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선 기업 오너와의 친분이나 관계가 작용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또한 관료 출신자들을 중심으로 대정부 로비나 방패 역할을 하는 게 주요 선정 기준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공기업이나 금융그룹 등은 이사 추천위원회를 사외이사로만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사외이사들 간의 연고와 친분 등이 작용한다. 그래서 사외이사로 일단 선임되면 중도에 그만 두는 일 없이 계속해서 5~6년의 기간을 꽉 채우며 ‘셀프 연임’을 거듭한다. 그 중에는 이사회 출석을 거의 하지 않고 발언 조차 없는 사외이사도 적지않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KB금융지주나 현대자동차그룹 등은 일반주주들이 주주제안 방식으로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하지만 주주 변동이 워낙 잦고, 주주들 스스로 권리를 행사할 준비가 아직 돼 있지 않아 갈 길은 아직 너무 먼 상황이다.
ESG 경영과 이사회 평가
ESG경영은 이사회 기능과 사외이사 역할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선 무엇보다 이사회에 대한 올바른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사회가 장기적 주주가치를 위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를 살펴 이사회의 적정성을 평가해야 한다.
누군가 작심하고 나서면 개별 사외이사들의 주요 이력과 업무수행 능력, 독립성, 활동성 등을 평가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외이사들이 제대로 일하는 지는 해당 기업의 내부 조직원들이 더 잘 알기도 한다. 사내외 주요 인사들을 인터뷰하면 매우 유용한 정성평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정부가 공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공기업 평가모델도 그 역사가 깊은 만큼 잘 변형하여 활용할만 하다.
ESG평가기관들의 역할이 그만큼 막중해졌다. 이사회 구성 비율과 참석률 등 해묵은 형식적 지표만 갖고는 현실감있는 평가가 나올 수 없다. 평가기관들은 실제 이사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탐문해 엄정한 평가 결과를 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계적인 평가에 머물면 ISS 처럼 엉뚱한 의견 내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평가기관들이 사명감을 갖고 제 역할을 해야 기업의 ESG경영도 내실있게 자리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