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가장 심각한 분야는 식품업계?
환경단체 보고서, 육류와 낙농 등 과장광고 가장 많아 EC, 22일부터 제품라벨,광고의 그린워싱 단속 강화 유럽 수출품에 '친환경' 문구 마구 쓰면 큰코 다칠 듯
[ESG경제=이진원 기자] 2년 전 국내 한 화장품 회사가 종이 용기 화장품을 썼다고 광고했지만 사실은 그 안에 플라스틱이 함유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다. 문제의 용기가 기존 제품 대비 플라스틱을 52% 가까이 줄이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친환경성을 과장한 홍보는 '그린워싱' 비판을 면치 못했다.
앞으로 유럽에서는 이런 식으로 친환경 제품이 아닌데도 라벨 등에 친환경 제품인 것처럼 과장 광고를 했다가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22일(현지시간) 이런 식의 그린워싱을 금지할 목적으로 '그린워싱 방지 이니셔티브'를 마련해 공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린워싱은 기업이나 단체가 환경을 저해하는 상품을 만들면서도 허위·과장 광고로 지속가능, 친환경 상품으로 포장해 소비자를 속이고 부당이득을 챙기는 행위를 말한다.
식품업계는 그린워싱 본거지
그런데 그린워싱 방지 이니셔티브 공표를 앞두고 네덜란드 친환경단체인 체인징마켓스재단(Changing Markets Foundation)이 21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식품업계에 그린워싱이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해 보니 식품 라벨과 광고를 통해 내세우는 친환경 제품 주장 중 다수가 과장됐거나 충분한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체인징마켓스는 지난 1년 동안 식품 라벨과 홍보자료에서 잘못된 친환경 주장 사례 53건을 찾아냈다. 그 중 과장 광고가 가장 심한 곳은 식품 관련 탄소배출에서 큰 비중의 제품을 생산하는 육류와 낙농기업들이었다. 식품업계는 지구촌 배출 탄소의 약 3분의 1을 배출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배출량의 상당량이 가축을 키우거나 먹이는 과정에서 나온다.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식품업계 그린워싱 사례들
체인징마켓스에 따르면 식품업계의 그린워싱 사례는 이렇다.
벨기에의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nheuser-Busch InBev)의 미국 자회사는 한국 내에도 출시한 ‘버드 라이트 넥스트(Bud Light Nex)’ 맥주를 ‘기후 중립 인증(Climate Neutral Certified)’ 맥주라며 광고했다. 그런데 체인징마켓스의 조사 결과 이런 인증을 받게 된 게 회사가 탄소배출량을 직접 감축해서가 아니라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서 받은 것뿐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탄소배출권은 지구온난화를 유발하거나 이를 가중시키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할당량 대비 탄소 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배출권을 구매할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스웨덴 스타트업 볼타 그린테크(Volta Greentech)가 선보인 브랜드 롬(Lome)이다. 볼타는 작년 식료품 체인점인 쿱 그룹(Coop Group)과 손잡고 롬을 출시하면서 ‘탄소 감축 고기’ 내지 ‘저메탄 고기’라고 광고했다.
소고기는 본래 상당히 탄소집약적인 식품이라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소비자들의 불안을 덜기 위한 목적에서 이런 식으로 광고한 것으로 보인다. 소를 키우고 먹이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땅이 필요하고, 소가 트림을 할 때도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 메탄이 배출된다.
볼타는 소에게 해초를 먹여 이런 메탄 배출량을 80%나 줄였다고 광고했다. 하지만 체인징마켓스의 조사 결과 이런 주장은 불과 3개월 동안만 소에게 해초를 먹이는 ‘시범 프로젝트’를 실시한 후 내놓은 주장이라 80%를 줄일 수 있다는 광고는 ‘그린워싱’으로 분류됐다.
소비자들의 친환경 제품 관심을 악용한 셈
이처럼 기업들이 추후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서까지 친환경 제품임을 내세우는 이유는 다름 아닌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 반응이 좋아 매출 신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조사회사인 유고브(YouGov)가 영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42%는 ‘탄소 중립’ 라벨이 없는 제품보다 있는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었다. 또 29%는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그런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체인징마켓스의 캠페인 총괄이자 보고서 공저자인 누사 어반식은 블룸버그에 “식품을 ‘탄소 중립적’이라거나 ‘기후에 긍정적’이라고 묘사하는 식으로 우리가 찾아낸 과장된 주장의 80% 이상이 기후와 관련 있었다”며 이를 단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EC가 내놓을 그린워싱 근절 이니셔티브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친환경 주장 시 따라야 할 지침(Green Claims Directive)’이다. 이 지침이 공표될 경우 기업들은 그들이 파는 제품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보다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앞으로 EU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은 그들이 파는 제품과 서비스가 기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까지도 적시해야 한다. 또한 EU 회원국은 친환경 제품임을 광고하는 기업들에게 그러한 광고를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