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증권인수 업무의 탄소배출량 어찌 계산할꼬?
지난해 나올 예정이었던 글로벌 기준 제정 계속 미뤄져 100% 금융사 탄소배출량 인정부터 17%까지 의견 다양 ISSB는 증권인수업무 관련 탄소 배출 공시 요구안 삭제
[ESG경제=이신형기자] 금융기관의 증권인수업무(underwriting) 관련 탄소 배출량(facilitated emission)을 자사의 탄소배출량에 반영하는 문제를 놓고 국제적으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금융기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하고 공시하는 기준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된 탄소회계금융협회(PCAF, Partnership for Carbon Accounting Financials)는 당초 지난해까지 증권인수 업무 관련 탄소배출량 산정 기준을 만들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기구에 참여하는 금융기관 간 이견이 팽팽해 아직까지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탄소회계금융협회는 넷제로자산운용동맹(NZAM) 같은 금융기관 단체와 ABN암로, 모건스탠리 등 유수의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운영을 맡고 3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기구다.
금융업 탄소배출 기준 미흡해 엿가락 수치
로이터통신은 24일 4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증권인수업무를 의뢰한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배출량 중 어느 정도를 인수업무를 맡은 금융기관의 배출량으로 산정해야 하는지를 놓고 이견이 상당해 협의가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인수업무를 맡은 금융사와 이들이 발행을 도운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 간 탄소 배분이 쟁점이다.
탄소 감축을 약속한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탄소 배출 기업에 투자했거나 대출을 제공하는 경우에만 자사의 탄소배출로 인정한다. 이를 금융배출(financed emission)이라 부른다. 금융기관의 경우 제조업과 달리 영업활동을 통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많지 않다. 따라서 스코프3 배출량에 해당하는 금융배출과, 증권인수 업무와 관련된 탄소배출의 측정과 공시가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형 금융사가 증권인수 업무 관련 탄소배출(facilitated emission)을 자사의 탄소배출량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대다수 금융기관의 탄소 감축 약속은 반쪽짜리인 셈이다. 비영리기구 셰어액션(ShareAction)이 43개 은행의 탄소 배출량을 추적한 결과 이중 6개 은행만이 증권인수 업무 관련 배출량을 자사의 배출량에 반영했다. 이런 가운데, 주요 금융기관들은 증권인수 업무를 통해 화석연료 기업 등 탄소 배출 기업에 막대한 자금이 향하도록 했다.
셰어액션(ShareAction)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사이에 유럽의 상위 25개 은행이 석유와 가스 생산을 늘린 상위 50대 기업에 제공한 자금의 57%는 증권인수 업무를 통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자본시장을 지향하는 다른 비영리기구 세레스(Ceres)의 단 사카르디는 로이터 기자에게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며 “이 때 인수업무를 맡은 금융사는 대출을 해주는 것보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볼 수 있으나,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일부 금융사, 100% 금융사 배출량으로 책정 주장
로이터에 따르면 증권인수 업무 관련 탄소 배출량 평가 실무그룹에 참여하는 금융기관 중 기후행동 단체의 지지를 받는 냇웨스트는 증권인수 업무와 관련된 탄소 배출을 100% 금융기관 탄소배출로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냇웨스트는 바젤위원회가 제시한 증권인수 업무 관련 탄소배출량의 17%를 인수업무를 맡은 금융기관의 탄소 배출량으로 책정하자는 바젤위원회의 제안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바젤위원회는 1974년 설립된 국제기구로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을 제시하는 등 규제 정책과 시장 리스크 측정 체계 등을 개발해 왔다.
냇웨스트의 토니아 플라코트니우크 기후 및 ESG자본시장 담당 부사장은 로이터 기자에게 17%만 인수업무를 맡은 금융기관의 탄소배출량으로 책정하면 “미스매치(mismatch)의 위험이 있다”며 주식이나 채권을 매수하는 투자자들은 나머지 배출량을 자사의 배출량으로 책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증권인수 업무를 맡은 기관의 탄소배출량을 평가하는데 더 많은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출과 달리 채권이나 주식인수업무를 맡는 것으로는 대출을 제공하는 것보다 금융기관이 고객사를 변화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한 대형은행 관계자는 “100%는 과하고 중간 어느 지점에서 타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탄소회계금융협회의 에반 브루너 대변인은 “최종적인 평가 방식을 도출하기 위해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으나, 아직 공개할 만한 진전은 없다고 덧붙였다.
로이터에 따르면 바클레이즈를 포함한 일부 은행은 이미 자체 평가 기준을 만들어 적용한다. 바클레이즈는 증권인수 업무 관련 탄소배출량의 33%를 자사의 배출량으로 책정한다.
한편 국제적으로 통용될만한 ESG공시 기준을 제정하는 국제회계기준재단(ISSB)은 금융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했으나, 증권인수 업무 관련 배출량 공시 의무는 삭제했다. ISSB는 현재 증권인수업부 관련 탄소 배출량을 측정할 명확한 기준이 없어 이에 대한 공시를 의무화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