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산업 투자 문제로 '넷제로 투자자 연합' 내홍
일부 회원사, "화석연료 산업 투자 제한 느슨하다" 탈퇴 검토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연합ㆍ탄소회계금융연합도 마찬가지
[ESG경제=이신형 기자] 운용자산 규모가 총 11조 달러(약 1경4465조원)에 달하는 기관투자자 연합체 '넷제로 투자자연합(NZAIO)'이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 문제를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다른 금융기관 단체도 마찬가지다. 넷제로 투자자연합은 2050년까지 투자 대상 자산의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여 금융이니셔티브와 굴지의 기관투자자들이 설립한 단체다. 아비바와 악사, 다이이치 등 생명보험사와 미 최대의 연기금 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Calpers‧캘퍼스) 같은 연기금을 포함해 85개 기관투자자가 가입해 있다.
로이터통신의 지난달 31일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이 넷제로 투자자연합 탈퇴를 고려하고 있다.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 제한이 너무 느슨하다는 불만에서다. 넷제로 투자자연합은 지난주 발표한 화석연료 기업 투자에 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회원사들이 "더 이상 새로운 석유와 가스 탐사 및 생산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언급이 나왔다.
하지만 넷제로 투자자연합이 화석연료 산업 투자에 대해 더 단호해야 한다고 아카데미커펜션은 주장한다. 주식,채권 투자 대상을 "새로 석유나 가스 탐사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으로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투자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정도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연기금 관계자는 “모든 넷제로 투자자연합 회원사가 내일부터 주요 정유사의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석유와 가스는 지구온난화 1.5도 목표와 양립할 수 없다는 명확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타어자산운용(Gothaer)의 도리스 키루이 ESG 담당 선임 펀드매니저는 넷제로 투자자연합의 입장문을 지지한다면서도 "일부 회원사가 원하는 만큼 메시지가 단호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더 다양한 정치적 배경과 국적을 가진 회원사가 늘어나다 보니 메시지 내용 합의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군터 탈린저 넷제로 투자자연합 회장 겸 알리안츠생명 이사는, 이 단체의 입장문이 모든 회원사가 동의할만한 “최소한의 기준(minimum standard)”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GFANZ 등도 마찬가지
전 영란은행 총재 마크 카니 유엔 기후특사가 이끄는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연합(GFANZ)’은 당초 유엔의 온실가스 감축 캠페인에 모든 회원사가 서명하도록 요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로이터에 따르면 넷제로 금융연합은 내부 반발로 결국 지난해 10월 이런 요구를 철회했다.
넷제로금융연합은 2021년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결성된 단체로 투자 대상 자산의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삼는다.
금융기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하고 공시하는 기준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탄소회계금융협회((PCAF, Partnership for Carbon Accounting Financials)는 당초 지난해 기준을 제정,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로이터에 따르면 이 기구에 참여하는 금융기관 사이의 이견이 팽팽해 아직까지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증권인수 업무를 의뢰한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배출량 중 어느 정도를 인수업무를 맡은 금융기관의 배출량으로 산정해야 하는지를 놓고 이견이 상당하다. 인수업무를 맡은 금융사와 이들이 발행을 도운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 간 탄소 배분이 쟁점이다.
탄소회계금융협회는 넷제로자산운용동맹(NZAM) 같은 금융기관 단체와 ABN암로, 모건스탠리 등 유수의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운영을 맡고 300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기구다.
이런 가운데 미 공화당의 반ESG 공세도 탄소중립을 선언한 금융기관 단체의 내부 갈등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공화당의 반ESG 공세에 부담을 느낀 뱅가드가 ‘넷제로 자산운용(Net Zero Asset Managers, NZAM)’ 이니셔티브 탈퇴를 선언했다. 뱅가드는 블랙록에 이어 자산규모 세계 2위의 자산운용사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벤치마크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를 주로 운용하는 뱅가드는 기후변화와 전면전을 치루겠다는 ‘넷제로 자산운용’ 이니셔티브의 약속이 개별 자산운용사들 운신의 폭을 너무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2020년 12월 설립된 ‘넷제로 자산운용’은 블랙록과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 JP모건 자산운용, 피델리티, 핌코 등 유수의 자산운용사들이 가입한 이니셔티브(원칙 또는 계획의 합의체)로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약속했다. 이 기구에 가입한 291개사의 자산규모는 지난달 현재 66조 달러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