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유전자 변형 주키니 호박 파장...가공식품 전반으로 확산
볶음밥 파스타 된장찌개 등 가공식품 판매 중단 잇따라 금지 LMO 종자 8년간 유통·재배..."생태계 교란 우려도"
[ESG경제=권은중 기자] 국내 미승인 유전자 변형(LMO) 주키니 호박(돼지호박)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가 주키니 호박 종자의 일부가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 변형 생물체로 확인됐다며 주키니 호박 출하를 지난달 26일 정지시킨데 이어 이달 7, 10, 12일 시판 가공제품에서 잇따라 미승인 유전자 호박이 검출됐다며 관련 제품 회수에 나선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주키니 호박을 원료로 한 가공식품을 전수조사해, 이 가운데 27개 제품에 유전자 변형 주키니 호박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문제의 호박이 들어간 가공식품은 중소업체 제품은 물론이고 대상·오뚜기 등 대기업 제품도 포함됐다. 또 볶음밥, 청국장, 파스타, 수제비, 칼국수 등 거의 모든 종류의 가공식품을 망라했다. (대상 리스트는 식약처 홈페이지 www.foodsafetykorea.go.kr 참조)
식약처는 미승인 유전자변형 주키니 호박(돼지호박)을 원료로 만든 가공식품 9개를 12일 확인해 판매를 차단하고 관할기관에 회수·폐기를 요청했다. 앞서 10일에도 식약처는 15개 가공식품에서 유전자 변형 주키니가 발견됐다고 그 리스트를 밝혔다. 앞서 7일에는 3개 제품에서 미승인 주키니 호박 유전자가 검출돼 압류 후 회수·폐기를 요청한 바 있다. 식약처는 소비자가 이들 제품을 구입하려고 할 경우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인식할 때 판매가 차단되도록 일단 조처했다.
식약처는 지난달 27일부터 이 호박을 원료로 쓰는 234개 식품 제조회사를 조사했다. 이 가운데 유통·소비 기한이 남은 106개사 200개 제품을 수거해 검사했다. 또 가공되지 않고 유통 중이던 주키니 호박 원물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달 초까지 회수했다.
이번 주키니 호박 파동은 국립종자원이 올해부터 국내에서 신품종 등록을 위해 출원된 주키니 종자에 대해 LMO검사를 실시하면서 시작됐다. 문제의 주키니 종자는 국내 한 기업이 미국에서 승인된 종자를 수입해 국내 검역 절차를 밟지 않고 육종해 판매한 사실이 국립종자원 조사 결과로 확인됐다.
이에 국립종자원은 주키니 호박 종자 121종과 애호박 종자 126종 전체에 대해 LMO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해당 기업의 주키니 호박 종자 2종이 LMO로 확인됐다. 문제가 된 주키니 호박 LMO 종자 2종은 2015년부터 최근까지 유통된 것으로 파악됐다. 애호박 종자에서는 LMO가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달 말 국무조정실,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축산검역본부, 국립종자원 등 관계기관 합동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신속 추진하기로 했다. 또 외국에서 LMO가 개발·유통되고 있는 30여 개 농산물 품목의 종자 전체에 대해 LMO 검사를 실시하고 LMO가 검출되는 경우 관련 법률에 따라 판매 금지·폐기할 예정이다.
‘LMO 검역 구멍’ 비판 면키 어려워
하지만 한국에서 승인이나 위해성 심사 없이 해당 호박이 2015년부터 유통됐다는 점 때문에 정부 당국의 수입종자 검역과 안전성 점검 절차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또 정부가 신속 조치를 약속한 것과 달리 LMO 주키니 호박을 쓴 가공 제품이 잇따라 나오는 점도 우려된다. 또 주키니 호박을 단순 호박으로 표시한 경우도 있어 관련된 가공 식품 리스트 발표와 판매 차단 등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좀더 지속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대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하여 새롭게 조합된 유전물질을 포함하는 생물체”라는 점에서 LMO(Living Modified Organism)는 우리에게 익숙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와 같은 뜻이다.
GMO는 갈아놓은 전분이나 사료처럼 가공품이나 싹을 틔울 수 없는 식품을 의미한다. 반면 LMO는 주키니 호박 종자처럼 싹을 틔울 수 있는 종자나 농산물을 뜻한다. 따라서 GMO는 LMO를 포괄하는 넓은 범주로 LMO 및 LMO를 써서 제조·가공한 것까지 포함한다.
주키니 호박 LMO는 종자여서 싹을 틔워 생식 또는 번식하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의 우려가 있다. 이 호박이 2015년부터 재배·유통돼 LMO 주키니 생태계로의 확산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는 국내 유통된 LMO 주키니 호박 종자이 안전하다고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동식물검역국(APHIS) 이나 캐나다 보건부(Health Canada) 등은 해당 LMO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며,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일반 호박과 같은 수준으로 본다는 것이 그 근거다.
하지만 전문가과 환경운동 단체는 인공 유전자변형 과정에서 유전자간 예측 불가능한 상호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를 섭취한 인류와 동물에게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칠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GMO반대전국행동·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환경농업단체연합회·전국먹거리연대 등 GMO 반대 농민·시민사회 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GMO 주키니호박이 시중에 8년간 유통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문제가 된 종묘회사의 명칭과 호박 품종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이로 인해) 현장 농민과 유통시설, 급식시설 등이 자체적으로 GMO 주키니 호박을 격리할 골든타임을 놓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에 ▶GMO 주키니호박 유통 사건의 책임성 있는 해결 ▶GMO 주키니호박 관련 정보의 투명 공개 ▶책임자 문책 및 농민·소비자에 대한 보상대책 수립 ▶GMO 유통 발생에 대한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