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약속 어겼다!”...그린피스, ECB 정조준 비판
ECB 오염 배출 기업 회사채 매입 지적 친환경 기업 채권 매입 중단도 비판 그린피스 "ECB는 파리협정 위반 중"
[ESG경제=이진원 기자]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유럽중앙은행(ECB)이 기후 변화와의 싸움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ECB가 친환경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꾸미겠다고 약속해 놓고서는 알고 보니 오염 배출이 심한 기업들의 채권도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린피스는 23일 영국 3개 대학과 공동으로 이 같은 문제를 분석해 발표한 ‘깨어진 약속: 파리협정과 간극 벌이는 ECB(Broken Promises: The ECB’s Widening Paris Gap)‘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ECB가 즉시 문제의 회사채를 매각하는 등 ECB가 채권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린피스는 ECB가 만기 도래하는 채권 재투자 명목으로 매입한 녹색 채권의 약 23%는 화석연료 기업이 발행한 채권(총 10곳)이고, 다른 탄소 집약적 기업 10곳의 채권도 추가로 매입(녹색채권 발행 금액의 30%)한 것으로 추산했다.
친환경 기업 채권 매입 중단도 비판
그린피스는 ECB가 인플레이션 급등을 우려한 나머지 작년부터 시작한 '친환경' 기업들의 채권 매입을 이번 달 사실상 중단한 점도 문제 삼았다.
ECB는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 수익금을 친환경 채권 발행 기업에 재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더 이상 수익금을 재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린피스는 보고서에서 이는 유로존 중앙은행인 ECB가 각국이 지구 온도 상승을 억제하기로 한 약속인 파리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린피스는 "ECB는 불과 1년 만에 기후 약속을 깨버렸다“면서 "ECB는 기후 성과가 부진한 기업의 채권을 매각하고 기후 성과가 양호한 기업의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그린피스는 보고서에서 수익의 절반을 화석 연료에서 얻는 독일 유틸리티 회사 에온(E.ON)과 전력의 40% 가까이를 석탄을 사용해 생산한다고 밝힌 에너지 그룹 EnBW가 발행한 채권을 ECB가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즉시 시정이 필요한 대표적인 ‘우려’ 사례로 꼽았다.
독일은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산 파이프 가스 수입이 급격히 줄자 친환경 화석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 인프라 건설을 가속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재는 이 계획을 축소하고 있다.
그린피스, 과거 ECB 그린워싱 노출 위험 지적
그린피스가 ECB를 비판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린피스는 과거의 탄소 배출량과 감축 목표나 공시 등을 기준으로 기업의 환경 성과를 평가하는 ECB의 현행 시스템이 실제보다 친환경 활동을 부풀리는 그린워싱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비판해왔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다니엘라 가버 웨스트 잉글랜드 대학교 교수는 로이터 통신에 "ECB가 기후 중립성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이상 LNG 투자를 지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버와 공동 저자들은 기업의 절대 탄소 배출량, 기후 프로필, 화석연료 사용 확대 계획 등에 대한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서 봤을 때 ECB의 채권 매입은 ECB 자체 기준에도 못 미칠 만큼 훨씬 덜 친환경적이었다고 추정한다.
비영리 환경연구단체인 인류세사채연구소(AFII) 분석가들은 앞서 ECB가 500억 유로(약 70조 원) 상당의 오염 기업 채권만 매각해도 회사채 포트폴리오의 탄소 발자국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