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RS 기준 엄격한 중대성 평가 강조...외부 인증 요구

다수의 EU 진출 국내 기업도 공시 대상

2023-08-01     이신형 기자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 본부. AP=연합

[ESG경제=이신형기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31일 확정한 ESRS 기준은 초안과 달리 공시 기업의 자체적인 중대성 평가를 통해 공시 항목과 내용을 기업이 결정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높였다.

따라서 S1과 S2를 제외한 다른 10개의 기준은 공시 기업이 자체적인 중대성 평가를 거쳐 공개해야 할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하는 정보만 공개하고, 사업모델이나 경영활동과 무관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정보는 공시를 생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공시 항목과 내용을 기업이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이 확대되자 이를 EU의 ESG 공시 정책 후퇴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유럽지속가능투자포럼(Eurosif)는 지난 4월 EU 집행위가 수정안을 공개하자 "어떤 게 (공시해야 할) 중대한 정보인지 자유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며 "(ESRS기준을 만든) 유럽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의 최종안에서 상당히 후퇴한 수정안에 우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유연성 높인 대신 엄격한 중대성 평가 요구

이런 논란을 의식해서 인지 ESRS기준은 중요한 정보에 대한 공시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공시 기업은 회계지침(Accounting Directive)에 따라 중대성 평가 과정에 대한 외부 인증을 받도록 요구한다. 또한 ESRS기준은 회계지침의 목적과 요구에 맞게 중요한 정보의 공시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공시 기업에 엄격한 중대성 평가를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공시기업이 기후변화 관련 정보가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해 공시를 생략할 경우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중대성 평가 결과를 상세하게 공시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경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고 구조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EU의 판단을 반영한 조치다.

ESRS는 금융시장 참가자들과 벤치마크 지수 관리자, 금융기관이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정(SFDR)이나 벤치마크규제(BMR), 자본요구규정(CRR) 등의 규제에 따라 반드시 공시해야 하는 데이터를 식별해 놓고 있다. 공시 기업은 이런 규제에 따른 공시 정보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더라도 공시를 생략하지 말고 해당 데이터가 ”중대하지 않다“고 공시해야 한다.

금융시장 참가자나 벤치마크 지수 관리자, 금융기관 등이 SFDR과 BMR, CRR에 의한 보고 의무를 준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조치다. 투자 대상 기업이 ”중대하지 않다“고 공시한 지표는 SFDR 공시에서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한 주요 지표가 아니라고 가정할 수 있다.

초안과 어떻게 달라졌나

EU 집행위가 확정한 ESRS 공시기준은 초안과 비교할 때 ▲공시기준의 단계적 적용 ▲공시 기업 ESG 정보 중대성 판단의 유연화 ▲일부 의무 공시 대상 정보를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한 공시로 전환 등의 차이점을 보인다. 공시기준의 단계적 적용은 종업원 750명 미만의 기업에 특히 중점적으로 적용된다.

초안에서 수정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대성 평가 : 모든 공시 항목과 데이터는 공시 기업의 중대성 평가를 거쳐야 한다. 중대성 평가란 ESG 이슈 중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보를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일반 공시(General Disclosure)에서 구체적으로 공시를 의무화한 항목과 데이터는 예외다. 이런 항목과 데이터는 무조건 공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EFRAG의 수정안은 기후 관련 데이터와 SFDR이 요구하는 금융정보, 종업원 250명 초과 기업의 인력 정보 등도 의무 공시 대상으로 삼았으나, EU 집행위의 수정안은 이런 내용도 공시 기업의 중대성 평가 대상으로 변경했다.

▶일부 공시의 점진적 시행 : 공급망(밸류체인)에 관한 정보 공시를 3년간 유예하는 한편, 기후가 기업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과 양성평등 지표, 단체협약 범위, 적정 임금, 사회적 보호, 직원 교육 등에 대한 공시를 1~3년 간 유예하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EU 집행위는 여기에 더해 종업원 750명 미만 기업의 스코프3 공시와 인력에 대한 공시의 1년 유예, 생물다양성과 밸류체인 종업원, 기업활동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 최종 소비자에 관한 공시는 2년 유예하는 내용을 첨가했다. 모든 기업의 기후나 환경 이슈를 제외한 다른 ESG 이슈의 재무적 영향에 대한 공시를 1년 유예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자발적 공시 확대 : EFRAG는 수정안에서 공시 요구사항과 데이터를 축소했다. 공시 요구사항의 수를 40% 줄이고 공시 데이터는 60% 축소했다. EFRAG의 수정안도 이처럼 다수의 자발적 공시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자발적 공시의 범위를 확대했다. 생물다양성 전환 계획과 인력에 관한 정보 중 비고용인력에 대한 정보 등 일부는 자발적 공시 대상이 됐다. 기업이 특정 지속가능성 이슈를 중대한 정보로 평가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자발적 공시 대상이다.

의무 공시 유연화 : 지속가능성 관련 위험과 이해관계자의 경영 관여에 따른 재무적 영향과 중대성 평가 방법론은 의무 공시 대상이나 여기에 유연성이 부여된다. 뇌물, 내부고발자 보호에 대한 정보 공개에도 수정이 이루어졌다.

EU 법체계와의 일관성 : 유럽의 급여지침이나 오염물질배출 및 등록부와 모순되지 않도록 기술적 수정이 이루어졌다.

국내 기업 영향은

EU 기업들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ESRS기준에 따라 ESG 공시에 나서야 한다. 삼정KPMG의 김진귀 전무는 자사 뉴스레터 기고문에서 임직원 250명, 매출 4000만유로(약 565억원), 총자산 2000만유로 초과 중 2개만 해당해도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에 EU에 진출한 다수의 한국 기업도 공시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2028년부터는 EU에서 실질적인 기업활동을 하는 한국의 최상위 모기업들도 적용 범위에 포함된다“며 ”ESRS 기준이 현지에 진출한 외국 기업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모기업에 대해서도 공시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결기준으로 EU 내 매출이 1억5000만유로 이상이면서 EU 내 매출 4000만유로 이상의 지점이나 현지 법인이 있으면 해외 모기업도 적용대상이 된다.

김 전무는 국내 기업은 두 가지의 ESG 공시 대응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EU 현지법인은 ESRS 기준, 한국 모기업은 연결기준으로 ISSB 기준을 따르다가 2028년부터 ESRS 기준에도 대응하는 방안과 ▲본사 및 그룹 차원에서 ESRS를 충족시키는 공시체계를 구축해 ISSB 기준에도 함께 대응하는 방안이다.

그는 "EU는 최상위 모회사가 자발적으로 CSRS 기준을 충족하는 연결 기준의 ESG 공시를 한다면 EU 내 자회사의 공시 의무를 면제해 준다"며 ”공시 규제를 이중 관리하는 것에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에게 강력한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