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은퇴설계] 은퇴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가 하는 말
은퇴연구소, “노후생활 가장 힘든 존재 1순위는 남편” 부부는 가까운 ‘남’, 다른 점 인정하고 공존 해법 찾아야
은퇴 후 생활에서 재정적 안정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부부 관계다. 하지만 늙어서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깨지지 않고 같이 살면 다행이라는 노부부가 많다. 남녀 사이를 경제적으로 따지는 건 적절치 않지만 행복한 부부는 연봉 1억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한다. 노후에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이 무엇일까?
얼마전 한 은퇴연구소가 50·60대 은퇴부부 100쌍의 부부관계의 현실인식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한 남편의 60%는 함께 있을 때 가장 즐거운 대상으로 배우자를 꼽았다. 그러나 부인은 37%만 배우자를 꼽았다.
노후에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와서는 더욱 극명했다. 남편은 자녀를 1순위로 꼽은 반면 아내는 남편이라고 답했다. 이쯤 되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은퇴부부는 동상이몽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은퇴 후 남편은 아내 의존적으로, 아내는 사회지향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부부 일심동체(一心同體)란 말이 이젠 낯설게만 느껴진다. 차라리 이심이체(二心異體)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어쨌든 은퇴생활은 이렇게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선 서로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감정소통이 안 돼 서먹서먹하게 지내거나 심지어 얼굴을 맞대면 짜증이 나는 사이가 돼 버릴 수 있다. 그러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막다른 길로 내몰린다.
그러나 수십 년 동고동락 살아오면서 아이들을 다 출가시키고 막상 둘만 오붓하게 즐길만한 노년에 갈라선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원만한 부부관계가 노후생활 안착의 가장 기본적 조건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혼은 그 자체로 마음의 상처를 깊이 남길 뿐 아니라 은퇴라는 아주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독거노인이 돼 말년을 비참하게 보낼 가능성도 커진다.
부부는 일심동체 아닌 이심이체
남과 여는 서로 다른 별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갱년기 이후 남자는 감정에 민감해지고 공격성이 약해지는 반면 여자는 감정변화가 줄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는다고 한다. 노년의 남자는 여성스러워지지만 반대로 여성은 가족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고자 하는 충동이 커진다고 한다. 이런 ‘화성인’과 ‘금성인’의 동거는 애당초 갈등이 내재돼 있다.
갈등은 남편이 대개 30년 넘는 직장생활,사회생활을 마치고 가정으로 귀환해 아내와 마주하는 시간이 늘면서 표면화한다. 갑자기 서로 오랜 시간을 함께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늘어나게 돼 있다. 신혼 때의 설렘과 짜릿함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밖에서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회사형 인간이기 일쑤였다.
회사형 인간은 아내와 소통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데 서툴다. 과중한 업무와 치열한 생존경쟁에 시달리다보면 가족관계 같은 삶의 질적 측면을 돌볼 겨를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가정은 어디까지나 쉬는 곳이다. ‘30년 안팎 힘들게 가족을 먹여 살렸으니 이젠 집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가정은 완전히 변했다. 아내가 남편의 귀환을 축하하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해 줄 것을 기대했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예전의 아내는 더 이상 없다고 간주하자. 아내는 남편이 밖으로 나도는 동안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았다. 자녀 친구들의 엄마모임, 여고동창, 대학동창, 종교활동과 노래교실 같은 취미활동 등 자신이 편하게 만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사회형 인간으로 변모해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잘 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만나면 몇 시간씩 대화만으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남자들에겐 서툰 일이다. 용건이 없으면 만나도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 남자들과는 다르다. 회사형 인간과 사회형 인간은 처음부터 물과 기름의 관계이다. 남녀가 정신적·육체적으로 노화하면서 성질마저 달라지면 균열이 생기고 사소한 일에도 언성을 높이며 자주 다투기 일쑤다.
함께 지내는 시간 길어진 가정 ‘권력자’
은퇴생활은 단순히 인생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100세 시대에 생의 3분의 1을 차지할 수 있는 중요한 활동기이다. 하지만 가정의 권력은 상당 부분 아내한테 넘어가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만약 아무 생각 없이 은퇴해 집으로 돌아갔다간 곤란한 상황과 마주친다. 머리를 써 연구하고 준비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은퇴생활은 가정인이 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진 ‘권력자’ 부인과의 공존해법을 어떻게 찾느냐가 관건이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남이며,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를 이해하면서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 금융회사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무릎을 치게 만든다. 부인들은 ‘남편이 자기 주변의 일을 스스로 하고, 지역사회나 친구들과 적극 교류하면서 가사를 분담해주면 좋겠다’고 원하다고 한다. 이에 비해 남편들은 ‘아내가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면서 남편에 간섭하지 말고 자유롭게 해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했으면 한다’는 쪽이었다.
‘사랑의 경제학’이란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독일 언론인 하노 벡은 부부관계 유지의 경제적 이득으로 ‘소득의 증가’ ‘고정비용의 감소’ ‘규모의 경제’ ‘분업의 힘’ 네 가지를 들었다. 부부가 갈라선다면 이들 네 가지 이득과는 반대되는 현상이 돌아올 것이다. 은퇴 전문가들이 말하는 장년,노년기 만족스런 부부관계를 위한 준비 방법 5가지를 소개한다.
첫째는 신체적 노화를 인식하고 은퇴와 수입의 감소로 인한 사회적 활동의 축소를 받아들인다.
둘째는 전통적 남녀의 역할보다는 융통성 있는 부부공동의 협력체로서 가사를 분담한다. 남녀간 역할 차이를 줄이고 합리적 분담이 이뤄지면 행복감이 커지게 마련이다.
셋째, 부부간의 사랑과 애정을 중시하고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넷째, 새로운 활동과 일상생활을 개발하되 항상 부부가 융통성 있게 의논하며 수시로 수정 보완한다.
다섯째,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하며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허락한다.
[서명수 ESG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