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KB금융 회장, 세평은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다’
"지배구조에 정답이 있다는 생각은 착각…각사 특성 따라 차별화“ "9년간 KB 노란넥타이만 매고 일했다…리딩 뱅크·그룹 탈환 보람"
[ESG경제=김상민 기자]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한달 남짓 후인 오는 11월 퇴임한다. 1973년 외환은행에 입행해 금융계와 인연을 맺었던 윤 회장은 2002~2004년 국민은행 부행장, 2010~2013년 KB금융지주 부사장, 2014~2023년 KB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KB금융과 인연을 맺었다. 오는 11월 퇴임하면 ‘KB금융 OB’로서 살아가게 된다.
퇴임을 앞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25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금융인으로 살았던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한편 최근 양종희 신임 KB금융회장 내정자의 인선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대해 뚜렷한 소신과 철학을 밝혔다.
윤 회장은 "지배구조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옳은지 고민해봐야 한다. 모든 회사가 한 프레임(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굉장히 큰 착각일 수 있다"고 지배구조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혔다.
각 회사의 연혁, 처한 상황, 업종 특성, 문화 등의 차이를 고려해 이에 맞게 지배구조를 개발하고 육성해 발전시키는 것이지, 처음부터 정해진 정답은 없다는 것. 그는 "KB의 경우 저와 이사회가 긴밀하게 후계자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고 강조했다.
연임 논란에 ”CEO 3·6년마다 바뀌면 장기투자 어려워“ 소신
연임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 견해에 대해서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윤 회장은 "2018년 하버드 경영자 리뷰 자료를 보면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기업 CEO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10.2년이고,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평균 재임 기간이 7년"이라며 "한국 금융회사가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려고 해도, 3~6년마다 (CEO가) 바뀌면 장기적 안목에서 성과가 서서히 나오는 투자를 어떻게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윤 회장은 KB의 이사회 구성과 사외이사 선임, 이들의 CEO에 대한 견제 시스템 등 지배구조 체계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이런 곳에서) CEO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이사진으로 '참호'(호위 체제)를 구축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팩트(사실)와 픽션(허구)은 구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는 솔직했다. 윤 회장은 최근 KB국민은행 증권대행부 일부 직원들이 내부정보 이용 혐의를 받는 것과 관련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사과해야 하는데 양종희 회장 내정자가 먼저 사과하셨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윤 회장은 재임 기간의 대표적 성과로 리딩(수위) 은행·금융지주 지위 탈환, 푸르덴셜생명 인수 등을 통한 비(非)은행부문 강화, 탄탄한 경영승계 시스템 구축 등을 꼽았다.
그는 "(9년 전) 취임 소감에서 3년 안에 KB국민은행을 리딩 뱅크로, 그 다음 3년 안에 KB금융그룹을 리딩 금융그룹으로 되돌려놓고, 다음 3년간 아시아 선도금융그룹에도 끼고 싶다고 했다"며 "돌아보니 실제로 리딩 뱅크와 금융그룹이 됐고, 보람된 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계 순위 60위권…”금융의 삼성 만들고 싶었는데 씁쓸하다“
글로벌 사업 실적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윤 회장은 "KB가 국내에서는 리딩 금융그룹이지만, 세계 순위로 보면 60위권에 불과해 아쉬움이 있다"며 "한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10위, 20위권에 있어야 하는데, 자괴감이 든다. 금융권에 올 때 금융의 ‘삼성’처럼 만들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진전이 있었나 보면 씁쓸하다"고 밝혔다.
그는 "금융은 자본 바탕의 비즈니스고, 자본이 없으면 자산을 늘릴 수 없다"며 "세계 20위권에 들려면 자본을 지금의 2.5배 정도로 늘려야 하는데, 개별 회사 차원에서 노력해서 가능한 일인지 정책 당국, 언론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윤 회장은 경영진이 내홍을 겪은 이른바 ‘KB 사태’ 직후인 2014년 11월 취임한 뒤 3차례 연임했다. ‘윤종규의 9년’은 KB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시간이었다. 골프도, 외부 강연도 일절 사절했다. KB의 ‘아이덴티티’와 맞추려고 매기 시작한 노란 넥타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윤종규의 9년’은 KB를 다시 일으켜 세운 시간
윤 회장은 "(재임) 9년간 노란색 외 다른 색깔의 넥타이를 매 본 적이 없다"며 "친구들은 제게 노란 피가 흐르는 게 아니냐고 놀리기도 하는데, KB의 상징색인 노랑 넥타이를 매고 일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퇴임을 앞둔 소회도 밝혔다.
윤 회장은 양종희 차기 회장 내정자에 대해선 “(양 내정자는) 은행에 20년을 있어 (저보다) 훨씬 은행 경험이 풍부하다”며 “비은행 부문도 상당한 경험을 갖고 있어 양 날개를 잘 운용할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 회장은 양종회 내정자에게 “경영은 끝없는 계주 경기”라며 “열심히 달려 이제 경우 약간 앞서는 정도에서 터치를 하게 됐다. 내정자께서 더 속도를 내서 반 바퀴, 한 바퀴 앞서가는 계기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윤 회장은 퇴임 후 계획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며 “양 회장 내정자가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인수인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계의 윤 회장에 대한 세평을 종합하면 "떠나는 뒷모습이 무척 아름답다"로 요약된다. 언제나 시작 보다는 끝이 중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