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 피해 막자”...날씨 파생상품 거래 급증
올해 CME서 날씨 선물·옵션 평균 미결제약정 급증 에너지 회사 등 기상이변 피해 대비 파생상품 매수
[ESG경제=이진원 기자] 홍수, 가뭄, 폭염, 산불 등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 발생 빈도가 늘자 이런 극단적인 날씨 변화로 인한 투자 피해를 막거나 이를 역이용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날씨 파생상품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CME)에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날씨 선물·옵션의 평균 미결제약정은 1년 전보다 4배, 2019년과 비교하면 12배씩 각각 증가했다. 거래량도 1년 만에 4배로 늘어났다. 그만큼 장내 거래량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날씨 파상생품 장내 거래에는 주로 에너지 회사, 헤지펀드, 상품 트레이더들이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는 게 로이터의 분석이다.
미결제약정이란 선물·옵션시장에 참여한 투자자가 선물·옵션 계약을 매매한 뒤에 이를 반대매매하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즉 계약 체결 후 결제되지 않고 남아 있는 선물·옵션 계약이다.
기상이변 탓에 다시 주목받는 날씨 파생상품
날씨 파생상품은 1990년대 후반 등장했다. 처음에 이 시장은 미국 에너지 회사인 엔론이 주도했다. 하지만 이후 투기세력이 가세하면서 시장 규모가 커졌지만 2007~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위축됐다.
CME그룹의 에너지·환경 상품 글로벌 책임자인 피터 키비는 “기상이변이 더 흔해지고 더 극심해질 것으로 예상되자 날씨 파생상품 시장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5개월 연속 기상관측 사상 ‘가장 뜨거운 달’이 이어지고 있다. 이상기후 현상이 전 지구를 휩쓸면서 올해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될 게 확실시되고 있다.
전 세계는 홍수와 가뭄, 산불에도 시달렸다. 6일 미국의 CNN 방송은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이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2016∼2021년 홍수, 폭풍, 가뭄, 산불로 인해 전 세계 아동 430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 6년 동안 아동 피난민이 하루에 2만 명씩 발생했다는 뜻이다.
날씨 피해 예방하는 헤지 수단으로 주목
날씨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이유는 날씨로 인한 피해 위험을 헤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 파생상품 판매자는 프리미엄을 받는 대가로 재해 위험을 감수하는 데 동의한다. 이후 계약 만료 전까지 손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판매자는 이익을 얻게 되고, 예상치 못한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 파생상품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합의된 금액을 청구하는 식이다. 보험의 경우 기업이 손실을 입었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 하지만 날씨 파생상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날씨 파생상품은 지수에 따라 돈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에너지 회사가 겨울 난방 시즌에 날씨가 따뜻해져 천연가스 판매량이 줄어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온도 지수 계약을 구매하는 식이다. 이 기간에 평균보다 더운 날씨가 지속되면 계약 가치는 올라 에너지 회사는 파생상품 정산 시 대금을 지급받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스키장 운영자는 눈이 충분히 내리지 않는 위험을 헤지할 수 있고, 음악 페스티벌 개최자는 비로 인한 행사 차질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파생상품 거래의 대부분은 장외거래
통상 대형 재보험 회사나 미국 억만장자 투자자 케네스 그리핀의 시타델(Citadel) 같은 대형 헤지펀드가 거래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게 로이터의 설명이다.
재생 에너지 회사인 스탯크래프트의 영국 전력 데스크 책임자인 매튜 헌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 공급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보여줬다”면서 “전력망에 충분한 풍력이 공급되지 않을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정말 유용한’ 파생상품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날씨 파생상품 시장 규모는 원자재 상품 시장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9월 CME 날씨 선물·옵션 계약의 평균 미결제약정은 약 17만 계약으로 원유의 약 10배에 달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날씨 파생상품 시장의 90%가 장외 거래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로이터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