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시진핑 일단 '구동존이'…‘관계 안정화’ 합의

美中 정상, 대선·경제 등 난제 해결위해 경쟁 관리·충돌 방지 '의기투합’ 전략경쟁 본질은 불변…美, 한반도 비핵화 강조했지만 일치점 못찾은 듯

2023-11-16     김강국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에서 만나 손을 맞잡고 있다. 이날 두 정상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약 1년 만에 만남을 가졌다. 사진=UPI연합뉴스

[ESG경제=김강국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입장을 확인했다.

구동존이는 '공통점을 찾고 서로 다른 점은 그대로 둔다'는 의미로 중국의 오랜 외교 원칙이다. 이는 상호 이익이 되는 분야는 합의하되, 글로벌 패권 경쟁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건들지 않았다는 의미다.

군사소통 채널 회복으로 무력 충돌 방지 '가드레일' 진전 이뤄내

구동(求同)의 대표적인 사례는 군사 분야 대화 재개 합의와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협력 합의다.

중국은 작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반발하며 미중간 대화와 협력 채널을 대거 단절했다. 그때 단절 대상으로 포함된 사안이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군사안보 협의체 회의, 전구 사령관 간의 통화 등이었다.

중국은 또 양국간 불법 이민자 송환 협력, 형사사법 협력, 다국적 범죄 퇴치 협력 등과 함께 마약 퇴치 협력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15일 미중 정상회담의 군사분야 대화 재개와 펜타닐 관련 협력은 양국 관계를 펠로시의 대만 방문 이전으로 돌려놓는 측면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과 나는 위기가 발생하면 전화기를 들고 서로 직접 통화하자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군사 핫라인 수준을 넘어 정상간 핫라인까지 만들겠다는 취지로도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특히 군사대화 재개 합의는 양국 관계의 충돌을 방지하는 '가드레일' 구축의 의미가 있다.

G2 즉 세계 양강(兩强)의 군사 및 정상간 핫라인은 결국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주변 등에서 양국 군함과 군용기 사이의 신경전이 불시의 충돌과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막는다는 점에서 미중 갈등의 관리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모두 발언을 통해 "경쟁이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고, 시 주석도 "충돌과 대치는 양쪽 모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화답했다.

미중 양국이 오해와 오판에 의한 예기치 않은 충돌은 피해야 한다는 데 정상간 의견이 일치했고, 그것이 군 당국간 채널 복원으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첫 번째)이 1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첫 번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책임 있게 경쟁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시 주석은 "충돌과 대치는 양쪽 모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화답했다. 사진=AP연합뉴스

대만 문제는 ‘현상 변경 말자’…미중 관계 안정화에 의견 일치

대만 문제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항상 뜨거운 이슈였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시진핑 주석은 물론 전임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바로 대만을 둘러싼 문제였다.

바이드는 대통령은 이와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입으로 '하나의 중국' 정책을 바꾸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시 주석이 국내에서 중대 성과로 포장할 수 있는 '선물'을 줬다.

반대로 시 주석은 대만에 대한 무력사용 가능 원칙은 유지하되, 향후 수년 안에 대만에 대한 대대적 군사행동에 나설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고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전했다.

결국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를 앞둔 미묘한 시기에 미중 갈등의 최대 화약고인 대만과 관련해 당분간은 건드리지 말자는 게 이번 정상회담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서로 중대한 현상변경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데 암묵적 합의를 봤다는 것이다.

두 정상이 일부 '공약수'를 찾고, 회담장 주변을 산책하는 등 모처럼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가며 ‘성공적인 회담’으로 만들려 애쓴 것은 각자 처한 국내외적 위기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숙이 발을 담근 상황에서 중국과의 갈등 심화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국 주요 언론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내년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포함한 공화당 주자들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진핑 주석은 '포스트 팬데믹 원년'인 올해 정상적인 경제성장 궤도로 복귀를 도모하고 있으나 부동산 버블 붕괴 위기, 청년 실업률 상승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최대의 대외 현안인 중국과의 관계만큼은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내년 대선 선거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도 미중관계 안정화를 통해 미국의 첨단 기술 분야 대중국 견제와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 공세를 무디게 함으로써 경제성장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미중 정상의 관계 정상화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에 어려움을 겪던 한국에도 호재가 될 전망이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 한국이 개최할 예정인 차기 한일중 3국 정상회의 등을 통해 동북아의 안보와 경제가 순탄하게 굴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 ‘자신만의 질서’ 꿈꾸는 경쟁 본질은 불변…바이든, 시진핑을 ‘독재자’로 지칭

글로벌 패권을 꿈꾸는 국가는 ‘자신이 그리는 질서’가 적용되기를 원한다. 그런 측면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미국과 사회주의 혼합경제의 중국은 절대 건널 수 없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양국이 국운을 건 치열한 전략 경쟁의 본질과 관련된 내용은 건드리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경쟁의 책임 있는 관리"를 거론한 반면, 시 주석은 "대국간 경쟁은 시대의 대세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등 미중전략경쟁을 둘러싼 현저한 인식 차이를 재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언급했지만, 북한의 반복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 등 도발 행위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담은 입장은 이번에 양측 발표에 없었다.

또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이 부과한 고율 관세 폐지나, 첨단 반도체 장비 등의 대중국 수출 통제 등에 있어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회담한 뒤 나란히 산책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예정된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의 쏟아지는 추가 질문에 답변하면서 한 기자가 '시 주석과 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독재자로 보느냐'는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알다시피 그는 그렇다. 그는 1980년대 이래로 독재자였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는 공산당을 이끄는 남자"라고도 했다.

미중 정상이 실질적 진전을 이뤘다는 회담 직후에 바이든이 중국 정부가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발언을 재확인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 한 모금 행사에서 시 주석을 '독재자'라고 칭했고, 주미중국대사관은 당시 성명을 내고 "진지한 조치를 즉각 취할 것을 촉구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에는 중국 정부를 '악당'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시 주석과 회담 도중에 자신과 생일(오는 20일)이 같은 날인 시 주석 부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정성(?)을 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