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사회와 공정의 가치] ⓹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는 공정가치

OTT 시장의 독과점 구조가 불러온 스트림플레이션...과연 공정한가?

2023-11-20     ESG경제
                                            박봉욱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요즘 인기를 끄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업체들이다. 이들은 처음 시청자에게 접근할 때 무료 이용 기간 제공, 가족·친구와 계정 공유 권장 등의 서비스를 내걸었다. 글로벌 OTT업체들이 막대한 제작비로 인기 있는 콘텐츠를 공급하는 물량 공세와 가격 공세로 인해 토종 OTT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OTT시장에서 글로벌 업체들의 독과점 구조가 어느 정도 정착되자, 이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스트림플레이션(스트리밍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말) 즉 구독료를 가파르게 올리고 있는 것. 디즈니플러스는 최근 광고 없는 요금제를 월 4,000원 올렸고, 티빙도 다음 달 20%씩 요금을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입자가 제일 많은 넷플릭스는 같은 집에 살지 않는 사람과 계정을 공유하면 추가 요금 5,000원을 더 부과하기로 해 논란이다. 그동안 끌어모았던 시청자들을 상대로 수익 극대화에 나서는 모양새이다.

이러한 OTT 업체의 공정한 가격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상장기업은 시가 총액으로 그나마 가격과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상장도 되지 않은 기업이나,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해서 투자비만 잔뜩 들어간 기업은 어떻게 평가하며, 특별한 기술이 있다고 하는 특허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사회가 고도화·전문화되고 기술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서의 평가가 많이 발생한다.

감정평가사 업무범위, 감정평가(Appraisal)에서 가치평가(Valuation)로

필자가 최근 대형 법률회사 대표로 있는 대학 동창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내 머리를 망치로 ‘꽝’ 내리치는 듯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나는 감정평가사가 이해가 되지 않아. 법은 그렇게 강력한 내용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부동산만 평가한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정신이 얼얼해 얼른 사무실로 돌아와 “감정평가와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을 찾아보았다.

법률의 제2조 제1항에 감정평가사는 ‘토지 등’의 감정평가를 업무로 하고 있고 ‘토지 등’이란 ‘토지 및 그 정착물, 동산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재산과 소유권 외의 권리’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대통령령에는 저작권·산업재산권으로 대표되는 지적재산권과 어업권, 광업권, 광산 및 자동차, 항공기 등 등기, 등록 재산과 유가증권으로 규정돼 있다.

유가증권이란 창고증권, 선하증권, 화물인환증 등의 상품증권과 약속어음, 환어음, 수표 등의 신용증권, 주권, 공채증서, 사채권, 금융채권 등의 자본증권을 말한다. 유가증권 가운데 눈에 띄는 단어가 주권(株券, 주식)이었다. 주권의 가치란 그 기업의 가치인 것이고, 현재 이뤄지는 모든 경제활동의 기초를 이루는 게 바로 기업의 가치라는 자명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오랜 기간 감정평가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경제적 가치를 판정할 수 있는 ‘감정평가권’을 국가로부터 부여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와 건물에만 얽매여 있지 않았나 반성하게 됐다.

좀 더 시야를 넓혀 감정평가사가 할 수 있는 분야로 위에서 예를 든 OTT 같은 회사의 기업가치평가, 스트리밍 기술과 같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특허청과 연관되는 기술가치평가, ‘공사가 중단된 건축물’ 등을 포함한 원가가치평가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부분들은 통상 이야기하는 감정평가(Appraisal)라기보다는 가치평가(Valuation)에 관한 것이다. 다만 대상별로 각 개별법에 규정으로 특정되지 않다 보니 다른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나 관련 전문가들이 ’평가‘라는 이름으로 유사 평가행위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회계업계는 재무분석 등 컨설팅으로 업무확장

예컨대 건물과 토지에 대부분 집중하는 한국 감정평가업계의 시장은 약 1조원 수준이다. 반면 회계업계의 2022년도 총 매출은 5조 7,000억원에 이른다. 공인회계사의 업무는 회계에 관한 감사·감정·증명·계산·정리·입안 또는 법인 설립 등에 관한 회계 및 세무대리와 그 부대 업무로서 외부감사업무이다. 회계업계는 이러한 업무 범위를 가지고 가치평가 기능을 활용해 컨설팅 등으로 업무 범위를 대폭 확장한 결과로 판단된다.

이러한 회계업계의 업무 범위 확장시도가 실패한 사례도 있다.

필자가 감정평가협회의 기획이사로 근무 당시 IFRS(국제회계기준) 도입이 논의되고 있었다. 어느 날 동료가 유명 대기업의 기업 공시 내용을 보여주었다. 내용인즉 한 대형 회계법인의 자회사가 대기업의 자산재평가를 수행했다고 공시한 것이다. 필자는 즉시 그 회계법인을 ‘부동산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 위반으로 고발했고, 결국 협회 집행부의 노력으로 대법원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고 그 이후 부동산 자산재평가를 넘보지 못하게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 고도화·복잡화 특성을 보이는 사회에 대비해야

전문직이 대우받는 거의 유일한 기준은 ‘실력과 능력’이다. 감정평가업계가 건물과 토지 등 부동산 감정평가에서 벗어나 업무영역을 확장하려면 스스로 시장에서 인정받는 실력을 갖추는 게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가대상별 전문분야 등록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국내 타 자격자와 미국 MAI, ASA, CVA, 영국의 RICS등 외국 자격증 단체와 협업체계를 구축해 ‘선진화된 가치평가’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신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를 준다. 사회와 경제가 고도화됨에 따라 공정한 경제적 가치 판단의 수요가 넓어지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부동산 평가에 안주하지 말고, 기업가치평가나 기술가치평가 등으로 업무를 넓히고, 선진국 업계와 협력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글로벌 시대에는 상품시장과 마찬가지로 서비스시장도 개방되고 글로벌 경쟁에 맞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직인 감정평가사도 이제 실력을 키우고 다른 업무영역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평가 시스템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공정한 가치평가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과 기업이 이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봉욱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 감정평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