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은퇴설계] 노후 용돈 벌이 ‘3인 3색’

은퇴연구소 설문조사 “55%가 자녀의 지원” 용돈 문제로 부부 갈등···자체 해결이 바람직

2023-11-28     서명수 기자
                 그래픽=픽사베이

은퇴하고 나면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용돈이다. 용돈의 사전적 의미는 특별한 목적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다. 은퇴하고 나서도 친구 등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취미생활도 해야 하기 때문에 용돈은 여전히 유효한 존재다.

하지만 소득흐름이 확 줄어드는 마당에 현역시절처럼 용돈을 풍족하게 쓰기 힘들다. 비자금을 모아놓지 않은 이상 자식들의 지원을 받아 쓰는 경우가 많다.

한 생명보험사 은퇴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1392명 가운데 760명(54.6%)은 자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녀들의 평균 연간 지원액은 393만 원이었다. 이를 월별로 환산하면 31만 원이다. 이 중 74.9%는 정기적인 지원이었다. 자녀들의 성별별로는 아들의 지원액이 67.7%를 차지했다.

아내가 자녀의 용돈 지원통로

용돈 관리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은퇴 가정은 대개 부인이 자녀의 용돈 지원통로다. 10년전 은퇴한 A씨 사례다. 그에겐 결혼한 아들이 둘 있는데, 한달에 각 30만원씩 용돈을 보내온다. 그런데 아내의 통장에 입금을 하기 때문에 용돈 관리는 자연스럽게 아내의 몫이다. A씨는필요할 때마다 얼마씩 타다 쓸 수 밖에 없다.

처음엔 집에서 노는 사람이 왠 용돈을 그렇게 많이 쓰냐며 아내가 잔소리를 하는 통에 여러 차례 부딪혔다. 그러다 몇 만원 가지고 다투는 게 싫어 용돈 규모를 줄이고 집 밖의 활동도 의식적으로 자제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분수에 맞는 용돈 씀씀이가 되더라는 것이다. 물론 부모 용돈을 따로 챙겨주는 자식들도 있다.

대학 선배 B씨의 사례다. 의사인 아들은 3년전 결혼해 첫 아이를 난 후부터 용돈을 보내오고 있다. 자신과 아내 똑같이 50만원씩이다. 아내가 부모 용돈을 왜 자기한테 안 주느냐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따로 용돈'에 적응했다고 한다. 그는 "용돈 때문에 아내와 다투는 일 없어서 좋다. 아빠도 자식 키운 보람 같은 것을 아내와 똑같이 누릴 자격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자녀가 부모 용돈을 엄마를 통해 지원하는 것은 자랄 때 엄마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용돈을 주로 엄마한테 타 쓴다. 직장생활을 하는 아버지는 자녀 문제에 관한 한 국외자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특유의 가부장적 문화로 자녀와 대화조차 뜸하다. 자녀의 머릿 속엔 아버지는 돈 벌어오는 사람, 엄마는 그 돈으로 살림을 꾸려가는 사람으로 박혀 있다. 아버지가 은퇴해도 이런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

자녀가 은퇴한 부모에게 용돈을 줄 때 왜 엄마를 매개로 하는지는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만큼 용돈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 자녀가 보내준 용돈을 살림에 보태 쓰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은퇴 가정의 경제권을 쥔 아내에게 남편의 용돈은 어쩌면 사치일 뿐이다.

자녀에게 은퇴생활 실상 알려야

부족한 용돈이 자극제가 돼 스스로 용돈 벌이에 나선 경우도 있다. 대학 선배 C씨가 그랬다. 금융회사 임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그는 퇴직후에도 각종 모임으로 용돈이 늘 부족했다. 용돈을 올려달라고 아내한테 말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이래 가지곤 안되겠다 싶어 친구와 대책을 논의했다. 그 친구는 한 금융단체에서 운영하는 파견교사 자리를 알선해 주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경제강의를 하는 일인데, 한번 갈 때마다 20만원의 강의료가 나왔다. 한달에 평균 100만원 정도는 벌어 퇴직후 중단했던 골프까지 즐기게 됐다. 그는 "죽을 때까지 꼭 필요한 건 아내의 잔소리 안 듣고 맘 편히 쓸 수 있는 용돈” 이라고 했다.

용돈 문제는 재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독립적 경제력을 키워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 현역 때 틈틈이 비자금을 조성해 노후에 쓸 용돈 재원을 만들어 놓는 것도 바람직하다. 만약 비자금을 만들지 못했다면 자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때 평소 자녀와 대화기회를 자주 갖고 은퇴한 아빠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는 게 중요하다.

[서명수 ESG경제 칼럼니스트]

                                      서명수 ESG경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