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ESG 결산] ① 너무 뜨거웠다...기후재난 커져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
[ESG경제=김연지·김현경 기자] <ESG경제>는 2023년을 보내며 올 한해 ESG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역사적으로 기록될 중요 뉴스를 정리해 봤다. 올해 ESG 주요 흐름은 ▲지구 기온이 더 상승하며 빈발한 기후 재난의 고통 ▲공급망실사법과 공시의무화 등 ESG의 법제화 ▲정치적 역풍에 따른 ESG '거품'의 제거와 더 강해진 ESG 뿌리 등으로 요약된다.
2023년은 뜨거워진 지구를 더욱 체감했던 한 해였다. 구체적인 예측은 조금씩 다르지만, 세계 곳곳의 연구진들은 지구온도 1.5℃ 상승(산업화 이전 대비)까지 앞으로 10년이 채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높아진 지구 온도는 때로는 산불로, 때로는 폭우로, 그리고 때로는 극심한 가뭄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로 주거지를 잃은 난민이 속출했고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고통의 무게는 공평하지 않았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지역, 가난한 계층, 궁핍한 자원만을 배분받은 사회적 집단이 더 큰 고통과 피해를 겪었다.
다행히도 올해는 기후위기로 인한 손실과 피해, 그리고 그 보상에 대해 세계 각국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고민하며 해법을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광폭해지는 기후재난이 더 많은 손실과 피해를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누가 어느 정도의 손실과 피해를 감내하고 있으며, 누가 이를 보상할지가 중요 이슈로 떠올랐다.
1. 뜨거워지는 지구를 실감
올해 지구는 너무 뜨거웠다. 산불을 비롯해 각종 기후재난을 일으키는 지구 온난화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7월을 지구가 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4주로 기록했다. 가을에도 더위는 식을 줄 몰랐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CCS)는 전 세계적으로 지난 10월이 1800년대 후반 10월 평균 기온과 비교해 1.7℃ 높은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런 속도라면, 파리기후협정에서 약속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1.5℃ 억제 마지노선이 머지 않아 맥없이 뚫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0월,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등이 참여한 연구진은 2021년 이후 배출량과 에어로졸 감소를 반영해 계산한 결과, 지구 온도 상승폭이 1.5℃를 넘어가는 시점은 2029년이며, 이를 억제하려면 탄소중립을 2050년이 아닌 2034년으로 앞당겨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 꺼지지 않던 산불, 그치지 않던 폭우와 가뭄
높은 기온은 산불로 번졌다. 올해 호주 퀸즐랜드. 하와이 마우이섬, 캐나다 퀘백,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몇달씩 꺼지지 않는 산불이 일어났다. 특히 지난 5월과 6월 사이 발생한 캐나다 산불은 우리나라의 1.4배에 해당하는 1,400만 헥타르(14만㎢)를 태우며 역사상 최악의 산불 중 하나로 기록됐다.
기후변화는 산불의 원인이자 결과다. 높은 지구온도는 초목을 건조하게 만들어 숲을 거대한 불쏘시개로 만든다. 산불이 더 쉽게 발생하고, 더 많이 번지고, 더 오래 불타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숲이 타버리고 나면, 숲의 탄소 흡수 능력도 사라진다. 그로 인해 흡수되지 못한 탄소들이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으며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난 9월 외신에 따르면 발칸반도 남부에 위치한 그리스·튀르키예·불가리아에 불어닥친 폭풍 다니엘의 영향으로 물폭탄이 쏟아지며 지금까지 최소 12명이 사망했다. 그리스 중부 필리온에서는 하루 동안에 600∼800㎜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그리스의 평균 연간 강우량은 약 400㎜이므로 하루 만에 1년 치를 훌쩍 뛰어넘는 비가 내린 셈이다.
3. 탄소 배출은 오히려 증가했다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과 세계자원연구소 등 다양한 환경 연구단체들이 함께 발간한 ‘2023 기후행동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1.5도 상승 제한을 위해서는 온실가스(GHG) 배출이 2025년에 정점을 치고 2030년까지는 43% 감소해야 한다. 하지만 유엔이 작년 9월 기준 각국의 탄소 정책을 살펴본 결과 지금같은 추세라면 실제 감축률은 3.6%에 그칠 전망이다.
세계의 탄소배출량은 증가 속도는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탄 중간 보고서에서 2023년 석탄 수요를 전년대비 0.4% 상승한 83억8,800만t으로 예측했다. 영국 엑서터대와 전 세계 90개 기관이 참여한 지구온난화 현황 분석 국제기구 '글로벌 탄소 프로젝트(GCP)'가 공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화석연료로 인한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23년에 다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세계기상기구(WMO)가 지난 9월 발표한 '2023 기후과학 합동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인류의 활동으로 배출된 온실가스가 2021년보다 1% 증가했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4. 기후불평등,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했다
기후위기는 평등하게 오지 않는다. 기후불평등은 기후위기에 더 많은 기여를 한 집단과 더 많이 피해를 보는 집단 사이의 불일치를 일컫는다. 즉, 더 많은 탄소를 배출했다고 기후위기의 대가를 더 많이 치루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지구를 덜 오염시킨 집단이 더욱 광폭한 기후위기에 노출되고 있다.
국가 간 불평등은 명확하다. 데이터 연구플랫폼 아워월드인데이터(OWID)에 따르면, 2021년까지 전세계 온실가스 누적배출량 상위 5개국(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순)이 170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가 전체 배출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기후위기에 의한 피해 규모를 기준으로 국가들을 나열하면 순위는 뒤바뀐다. 국제평가기관 저먼워치는 2021년 ‘글로벌 기후 위험 지수’ 보고서를 통해 지난 약 20년동안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했던 10개국을 꼽았는데, 미얀마, 아이티, 모잠비크, 파키스탄 등의 개도국이었다.
국가 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세계불평등연구소가 지난 1월 발표한 ‘기후불평등보고서 2023’에 따르면, 국가 내 기후 불평등이 국가 간 기후 불평등의 수준을 앞지른지 오래다. 한국도 심각하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10%는 연간 1인당 평균 55톤을, 하위 50%는 7톤의 탄소를 배출한다. 상위 1%는 무려 180톤을 배출한다. 하위 50%에 비해 27배나 많은 양이다.
최근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와 손실을 말할때, 점차 더 많은 기준과 관점, 다양한 정체성과 맥락이 포함되고 있다. 성별, 세대, 인종, 지역 등 기존에 사회적으로 형성된 불평등이 기후위기와 중첩되어 고통을 가중시켰다는 연구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5. 국제사회 기후위기 대응, 답답하지만 의미 있는 진전
12월13일 폐막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기후변화 피해가 큰 나라들을 위해 부유한 국가들이 보상금을 마련하는 이른바 ‘손실과 피해기금’을 정식 출범시키는 성과가 있었다. UAE, 영국, EU 등이 공여해 7억 달러가 넘는 기금이 모였다. 그러나 이는 전체 손실 추정액의 0.2%로 초기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화석연료 퇴출을 놓고는 대표단의 논의 연장 끝에 결국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전환”한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에는 못 미쳤지만,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최초의 국제적 합의이자 화석연료의 종말을 시사하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화석연료 퇴출"이 아닌 완화된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과 탄소포집저장(CCS) 장려 등 화석연료의 지속적 사용을 위한 여지를 남겨놓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화석연료의 단계적 전환”은 COP사상 최초로 시행된 ‘전 지구적 이행점검(GST)’에 따른 개선 방안을 도출한 합의안인 ‘UAE 컨센서스’에 담겨 있다. UAE 컨센서스는 또한 재생에너지 3배 확충, 석탄 사용의 감소, 탈탄소 전환이 어려운 산업의 탄소배출량 저감을 위한 클린테크 개발 가속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