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제한해 기후변화 막자?...‘탄소 여권’ 도입 제안 눈길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0% 관광 산업서 나와 2008년 영국 의회서 이미 개인 탄소 배출 제한안 제기 전문가들 "현실성 떨어져, SAF 사용 확대 등이 효과적"
[ESG경제=이진원 기자]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여행자가 매년 허용되는 수준 이상으로 탄소를 배출하지 못하게 여행을 제한할 수 있는 일명 ‘탄소 여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런 제안을 내놓은 건 여행사 인트레피드(Intrepid)로, 인트레피드는 컨설팅 회사인 더 퓨처 래보러터리(The Future Laboratory)가 지난 10월 내놓은 보고서를 근거로 탄소 여권의 현실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더 퓨처 래보러터리의 알렉스 호킨스 전략 에디터는 최근 미국의 경제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BI)와의 인터뷰에서 “탄소 여권 도입안은 개인 탄소 허용량에 대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다”면서 “일정 기간 사람들이 배출할 수 있는 탄소에 상한선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 산업은 기후 위기를 야기하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분의 1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 미국 환경보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9%가 항공편, 기차, 자동차를 포함한 운송 수단에서 발생했다.
특히 이 중 항공편은 전체 여행 관련 탄소 발자국의 절반 이상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행기 여행을 많이 할수록 탄소 배출이 그만큼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기후 위기 막기 위한 개인 탄소 배출량 제한
상당히 극단적인 아이디어가 같지만 탄소 여권 도입 아이디어가 이번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CNN에 따르면 2008년 영국 의회는 ‘개인 탄소 거래(Personal Carbon Trading)’라는 보고서에서 비슷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시 보고서는 기후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개인의 탄소 배출량을 연간 2.3톤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축에 속하는 연평균 16톤의 탄소를 배출한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를 기존으로 보면 1인당 연간 평균 탄소 발자국은 4톤에 육박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탄소 여권을 현실화하는 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여행자의 이동을 줄여 탄소 배출을 감축하자는 아이디어가 이론적으로는 괜찮지만 시행까지는 여러 난관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킨스나 호킨스가 쓴 보고서를 인용한 인트레피드의 미국 지사장 매트 베르나 모두 탄소 여권이 실현되려면 새로운 법안과 기술 혁신이 동반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전문가들 개인 여행 제안 외에 다른 대안 제시
뉴욕대학교의 조나단 M. 티쉬 호스피탈리티 센터의 겸임 교수인 안나 아벨슨은 BI와의 인터뷰에서 “탄소 여권이 이론적으로는 좋은 아이디어지만 물류 측면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또한 전 세계적으로 도입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와 기업들과 함께 전략을 개발하는 단체인 서스테이너블 트래벌 인터내셔널(Sustainable Travel International)의 팔로마 자파타에 최고경영자(CEO)는 여행 제한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여행을 가고 싶은데 탄소 배출을 많이 했으니 앞으로 가지 말라고 막는 게 과연 얼마나 가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CNN이 인용한 2014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업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공 교통량의 증가로 인해 그런 노력의 효과가 상쇄될 것으로 예상됐다.
자파타에는 따라서 그보다는 ”사람들에게 보다 지속가능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사람들의 친환경 여행에 대한 인식을 높임으로써 변화를 유도하고, 그러한 변화가 유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했다.
여행 제한보다는 항공사가 친환경 대체 연료를 사용하게 하거나 정부가 항공 산업의 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게 여행을 제한하는 것보다 관광업계의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사들은 이미 쓰레기나 식물성 기름과 같은 자원으로 만든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AF)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 자료에 따르면 SAF는 일반 제트 연료보다 이산화탄소를 최대 80%까지 적게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