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재계 인사...4세 경영 본격화 원년

GS·LX·삼양그룹, 30~40대 창업자 4세 CEO로 승진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 아들 허윤홍, GS건설 CEO맡아 “경영 세습” “능력 검증” 비판...기업가치 훼손 지적도

2023-12-12     권은중 기자
허윤홍 GS건설 대표이사(사진=연합뉴스)

[ESG경제=권은중 기자] 연말 주요 그룹 인사에서 총수 일가의 4세 경영이 속속 시동을 결고 있다. 2016년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 취임 이후 시작된 4세 경영 대열에 다른 대기들이 잇따라 가세하는 모습이다.

재계의 세대교체에 따른 30~40대 젊은 그룹 총수의 출현은 한국 재계의 거버넌스와 기업문화를 젊게 만들어 보다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경영에 나서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낳는다. 그러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들이 고속 승진해 CEO나 주요 임원에 오르는 것은 ‘유교적 경영 세습’이며 특히 경기침체로 기업 수익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4세 경영은 자칫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GS·LX·삼양그룹 등이 최근 연말 인사를 통해 30~40대인 총수 자녀들을 경영 전면에 배치하며 4세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다.

GS그룹은 이번 인사를 통해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의 아들인 허윤홍(44) 사장을 GS건설 대표이사로 승진시켰다. 또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 허서홍(46) 부사장은 GS리테일의 경영전략서비스 유닛장으로 승진했다.

또 LG에서 독립한 범 LG가인 LX그룹 구형모(36) 부사장은 이번 연말 인사에서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는 구 부사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의 장남인 고 구자경 전 회장 손자이자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장남이다. 구부사장은 LX홀딩스 경영기획부문장 전무에서 승진하면서 동시에 LX그룹 내 신생 계열사 LX MDI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김건호 삼양홀딩스 대표이사 (사진=삼양사 제공)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장남인 김건호(40) 경영총괄사무도 이달초 지주사인 삼양홀딩스 사장을 맡았다. 김 신임 사장은 삼양그룹 창업주인 고 김연수 명예회장의 증손자다. 김 신임 사장의 직책은 전략총괄로, 그룹의 성장전략과 재무를 책임진다.

“3·4세 경영은 경영권 세습 강화” 비판 나와

해당 그룹들은 이들의 전진배치를 신사업을 위한 세대교체라고 말하고 있으나 경영권의 세습강화라는 비판이 나온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대기업이 추진하는 신사업도 리스크가 있다”며 “창업주 후손도 회사를 위해 역량을 발휘할 능력이 있는지 검증을 거쳐야 하는데 이사회나 주주들은 견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좀더 강도높은 비판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근 언론 칼럼에서 “능력없는 3, 4세가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 차체가 기업과 사회에 큰 부담”이라며 “능력있고 포부가 있는 젊은이들에게 기업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2015년 한 경제개혁연구소에서는 대학교수, 주요 민간연구소 연구원, 펀드매니저 같은 전문가를 대상으로 대기업집단의 경영권 세습에 대한 인식도 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자녀에 대한 경영권 승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답변이 56%로 바람직하다는 답변(14%) 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그 이유는 기업가치 훼손이 우려된다(58%)가 가장 많았다.

외환위기 때처럼 과도한 차입 경영이나 해외 M&A에 나섰다가 그룹이 운명을 다하고, 그 피해는 국민에 전가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인 셈이다. 실제 외환위기가 일어나기 전인 1990년대 한국 재계는 2세로의 경영세습이 활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 이재용 회장 “4세 경영 포기” 선언과 대비

이런 비판이 고조되면서, 지난 2020년 10월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4세 경영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23살의 아들과 19살 딸을 두고 있다. 당시 이재용 회장의 발언으로 삼성이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을 벤치마킹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발렌베리는 스웨덴 국내 총생산(GDP) 비중이 30%대인 거대 기업집단이다. 5대 160년 동안 한 가문이 소유하고 있지만, 소유와 경영의 철저한 분리로 ‘가문 경영’의 롤 모델로 여겨진다. 일상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고 오너가문은 사회공헌 등 재단활동에 전념하며 그룹의 상징적인 후견인 역할을 한다. 정치체제로 따지면 입헌군주제와 비슷한 기업 거버넌스다. 군주(오너)는 있지만, 실제 통치하지 않고 총리(CEO)가 나라(기업)를 다스리는 형태다.

현재 발렌베리그룹은 창업자의 5대손이 이사회를 통한 그룹경영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그룹내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 및 이사회의장 임면과정에 관여하고 계열사의 주요 경영전략을 감독한다.

물론 발렌베리에선 창업주 가문의 자제들도 직접 경영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나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체계적이고 경쟁이 치열한 내부 CEO(최고 경영자) 육성프로그램을 통과해 자질을 검증받은 경우로 한정하기 때문에 내외부의 반발이 거의 없다. 특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가문의 구성원은 이 CEO 육성 프로그램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수익의 사회환원도 어떤 기업들보다 적극적이다.

3세·4세 경영 첫 도입한 두산, 5세 경영 '시동'

한편 국내에서 처음으로 4세경영을 도입했던 두산그룹은 5세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재계에 따르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상수 수석이 지난 9월 ㈜두산 지주부문 CSO 신사업전략팀에 입사했다. 국내 최초로 1981년 3세 경영을, 2016년 4세 경영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 두산그룹의 이후 행보가 주목된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자산 순위 100대 그룹에 재직 중인 총수일가 827명 중 사장단에 포함된 199명의 이력을 분석한 결과, 총수일가 3·4세들의 평균 입사 나이는 28.7세였다. 이들은 입사한 지 4.1년 뒤인 32.8세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임원 승진 8.4년 뒤인 41.2세에 사장이 됐다. 부회장 승진 나이는 4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