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수의 에코인사이드] 재생에너지 전력도 공짜가 아니다
폐태양광 패널에 다량의 중금속 함유 풍력 터빈 날개도 유리섬유 덩어리 재생에너지 갈 길이지만 숙제도 생각해야
2023년 한 해 영국에서는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이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생산한 것보다 아슬아슬하게 웃돌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영국 2900만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력(영국 내 전체 전력 수요의 36%)보다 더 많은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생산했다는 얘기다.
영국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했던 2020년에도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량이 화석연료 전력량을 추월한 적이 있긴 하다. 코로나19에서 경제가 회복했던 2021~2022년에는 전체적인 전력 수요가 늘면서 재역전됐는데, 이번에 또다시 뒤집어지게 됐다. 영국에서는 2024년에는 1.7GW(기와와트) 규모의 해상 풍력 발전까지 추가될 예정이고, 마지막 남은 석탄화력발전소도 문을 닫을 예정이다.
차이는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얼마 전에 끝난 제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3배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기후위기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 빠르게 하락하지만
문제는 앞으로 설치해야 할 재생에너지 규모를 고려한다면 투자해야 할 돈도 엄청나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청정에너지 투자는 1조7000억 달러에 이르고, 태양광 발전에 대한 투자만 38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재생에너지를 3배로 늘리려면 2030년까지 세계적으로 매년 3조 달러 이상 쏟아부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은 빠르게 줄고 있다. 에너지원별로 균등화 발전비용(LOCE)을 따져보면 태양광 발전은 석탄 발전보다 경쟁력이 있다. 발전효율을 높이는 등 기술 개발이 더 이뤄진다면 경쟁력에서 조만간 가스 발전이나 원자력을 앞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재생에너지 비용은 발전설비 설치에만 그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때 발생하는 ‘환경 비용’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국내에서도 벌어지고 있지만,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발전기 설치를 둘러싼 환경 훼손 논란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덧붙여 재생에너지 설비의 폐기 비용도 문제다. 태양광 패널이든, 풍력발전기든 수명이 있어 무한히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과 충남대 연구팀이 국제 저널 ‘에너지(energies)’에 발표한 논문에서 2050년에는 국내에서 폐(廢)태양광 패널이 시나리오에 따라 연간 11만5000톤~32만9000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앞으로 태양광 패널 설치를 얼마나 확대할 것인지, 태양광 패널의 수명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 태양광 발전 시설용량 1MW당 패널의 무게를 얼마나 줄일 것인지 등이 변수다.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재활용에너지 시설, 특히 태양광 발전 시설을 확대한다면 매년 적지 않은 폐태양광 패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탄소 중립을 달성 시점인 2050년이 아니라 불과 7년 뒤인 2030년을 기준으로 해도 국내에서 폐태양광 패널이 매년 3만 톤 정도가 배출될 것으로 연구팀은 예상했다. 환경부는 태양광 패널 수명을 20~25년으로 보고 있고, 2030년 폐기되는 패널이 9632톤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논문의 전망과 차이가 크다.
재생에너지 폐기물 처리 큰 숙제
폐태양광 패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수명을 다한 태양광 패널을 수거해 땅에 매립할 경우 카드뮴·납·크롬 등 중금속이 누출되고, 환경오염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재활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물론 폐태양광 패널 성분 가운데 유리(중량의 약 68%), 알루미늄(약 15%), 고순도 실리콘(약 3%), 구리선(약 1%) 등이 재활용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잘 회수되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환경부는 폐패널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2023년 초부터 태양광 패널에 대해 생산자 책임 재활용(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EPR)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EPR은 제품 제조·수입업체에 제품 폐기물 일정량을 회수·재활용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한 업체에서 부과금을 받는 제도다. 재활용률 80%를 목표로 삼고 있는 환경부가 올해 고시한 태양광 패널 재활용 의무량은 159톤이다. 앞으로 재활용 업체를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태양광 패널 자체의 내구성은 높이면서 무게를 줄이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아울러 풍력발전기의 재활용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수명이 20년 정도인 풍력발전기 터빈의 블레이드(날개)는 유리섬유(최대 60%)와 충전재 등으로 구성돼 있다. 화학적 처리나 열분해 등 블레이드 속 유리 섬유를 재활용하는 기술은 있지만, 아직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서는 1톤을 재활용할 때마다 200달러 이상 적자가 발생한다.
세계 최대 풍력 발전 용량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블레이드 재활용이 ‘발등의 불’이다. 중국의 풍력 설치용량은 전 세계의 37%이고, 2018년 기준으로 누적 용량은 210GW에 이른다. 최근 중국과 영국 연구팀이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2018년 블레이드 폐기물이 50만 톤가량 발생했고, 2050년까지 이 양이 20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팀은 향후 30년 동안 누적량으로 1290만 톤의 풍력발전기 폐기물이 중국에서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도 20~30년 대다보고 미리 대비해야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 길거리 배전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여기서 원료는 석탄·석유를 얘기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다르다. 태양광이나 풍력의 원료인 햇빛과 바람은 공짜이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설비의 설치와 폐기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2023년 1월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30.2%에서 21.6%로 줄인 것처럼 이번 정부는 재생에너지 ‘역주행’에 나섰다. 그 때문에 관련 산업도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재생에너지의 이런저런 비용을 고려했고, 화석연료의 빈자리를 원자력으로 채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만, 국제사회의 흐름과는 다르다.
원전을 늘린다고는 하지만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나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태양광·풍력 발전시설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20~30년 뒤에 닥칠 재생에너지 폐기물 문제도 미리미리 대비해야만 한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해 이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한다면 더 좋겠다.
그래야 기후 위기가 다른 환경 위기로 번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ESG경제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강찬수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생물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부터 중앙일보에서 30년 동안 환경전문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하며 환경, 기상, 과학 분야 기사를 6,700여 건을 썼다. 최근에는 녹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녹조의 번성-남세균 탓인가, 사람 잘못인가』란 책을 발간했다. 이에 앞서 『사람과 물』,『에코사전 -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환경 교과서』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산림청 자문위원, 환경신데믹연구소장 부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한국기후변화학회에서 수여하는 기후변화 언론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