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ESG 투자 회복 기대감...내년 봄볕 내리쬘까
올해 글로벌 ESG 펀드 투자 유입액 급감 11월부터는 투자금 유입 증가세로 반전 기술주 호조에 ESG 펀드 수익률 약진
[ESG경제=이진원 기자] 올해 국내외 ESG(환경·사회책·지배구조) 투자업계는 투자금 유입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진 탓에 한 마디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연말로 갈수록 내년 업계의 부활에 기대감을 갖게 해줄 긍정적인 신호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고금리·인플레 장기화에 그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공화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ESG 때리기가 심화하자 ESG 투자 분위기는 급속히 냉각됐다. 여기에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도 업계에 악재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아래서도 글로벌 ESG 펀드는 기술주의 약진 덕에 올 전체로 업계 평균을 상회하는 수익률을 달성했다. 이는 내년 ESG 펀드로 투자금 유입 속도가 다시 빨라질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해줄 긍정적인 신호로 간주된다.
국내 ESG 펀드로도 연말로 갈수록 자금 유입이 빠르게 늘어나는 모습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2023년 고전한 ESG 펀드
올해 ESG 펀드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은 싸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조사회사인 LSEG 리퍼 데이터에 따르면 11월 30일 현재 전 세계 ESG 펀드는 680억 달러(약 88조 원)의 자금 순유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순유입 규모는 2022년의 1580억 달러(약 205조 원)와 2021년의 5580억 달러(약 723조 원)에 비해 급감한 수치다.
국내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아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 집계 결과, 올해 11월 말 기준 국내 ESG 관련 펀드 95개의 총 순자산가치는 2조 7931억 원에 머물렀다. 이는 지난 2021년 3조 9940억 원(80개)과 비교하면 30.06% 줄어든 수치다. 펀드 숫자는 2년 전과 비교해서 늘었지만, 순자산가치는 같은 기간 감소한 것이다.
ESG 펀드는 탈화석연료에 따른 투자처 다각화 움직임 속에 2020년과 2021년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고금리·인플레 장기화에 그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치적인 논란과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에 인기가 흔들렸다.
로이터는 최근 기사에서 “친(親)기업적 성향이 강한 미국의 공화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ESG 투자에 반대 움직임이 거세졌고, 기업들의 그린워싱 논란도 지속되면서 ESG 펀드의 인기가 식었다”고 분석했다.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은 ESG 경영을 중시하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한 주요 운용사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ESG 투자금을 회수하고, 반(反)ESG 법안을 다수 발의하며 ESG 투자를 막기 위해 애썼다. 다만 이 반 ESG 법안들은 대부분 통과하지 못했다.
터널 끝에 보이는 빛
올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처럼 ESG 투자 업계에 냉기가 돌았으나 내년에는 다시 온기가 돌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기준으로 봤을 때 올해 ESG 펀드로의 투자금 유입액이 급감했지만 ESG 펀드 수익률은 기술주 강세 속에 상당히 선전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ESG 투자자들은 통상 수익률만큼이나 자신이 지속가능한 미래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치를 두는데, ESG 펀드의 높은 수익률은 이 두 가지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미국의 경기 연착륙과 내년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기대감 속에 ESG 펀드들이 많이 투자하고 있는 기술주가 급등하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측정하는 대표 지수 중 하나인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세계 지수’는 연초 이후 지금까지 약 2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같은 기간 17%의 수익률을 기록한 S&P 글로벌 브로드마켓 지수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하위 지수다.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세계 지수는 작년에는 마이너스 15.6%의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이 역시 S&P 글로벌 브로드마켓 지수의 마이너스 20% 수익률에 비해서 선전했다.
다시 유입되는 투자금
12월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11월 글로벌 ESG 상장지수펀드(ETF)로는 60억 4000만 달러(약 7.8조 원)의 투자금이 순유입된 것으로 ETF 조사회사인 ETFGI가 최근 발표한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이로써 올해 ESG ETF로의 순유입액은 527억 5000만 달러(약 68조 원)로 집계됐다는 점에서 11월 순유입액은 전체 순유입액의 근 12%에 달할 만큼 큰 금액이다.
이는 연말로 갈수록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내년 투자금 유입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해준다.
아에곤 자산운용의 수석 투자 전문가인 이언 스네든은 로이터에 인플레이션 둔화, 금리 하락, 일부 성장주의 낮은 밸류에이션을 예로 들며 “시장 환경이 지속 가능한 전략에 유리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 ESG 펀드 인기의 반등을 기대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2023년을 얼마 안 나기고 ESG 펀드로의 자금 유입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내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에 자금이 몰리며 ESG·사회책임투자(SRI) 펀드로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ESG 펀드와 SRI 펀드 모두 올해 하반기 들어 꾸준히 투자금이 빠져나갔으나 최근 분위기가 돌변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2월 15일을 기준으로 국내 ESG와 SRI 펀드 운용 자산은 지난달 동일 대비 1581억 원이 증가해 약 6조 3468억 원에 달했다.
주식형·채권형 ESG 펀드로는 각각 61억 원과 744억 원의 투자금이 유입됐으며, SRI 펀드로는 약 776억 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내년에도 공화당의 공격이 있겠지만 기업들의 ESG 경영 의지를 꺾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기업들의 ESG 경영 강화 움직임은 내년 ESG 투자가 추가로 악화하는 걸 막는 안전판 구실을 할 수 있다.
지금처럼 ESG 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유지해 준다면 공화당의 반ESG 활동이 더 이상 ESG 경영이나 투자에 큰 장애물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기업 이사회에 자문을 제공하는 킹앤스팔딩의 변호사 칼 스미스는 로이터에 “내년에도 공화당의 공격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미 인력 다양성이나 기후 변화 대응에 투자한 많은 대기업이 (ESG 경영) 관행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그는 “기업들이 정치에 휘말리는 것을 우려하고 있어 ESG 이슈에 대해 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