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폐기물 운송 규정 합의...폐기물 식민주의 종식되나
비(非)OECD국가로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 금지 예정 OECD 튀르키예 최대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국 '함정' 환경단체, OECD 국가에 대한 수출도 금지해야
[ESG경제=김연지 기자] 유럽의회(European Council)와 EU 회원국 이사회(Council of the European Union)가 지난 달 ‘폐기물 운송 규정’에 대한 잠정 합의'에 도달한 데 이어 7일 세부 조항에 대해서도 합의를 도출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 따르면 이 규정이 정식으로 채택되면 2년 6개월 이내에 EU 회원국이 비(非)OECD 국가로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출하는 것이 금지된다. 이번에 합의된 규정은 EU 이사회와 유럽의회 환경 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채택될 예정이다.
유럽의회는 이번 합의의 목적은 폐기물을 EU 외부로 수출하는 것을 줄이고, EU 내 순환경제 시스템을 통해 폐기물을 자원으로 재활용하도록 장려하기 위한 체제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테레사 리베라 로드리게스(Teresa Ribera Rodríguez) 스페인 생태적 전환 및 인구통계학적 과제 장관은 “폐기물을 처리 대상이 아닌 귀중한 자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순환경제로의 전환에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합의는 폐기물을 더 잘 회수하고 재사용하는 데 필요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의 핵심적인 내용은 EU 회원국의 비OECD 국가에 대한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 금지 조치다. 비OECD 국가가 EU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규제 발효 후 5년 이내 엄격한 폐기물 관리 기준을 충족하고, 환경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OECD국가로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출할 때도 사전통보승인절차(PIC, the prior written notification and consent procedure)를 따라야 한다. 이에 따라 폐기물을 수출하려는 회사는 발송, 도착 및 운송 국가에 수출하기 전 통지와 서면 확인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EU 집행위는 수입국가가 마땅한 폐기물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두었는지, 수입된 폐기물이 환경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모니터링한다.
더불어 EU는 폐기물 밀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EU 집행위는 공식 성명을 통해 “EU의 전체 폐기물 운송 중 최대 3분의 1은 불법적으로 이뤄지고 매년 상당한 규모의 불법적인 이익이 발생”한다면서, “폐기물 밀매에 대한 EU의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EU 회원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불법 폐기물 거래에 연루된 범죄자에 대해 더욱 엄격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외에도 EU 회원국 외부로 폐기물을 수출할 때는 수입 국가의 폐기물 관리 시설에서 환경적이고 건강한 방식으로 폐기물 처리가 이뤄지고 있는지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시민단체, OECD국가는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해도 된다?
폐기물 운송 규정에 대한 EU의 결정에 시민사회는 환영과 우려를 동시에 표명했다. 지난 11월 EU의 잠정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환경단체 리씽크 플라스틱(Rethink Plastic)을 비롯한 다양한 환경단체 연합은 EU가 비OECD 및 OECD 국가 모두에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을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보낸 바 있다. 청원서에는 약 18만명의 시민이 서명을 했다.
리씽크 플라스틱은 11월 17일 성명을 통해 “2년 반 만에 비OECD 국가에 대한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을 중단하기로 한 획기적인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라면서도 “EU 가 모든 국가(OECD 국가)에 대한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을 중단하는 데 동의하지 않은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우려의 배경에는 OECD국가이자 EU의 거대한 플라스틱 수입국인 튀르키예가 있다. 리씽크 플라스틱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EU가 역외로 배출한 플라스틱 폐기물 중 100만톤 이상이 부실 관리되거나, 불법 투기되거나, 노천 소각되었다. 그중 33%는 튀르키예로 수출됐다. 따라서 OECD국가인 튀르키예가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계속할 경우,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이 감소하기 보다 튀르키예를 향한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튀르키예 소재 추쿠로바(Çukurova)대학교 미세 플라스틱 연구원 세닷 귄도두(Sedat Gündoğdu) 박사는 리씽크 플라스틱에 “OECD 비회원국에 대한 플라스틱 폐기물 수출 금지는 중요한 결정이지만, 터키로에 대해서는 전체 수출 금지 조치는 물론 유해하고 혼합된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금지 조치가 없는 것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결정은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규정은 터키가 더 많은 EU 플라스틱 폐기물에 노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