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수의 에코인사이드] 래리 핑크의 10년치 '서한' 메시지는..."E,S,G에 균형을"

블랙록 핑크 회장 연례서한 국내외 ESG경영 '기폭제' 'E'는 최근, 앞서 'G'와 'S' 더 강조...실행에 균형 필요

2024-01-07     ESG경제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이 '23년 4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CNBC와 인터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많은 이들은 ESG(환경·사회책임·거버넌스)의 시발점을 보통 2006년으로 본다. 유엔이 사회책임투자(PRI) 원칙을 발표했을 때이다.

그런 ESG에 본격적으로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20년 1월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20년 1월 투자대상 기업 ‘CEO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이 계기가 돼 국내외에서 ESG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4년 전 핑크 회장은 연례 서한에서 “ESG 성과가 나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폭탄 선언해 기업들을 놀라게했다. 투자 기업의 성과를 평가할 때 재무적 이익만 볼 것이 아니라 ESG 지표를 철저히 따지겠다는 메시지였다.

핑크 회장은 투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기 위해 연례 CEO 서한을 발표하는데, 2012년부터 2023년까지 2013년을 제외하고 매년 발표했다.

10조 달러의 자산을 관리하는 세계 최대 자산관리회사의 핑크 회장은 세계 투자시장과 비즈니스 커뮤니티에서 엄청난 권력과 권위를 누리고 있다. 투자를 받아야 할 기업의 CEO들은 물론 대중들도 자연스럽게 그의 투자 철학이 담긴 연례 서한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핑크 회장 연례 서한 10개 분석

그런 핑크 회장의 과거 연례 서한(2012~2022년) 10개를 분석, 어떤 메시지가 담겼는지를 따진 논문이 최근 발표돼 화제다.

미국 워싱턴대학과 오스트리아 빈 경제경영대학의 연구팀은 지난달 ‘미 공공과학도서관 저널 지속가능성과 혁신(PLOS Sustainability and Transformation)’에 발표한 논문에서 “언론을 통해 부각된 것과는 달리, 핑크 회장은 연례 서한에서 기후 대응만 강조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핑크 회장이 사회(S)와 기업 거버넌스(G)보다 기후문제, 즉 환경(E)을 강조한 것은 2020년 이후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대규모 언어모델을 사용해서 전체 문장 중에서 각각 E, S, G와 관련이 있는 문장의 비율을 계산했다.

분석 결과, 2012~2018년 핑크 회장은 연례 서한의 대부분을 G에 할애했다. 2019년부터는 S의 비중이 늘고 G의 비중은 줄면서, 이후 S와 G 비중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다.

                            그래픽=강찬수 기자

2020년부터 환경 크게 부각시켜

E에 대한 내용은 2019년까지도 전체의 5% 미만에 불과했다. 그러다 2020년 50% 가까이 크게 늘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21년 주춤했다가 2022년에는 다시 E가 60%를 차지했다. ESG 중에서 E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연구팀이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지난해 3월 발표한 2023년 연례 서한에서도 핑크 회장은 E에 해당하는 에너지 전환 문제에 대해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에서 기후 변화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더 큰 홍수, 더 많은 산불, 더 강렬한 폭풍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 우리 생태계나 경제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금융도 이러한 변화에 면역되지 않는다. 날씨 패턴의 변화에 따라 이미 보험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기후와 에너지 등 E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시한 것이다.

‘환경’만 강조하는 것은 곤란

다만, 연구팀은 최근 경향에 집중하기보다는 2012~2022년 분석 기간 전체를 놓고 본다면, 핑크 회장은 E보다 S나 G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고 판단했다.

연구팀은 “언론에서는 ESG 가운데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이 사회와 거버넌스 문제를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SG를 기후 대응 규범으로 협소하게 재해석하면, ESG가 성평등 문제, 인종 평등 문제, 기업 거버넌스 같은 다른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ESG가 기후 규범만으로 인식된다면, 재생에너지 도입 확대 등으로 논의가 집중돼 기업들 사이에서 ESG의 수용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글로벌 에너지 위기를 촉발했을 때처럼 화석 연료에 대한 새로운 투자 관심이 일어날 경우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후 중심의 ESG를 추구하는 기업, 상황 변화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만 고집하는 기업에는 매력을 못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만 앞세우다 반ESG 자초 할 수도

결국 ESG의 본질은 ‘투자자의 수익’이다. 기후 위기가 심화하면서 ESG에서 E가 점점 더 중요해지더라도 E만 강조해서는 투자자를 위한 ESG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국내외 일부 기업 중에는 G나 S의 취약성을 덮기 위해 E를 앞세우며 ESG경영을 한다고 떠벌이는 사례도 눈에 띈다.

E만 강조하다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기업의 성과를 평가할 때 E, S, G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만 보고 높은 평가를 했는데, 노사문제나 과장 광고, 오너 리스크 등 S나 G에서 문제가 터지면 투자자가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화석연료 산업계와 가까운 공화당 등 미국 내 보수파의 ESG 반대 움직임도 거세다. 핑크 회장 본인도 지난해 6월 “ESG가 정치적으로 무기화돼 더 이상 ESG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해 발표될 핑크 회장의 연례 서한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지 궁금하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화석연료 산업과 재생에너지 산업 사이에 적절히 투자를 안배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담기지 않을까.

[강찬수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강찬수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생물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부터 중앙일보에서 30년 동안 환경전문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하며 환경, 기상, 과학 분야 기사를 6,700여 건을 썼다. 최근에는 녹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녹조의 번성-남세균 탓인가, 사람 잘못인가』란 책을 발간했다. 이에 앞서 『사람과 물』,『에코사전 -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환경 교과서』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산림청 자문위원, 환경신데믹연구소장 부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한국기후변화학회에서 수여하는 기후변화 언론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