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대형 은행 90% 기후 위험에 노출...탈탄소전환 계획 의무화된다

95개 중 87개 은행 파리협약 목표에 부합 않는 기업에 대출 기업의 기후 위험 은행 위험으로 전이...소송 위험 커져 ECB 부의장 "은행들의 전환 계획 수립 필수적으로 요구할 것"

2024-01-29     김연지 기자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ECB 총재가 지난 25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ECB 이사회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사진=ECB 공식홈페이지

[ESG경제=김연지 기자]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은 대다수의 유럽연합(EU) 대형 은행이 기후변화에 따른 전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ECB는 지난 주 95개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조사 대상 은행 중 90% 이상의 은행들이 파리협약 목표나 EU의 2050년 탄소 중립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기업에 투자함에 따라 재무적 위험이나 평판 위험, 법적인 위험에 동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ECB는 유로존 대출의 75%를 차지하는 95개 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전환 위험을 정량화했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0%를 차지하는 ▲전기 ▲자동차 ▲석유·가스 ▲철강 ▲시멘트 ▲석탄 등 6개 주요 탄소 집약 산업에 대한 대출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다. 전환 위험은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제도나 규제, 소비 행태 변화로 발생하는 리스크를 일컫는다. 

조사 대상 95개 은행 중 8개 은행만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경로에 부합하는 기업에 대출을 승인했다. 90% 이상의 은행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생산 설비의 단계적 폐지를 미루거나, 재생에너지 생산량 확충을 게을리 함으로써 전환 위험을 높이는 기업들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의 시장 경쟁력 하락이 은행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탈탄소 경제에 대비하지 못한 기업들은 탄소 배출 비용의 상승, 환경 규제 강화, 소비자 선호도 변화, 에너지 가격 의존도 증가 등 다양한 전환 위험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은 기업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높여 은행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보고서는 유럽 대형은행이 평판도 하락이나 채무 불이행에 따른 재무적 손실 위험과 함께 높은 확률로 소송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 은행 중 약 70%가 파리협정에 공식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2021년 이후로 전세계적으로 약 560건의 새로운 기후 관련 소송이 제기되고 있으며, 기업과 은행을 대상으로 한 소송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탈탄소 전환이 미흡한 기업에 대한 익스포져가 많은 일부 은행의 경우 익스포져가 기본자기자본(Tier1)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아 기업의 전환 위험이 해당 은행의 지급 능력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CRD Ⅵ에 은행의 전환 계획 수립 의무화할 예정

ECB 이사회 부의장이자 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인 프랭크 엘더슨(Frank Elderson)은 지난 23일 ECB 공식블로그에 유럽의 대다수 은행들이 현재 60% 이상의 이자 수입을 탄소 집약 산업의 기업들로부터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은행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파리 협정과 부합하는 전환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라며 “이 계획에는 지금부터 2050년까지 구체적인 중간 목표를 포함해야 하며, 경영진은 전환 경로와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위험을 모니터링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주요 성과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랭크 부의장은 또한 은행들의 전환 계획 수립이 머지않아 필수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개정된 자본요구사항 지침(CRD Ⅵ)은 은행들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조정과정에서 기후 및 환경(C&E) 위험을 다루는 신중한 계획을 준비하도록 요구한다”며 “CRD Ⅵ 개정안은 금융감독기관들에게 이러한 계획을 검토하고 은행들의 C&E 위험 대응 진행 상황을 평가하도록 권한을 부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CRD Ⅵ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자본요구사항규정(CRR)과 함께 2021년 10월 발표한 자본건전성 개선을 위한 제도 중 중 하나다. EU는 이를 통해 2017년 바젤 위원회가 발표한 바젤3를 이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CRD Ⅵ는 은행의 최소 건전성 요구사항, 내부 거버넌스 의무, 다양한 기록 유지 및 보고 의무를 담고 있다. 유럽 의회와 유럽연합 이사회는 정치적 합의에 도달했으며, 현재는 구체적인 법적 표현을 논의 중에 있다. 이들은 2024년에 유럽 연합 공식 저널에 최종 텍스트를 게시하고 2025년부터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